징비록 - 안정과 대비, 쉽지 않은 선택을 위해
원래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대립하게 된 이유는 다름아닌 명종대까지 국정을 농단하던 기득권 훈구파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차이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서인의 구심점이던 심의겸은 명종비인 인순왕후의 동생이며 세종의 장인이던 심온의 후손이었다. 한 편으로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배우며 이이 등 사림과도 두루 깊이 사귀고 있었다. 오히려 자신의 외숙부인 이량이 탄핵되었을 때 앞장서서 실각시킴으로써 명망 또한 높았다. 하지만 그래도 사림은 사림.
발단은 뒤에 동인의 구심점이 되는 김효원이 이조정랑에 임명되려 할 때 심의겸이 과거 윤원형의 식객이었던 사실을 들어 그를 집요하게 공격하면서부터였다. 이후 김효원은 심의겸의 동생인 심충겸이 이조정랑에 임명되는 것을 반대하며 둘의 감정적인 대립은 사림의 대대적인 충돌로 이어지고 있었다. 어찌되었거나 심의겸 역시 외척으로써 견제되어야 할 대상이었으나, 한 편으로 사림 사이에서도 명망이 높던 그를 단지 외척이라는 이유로 배제할 수는 없었다. 서인이 주로 심의겸과의 친분을 중심으로 뭉쳤다면 동인은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문하를 중심으로 사상적으로 뭉쳐 있었다. 처음 동인이 서인보다 우세한 위치에 있었던 이유였다. 이이가 등장하며 비로소 서인에게도 그들만의 사상적 구심점이 생겨나고 있었다.
일본의 침략가능성에 대한 동인과 서인의 서로 다른 해석과 대처는 바로 그같은 동인과 서인의 사상적 차이에서 비롯되었을지 모른다. 퇴계 이황의 주리론, 즉 이기호발설은 사람을 가장 중요시한다. 사람이 바른 마음을 가진다면 세상에 문제될 것은 없다. 반면 기대승에게서 이이에게로 이어진 주기론, 기발이승론은 사람이란 것도 결국 환경의 산물임을 강조한다. 풍속과 제도가 바로 갖추어져 있어야 비로소 사람도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백성들의 불안과 동요를 다독이지 않으면 오히려 전쟁에 대한 대비에도 지장을 초래할 뿐이다. 자칫 백성의 마음을 잃으면 오히려 백성들이 침략자의 편에 설 수도 있다. 반면 전쟁을 대비하는 것만이 백성을 지키는 일이며, 따라서 오히려 더 신속하고 더 과감한 전쟁준비만이 백성을 안심시킬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무엇이 옳은가는 사실 지금도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당장 전쟁이 일어나려 한다. 당연히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그렇다고 그 사실을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알려야만 할까? 아니 복무중인 병사 가운데도 전쟁발발가능성에 동요하여 이탈하려는 경우가 나타날 수 있다. 가장 소중한 자신의 목숨과 관계된 일이다. 생필품을 사재기하고, 혹시라도 직접적인 위험으로부터 멀어지려 길을 나서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정부의 지시를 전하고 동의를 구하는가. 최대한 현재의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려 노력하며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다만 그 경계가 어디인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류성룡(김상중 분)도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신립(김형일 분)과 이일을 불러 만일 일본군이 침략해 온다면 어느 정도의 규모일 것이가를 묻고 있었던 것이었다. 만일 타협한다면 어디까지 가능할 것인가. 안타깝게도 당시의 경험과 지식으로 10만이 넘는 병력이 바다를 건너 상륙해 온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200년간 내전으로 단련된 일본이었다. 무엇보다 병사와 무사의 수가 너무 많았다. 과무장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동원체제 역시 조선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발달해 있었다. 그런 일본이 상당한 무리를 감수해가며 감행한 침략이었다. 이미 비대해질대로 비대해진 일본의 군비는 에도막부 이후 200년간의 평화 속에 여전히 일본사회를 동요시키는 불안요인으로서 자라나게 된다. 그 200년을 이렇다 할 외침 한 번 없이 평화속에 안주하던 조선과 그 사고부터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400년 넘게 지나 많은 것들이 밝혀지고 난 뒤이니 그 판단이 어리석었다 훈수둘 수 있을 뿐, 당시로서는 어쩌면 그것이 최선이었던 셈이다. 그 최선에 맞는 대비를 했었다. 성을 보수하고, 무기를 정비하고, 유능한 장수들을 남쪽으로 내려보내고. 임진왜란은 200년을 이어온 조선의 당연한 상식이 한순간에 부서지는 일대의 사건이었다. 당시에는 당시의 최선이 최선일 수밖에 없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김규철 분)가 조선을, 아니 명나라를 침략하려 한 의도가 절반만 드러난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원래 농민의 자식이었다. 다이묘는 커녕 하급무사조차 되지 못했다. 그런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의 쟁쟁한 다이묘들을 누르고 일본의 패자가 되었다. 오로지 겐지만이 쇼군이 될 수 있었기에 쇼군이 아닌 관백이 되어야만 했었다. 쿠게로서 인정받으려 했으나 쿠게의 명문인 호소카와는 비천한 출신인 히데요시에게 성을 주기를 거부했다. 그같은 히데요시의 열등감이 왜곡된 자의식으로 드러난 것이 모모야마 양식의 촌스러울 정도로 화려하고 사치스런 문화였을 것이다. 하기는 그런 말을 토요토미 히데요시 자신의 입으로 털어놓은 이유가 없으니 딱 적당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도 자신의 출생과 관련해 꾸며낸 이야기들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상당히 미묘하다.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어째서 백성들이 전쟁이 일어난다니 무작정 피난부터 떠나는가. 조선은 세계사적으로 세금이 가장 적은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당연히 나라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나머지 부분은 개인에 대한 징발을 통해 벌충하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 '역(役)'이다. 한 마디로 백성을 공짜로 부린다는 것이다. 백성을 동원하면서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에 필요한 경비마저 백성의 몫으로 돌린다. 병역 역시 마찬가지다. 나라에 병사로서 징집되어 복무하는데 필요한 물자며 비용을 모두 자기가 부담해야만 했었다. 그 과정에서 부정이 저질러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전쟁을 대비하려면 그 재원은 어디에서 마련하는가? 어째서 김성일은 백성의 동요를 걱정했고, 훗날 김만중은 그 판단이 적절했다 인정하고 있었던 것인가.
과연 왕이었을 것이다. 다독이기보다는 윽박지른다. 어루만지기보다는 명령으로써 자신을 따르도록 강제한다. 왕이란 백성을 따르는 존재가 아니다. 백성으로 하여금 따르게 만드는 존재다. 강한 권위가 백서을 지탱하고 기댈 수 있게 해주는 든든한 기둥이 되어준다. 만일 일본의 배 한 척이라도 조선의 영토를 침략한다면 선조 자신이 대군을 이끌고 그들을 칠 것이다. 그러니 마음놓으라. 그러니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르라. 류성룡은 모르겠지만 대신들의 눈빛이 좋지 않다. 그것은 왕도가 아닌 패도다. 인빈 김씨(김혜은 분)가 계기가 되어 결정적으로 대신과 선조의 사이를 갈라놓는다. 류성룡은 어떨까?
성리학에서 말하는 붕당이란 군자당이다. 소인을 배제하고 군자들만이 모여 당을 이루어 논의한다면 바른 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 즉 붕당의 존재이유는 자신들은 군자이고 상대는 소인이라는 흑백논리인 것이다. 현대의 정당정치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일 것이다. 공존이 아닌 배척이고, 대화와 타협이 아닌 멸절이다. 하기는 지금의 정당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백성들이 싸우지 말라는 것은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를 두고 다투지 말라는 뜻이 아닐 것이다. 결국은 모두가 이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의 한 사람인 것이다. 이산해(이재용 분)의 소인론에 반발하며 류성룡이 내세우는 논리란 곧 군주, 선조다. 의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선조가 마침내 전면으로 나선다. 역시 열쇠는 선조가 쥐고 있다. 일본은 물론, 대신들과 조선 전체에도 선전포고를 한다. 악역이 어울린다. 인간적인 면을 많이 보게 된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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