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 - 김현숙과 나현애, 너무나 닮은 그들

까칠부 2015. 3. 12. 02:28

문득 나현애(서이숙 분)와 김현숙(채시라 분)이 무척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두 사람 모두 자기에 대한 자존감이 심각할 정도로 결여되어 있다. 그래서 부족한 자존감을 대신하고자 다른 대사을 찾는다. 얼마나 유명한 화가와 알고 있고, 또 자신과는 어떤 관계이며, 오늘 찾은 전시회에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 모습을 보이고 있었는가. 자기가 길러낸 제자들과, 자기가 도태시킨 실패자와, 그러므로 자기는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그래서 한 편으로 생각한다. 어쩌면 과거 나현애가 김현숙을 그토록 증오했던 이유도 그것과 관계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자신은 필사적으로 노력해서 아무도 돌아봐주지 않는데도 지금의 자리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토록 나태한가. 어째서 그토록 한가하기만 한가. 지금의 상태로도 좋은가. 그런 주제에 제법 입바른 소리도 할 줄 알아 아픈 곳을 헤집기도 한다. 확신에 혼란이 생긴다. 과연 자신은 옳은 것인가.


어쩌면 그것은 시험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살아남는다면 김현숙 네가 옳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나현숙 - 아니 나말년 자신이 옳았던 것이다. 새삼 나현애가, 어쩌면 김현숙이 자신에게 집착하는 것 이상으로 김현숙을 의식하는 이유일지 모른다. 김현숙의 비참함이, 초라함이, 비루함이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을 긍정해준다. 어느덧 회의도 생기고, 불안도 생기고, 그럴수록 자신을 다잡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런 때 김현숙이 앞에 나타난다. 자신이 기대한 이상으로 한심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그녀는 승리자가 된다.


물론 그 모든 것은 거짓이다. 단지 착각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녀는 여전히 허기지다. 더 많은 돈과, 더 많은 명예와,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굳이 성공한 제자들만을 불러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고, 한 편으로는 막내시숙이 가진 막대한 재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궁리를 하고, 그러면서 자기를 돋보일 수 있는 다른 누군가를 찾는다. 김현숙이 딸 정마리(이하나 분)를 교수로 만들기 위해 필사적인 것과도 닮은 부분이라 할 것이다. 교수가 아닌 딸 정마리를 도저히 견디지 못한다. 딸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이든 자신의 바람만을 우선한다. 그것이 세상이 그녀에게 가르쳐준 유일한 정답이다. 학생들이 무엇을 꿈꾸든 나현애 역시 오로지 그 한 가지 답만을 그들에게 보여준다.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 자신은 옳았다. 그렇게라도 필사적으로 채우고 싶은 간절함이며 절실함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닮았다.


채우지 못할 공허감을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인지,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 자기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지.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무엇이며, 자기에게 가장 가치있고 의미있는 것은 무엇인지. 먼저 자기에게 물어야 하는데 정작 대답해 줄 자기가 없다. 자기를 위한 대답인데 항상 다른 사람의 눈과 입만을 훔쳐보며 집착한다. 어쩌면 정마리의 말이 옳을 지 모른다. 그들은 미쳤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라면 미치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김현숙의 엄마 강순옥(김혜자 분)이 굳이 남편이 사랑했던 여자 장모란(장미희 분)를 집으로 불러들여 함께 지내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가까이 두고서 남편의 사랑을 빼앗아간 앙갚음을 해주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서로가 사랑했던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인지. 결론은 상실감이다. 너무 오래 남편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자신의 꿈이 아니었다. 자신의 바람이 아니었다. 자신이 목표했던 것도 아니었다. 엄마를 위해서. 너무나 가엾은 엄마를 위해서. 엄마의 간절한 바람을 이루어주기 위해서. 그런데 잠깐, 아주 조금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 그동안의 삶들이 허무해지기 시작했다. 때늦은 사춘기다. 자기는 무엇때문에 살아왔고,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정마리가 처음이다. 비로소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엄마의 딸이 아닌 인간 정마리로서. 그런 그녀에게 사랑도 찾아오기 시작한다. 진정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무엇을 위해서. 그녀는 그것을 찾아낼 수 있을까?


무엇이 잘못되었는가조차 스스로 판단할 수 없다. 나현애나 김현숙이나 더 이상 스스로 무언가를 판달할 능력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중요하다. 과거의 맺힌 기억이 사고의 일부를 막아 그 가능성을 제한해 버린다. 그렇게밖에는 살 수 없다. 그렇게 말고는 다른 방법따위 알지도 못하고 알려 하지도 않는다. 어느 순간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될 때까지. 아마 그 순간이 얼마 안있어 그녀들에게 다가올 것이다. 그때 그녀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쩌면 전혀 의외였을 것이다. 김현숙과 안종미(김혜은 분)의 과외선생님이었다. 정마리의 아빠 정구민(박혁권 분)이 김현숙과 만나게 된 계기다. 여전히 김현숙은 열등감과 컴플렉스로 자기를 방치하고 있었을 때일 것이다. 하필 시작이 안좋았다. 정구민의 마음이 제대로 김현숙에게 닿지 않는다. 계기가 되어줄까? 김현숙을 다시 대학에 입학시키려 하고 있다. 그것은 김현숙과 다시 함께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한 간절한 선택이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려 한다.


강순옥의 남편 김철희(이순재 분)가 마침내 기억을 되찾았다. 멈췄던 시간들이 흐르기 시작한다. 비어있던 자리가 채워지려 한다.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고, 너무 오래 비어 있었다. 강순옥은, 그리고 장모란은 김철희와의 새로운 시간들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나현애가 두고 온 시간들 역시 김철희와 함께 강순옥과 김현숙을 찾아나서게 된다. 시간은 너무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고 있다. 과연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빠르게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