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징비록 - 역사의 아이러니 '수군을 폐지하라!'

까칠부 2015. 3. 16. 04:24

역설일 것이다. 아니 군사상의 법칙이 그렇다. 아니 인간의 법칙이기도 할 것이다. 모든 군대는 승리한 순간에 멈추고, 패배한 순간부터 나가기 시작한다. 오히려 수전에서 훨씬 강세를 보이던 일본이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군의 압도적인 승리가 가능했다.


삼포왜란부터 사량왜변과 을묘왜변까지 조선중기 일본인에 의한 군사적 도발로 조선의 남해안 일대는 크나큰 피해를 입고 있었다. 그러나 바다에서 일본인들의 발호를 저지해야 할 조선의 수군은 매번 무력한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세종에 의해 대마도정벌이 이루어지면서 왜구의 발호도 뜸해진데다가, 그나마 조운선으로 겸용해 쓰겠다며 개발된 주력전선인 맹선마저 본래의 목적보다는 조운선으로 더 자주 쓰이고 있던 실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수군 자체의 규모도 작았고, 주력전선은 오히려 열세에 있었으며, 무엇보다 병사들의 훈련정도나 실전경험이 일본인의 그것에 비해 턱없이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바다로부터의 도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 모든 불리함을 타개할 수 있는 수단이 절실했다.


그래서 만들어지게 된 것이 판옥선이었다. 말 그대로 바다위의 성이었다. 판옥선의 판옥(板屋)이란 바로 선체 위에 세워진 2중의 갑판과 그 주위를 따라 두른 방패판을 일컫는 것이었다. 마치 배 위에 나무로 지은 집을 한 채 올린 것과 같다. 노를 젓는 격꾼들은 두꺼운 방패판으로 보호되는 아랫갑판에서 외부로부터 격리된 채 보호받으며 노젓는 일에만 전념하고, 그리고 그 위에서는 다른 배들보다 훨씬 높은 곳에 설치된 전투갑판에서 군사들이 아래쪽을 굽어보며 유리한 조건에서 전투를 치를 수 있도록 한다. 이때도 일본인들이 훨씬 유리한 백병전보다 총통이나 연노등을 설치하여 접근 자체를 차단하며 원거리에서 적을 저지할 수 있도록 한다. 그야말로 성에 의지해 치르는 공선전과 닮아 있었을 것이다. 그나마 일본수군은 임진왜란은 물론 정유재란까지도 배에 대포를 싣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또 아이러니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 여러차례 실전에서 패배를 경험했기에 여전히 조선인들은 일본의 수군이 조선의 수군보다 훨씬 전투도 잘하고 우세할 것이라 지레 단정짓고 있었다. 임진왜란 초반 일본군이 바다를 건너왔다는 소식에 정작 상륙할 병력을 싣고 건너오는 일본의 수군을 저지해야 할 경상우도와 좌도의 수군들이 하나같이 싸워보기도 전에 배부터 침몰시키고 도망치고 만 이유였다. 어차피 싸워봐야 상대가 안 될 것이기에 그나마 물자라도 일본군에 넘어가지 않도록 파괴하고 후일을 도모한다. 바로 그런 정도의 일본의 수전능력에 대한 경계와 두려움이 있었기에 판옥선과 같은, 그리고 거북선과 같은 압도적인 병기들이 개발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야말로 패배로부터 승리를 일구어내는 가장 모범적인 사례중 하나일 것이다. 적을 두려워하기에 그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두려움에 굴복했을 때 원균이나 박홍과 같이 싸우지도 않고 패배자가 되고 만다.


어차피 거북선이라고 해봐야 고작 세 척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나마 모든 전장에서 쓰인 것도 아니었다. 전쟁이 일어나고 끝나기까지 조선의 바다를 지킨 것은 다름아닌 판옥선이었다. 판옥선을 설계하고 건조를 결정한 것 역시 조선의 조정이었다.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같은 시대 동아시아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고, 더구나 오로지 바다에서의 전투만을 목적으로 건조된 최초의 순수한 전투함이었다. 그만큼 많은 비용과 수고를 필요로 하는 전선이었기에 필요한 수량의 판옥선을 확보하는 것은 조선의 열악한 재정상황에 비추어 결코 만만한 과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조선조정에서 이순신의 거북선 건조를 문제삼고, 심지어 수군을 폐지하려 한다면 그 또한 한 이유가 되고 있을 것이다. 유지비까지 비싸다. 조선수군이 일본수군을 압도하고 있던 당시에도 조선수군은 한 번도 일본수군보다 우세한 판옥선 전력을 보유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역시 역사의 공은 영웅이 가져가기 마련이다.


비격진천뢰는 그저 하나의 병기였다. 비격진천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대완구라고 하는 일종의 구포가 필요한데, 이 대완구는 야전에서 쓰기에는 여러가지로 제약이 많았다. 임진왜란 당시 치러진 여러 전투에서 조선의 화기가 그리 유용하게 쓰이지 못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특정한 상황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일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전쟁 전반에 걸쳐 보편적인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 거북선 역시 마찬가지다. 전쟁 전반에서 더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것은 충분한 수량이 확보된 판옥선일 것이다. 비격진천뢰도 물론 많은 활약을 하기는 했지만 전쟁의 승패에 영향을 준 것은 바로 전쟁을 통해 자체생상하는데 성공한 바로 조총이었다. 조총의 위력은 류성룡 자신도 이미 경험한 바 있었다. 하다못해 창이나 활 같은 기본무장조차 개량하고 더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역시나 류성룡은 문관이다. 신무기라고 하는 함정에 너무 쉽게 빠진다. 무기가 전쟁을 승리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아무튼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일 것이다. 고니시 유키나가(이광기 분)가 우려한 그대로다. 단 고니시 유키나가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 제승방략으로 인해 집결지에 모였다가 미처 싸워보지도 못하고 흩어지고 만 조선 관군들의 존재였다. 지휘관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거나 일찌감치 도망쳐 버렸고 일본군의 진격은 파격적이라 할 정도로 빨랐다. 어떤 명력도 받지 못한 채 흩어져야 했던 관군들은 그렇게 패잔병이 되기 위해 떠돌다가 지역의 유지들이 일으킨 의병에 합류하거나, 아직 일본군에 대항하고 있는 다른 지휘관을 찾아갔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바로 그해 심지어 일본군이 상륙한 경상도의 상당부분이 관군과 의병에 의해 회복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전투를 통해 괴멸되지 않은, 단지 흩어졌을 뿐인 군대의 위험성이다. 물론 그것을 예상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시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전쟁은 정규군만으로 한다. 일정한 전선을 이루며 진행된다. 조선이 위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역시 지난번 했던 말의 반복이다. 어떻게 지주와 양반들의 부정과 탈세를 감시하고 막을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의 반발을 억누르며 정확한 세금을 매길 수 있을 것인가. 일본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선과의 전쟁을 반대하는 것은 그로 인해 자신이 입게 될 손해를 두려워해서다. 어쩔 수 없이 조선과 전쟁해야 한다면 최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전쟁 끝무렵에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조차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었다. 이익이 있을 때 단합하고, 두려움이 있을 때 굴복한다. 세금을 내는 만큼 이익이 있고, 세금을 내지 않는다면 더 큰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왕이 명령한다고 무작정 따르는 존재들이 아닌 것이다. 왕이 옳지 못하다면 목숨을 내걸고, 그렇게 목숨을 잃게 되어도 오히려 명예로 여긴다. 구체적인 방법이 배제된 제안이란 단지 주장에 불과하다. 이산해(이재용 분)가 옳다. 최소한 류성룡 자신과 뜻을 함께 하는 지지자들부터 확보했어야 했다.


과연 선조라고 하는 인물을 이렇게 묘사하려 하는구나. 자기 뜻대로만 되지 않는 현실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답답해 한다. 자기가 왕이다. 자기가 조선의 왕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자신의 의지대로 돌아가야 한다. 대신들도, 세자도, 일본의 침략도, 백성들의 마음도, 모두 자기가 의도한대로 그렇게 결론지어져야 한다. 일본군의 침략이 시작되고 파죽지세로 진격해 오는 일본군을 피해 의주까지 도망치고 난 뒤 선조가 보여준 강박적인 이기심은 그렇게 이해된다. 왕으로 교육받지는 못했지만 지금껏 왕으로 살아왔다. 그래서 왕이란 개인이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왕 개인의 감정이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한다. 


오성과 한음의 주인공 중 오성 이항복(최철호 분)은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다. 유능했으며 청렴했다. 반면 한음 이덕형(남성진 분)은 청렴과는 약간 거리가 있었다. 그를 두고 이항복이 비웃은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처세술이 좋았다. 물론 능력도 뛰어났다. 특히 한음 이덕형의 캐릭터를 보여주려 함일 것이다. 적당히 에두를 줄도 알고 꾸밀 줄도 안다. 항상 올곧으려고만 하는 류성룡에 비해 이덕형이 부린 수단이 마침내 거북선과 비격진천뢰의 개발을 가능케 한다. 참고로 이항복의 오성은 훗날 그가 봉해진 오성부원군에서, 이덕형의 한음은 그의 호인 한음에서 비롯되었다. 명보는 한음의 자다. 이항복의 호는 백사, 역시 자상은 그의 자다.


어쨌거나 딜레마일 것이다. 만일에 있을 전쟁을 대비하자니 백성들은 원망하고 국고는 텅텅 비었다. 그렇다고 백성과 국고를 생각하자니 만일에 있을 외침이 두렵다. 그렇다고 세금을 더 거두려면 양반과 지주들의 반발을 걱정해야 한다. 어느 정권도 든든한 지지세력 없이 유지되지 못한다. 차라리 외침이란 없다. 명나라 황제의 요구는 그를 위한 적절한 핑계가 되어주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근심을 아주 놓을 수 없는 것은 왕이기 때문일까? 차라리 수군을 없애자. 그러면 재원과 인력을 남겨 다른 곳에 쓸 수 있지 않을까. 정답은 없다. 시간이 흐르고 모든 결과가 나온 뒤에 찾아낸 답은 지금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다만 수군폐지에 대해서는 정식사료에는 따로 내용이 없고, 단지 후대의 저작 가운데 신립이 그랬다더라 하는 기술만이 있을 뿐이다. 그 부분마저 선조의 고민으로 아우른다. 선조가 중심이다.


조선이 전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전운이 점점 짙어진다. 아예 선봉까지 정해졌다. 누가 앞장서고 누가 더 큰 공을 세울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자신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사실은 그리 대수롭지 않은 것일 수 있다. 역사는 교훈을 준다. 항상.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3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