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복지의 목적 -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까칠부 2015. 3. 15. 00:17

개천에서 용나게 한다.

 

그래서 개천에 사는 물고기가 다 용이 될 수 있는가?

 

용이 될 수 있는 몇몇을 위해 모든 것을 맞춘다. 그러면 나머지는?

 

바로 그게 복지다.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없다.

 

어차피 부자가 되고 나면 복지같은 건 필요없다.

 

그래서 복지가 필요하다.

 

부자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혹은 부자가 될 필요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개천에서 그저 미꾸라지로라도 걱정없이 살 수 있으면 그것으로 행복한 것이다.

 

굳이 용이 되어야 할 이유도 없고,

 

굳이 신분을 끌어올려야 할 이유도 없다.

 

더 부자가 되지 않아도 얼마든지 만족스럽게 살 수 있다. 인간인 한에는.

 

지금 여기서 있는 그대로 불편없이 살 수 있도록 한다.

 

역시 성장론이다. 복지란 성장의 일환이다.

 

부자로 만들어주어야 한다. 부자가 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복지의 재원이 한정되어 있듯 사회 전체의 부도 한정되어 있다.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복지란 그래서 지금 여기 자신을 위한 정책이라는 것이다.

 

다른 먼 곳에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여기 있는 바로 자신이다.

 

더 잘나지도 더 대단해지지도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

 

그러므로 걱정없이 살 수 있도록 사회가 약속을 정한다.

 

그것이 곧 존엄이며 그 사회가 추구하는 최소한의 가치일 것이다.

 

논쟁이 끝이 없다. 하지만 결국 복지의 목적에 갈릴 것이다.

 

가난한 이들을 부자로 - 아니 최소한 중산층으로는 만들어주어야...

 

그보다는 지금 당장의 만족스런 삶을 위해서... 사회 전체의.

 

노친네 하나 때문에 참 시끄럽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