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 - 마치 카메라 앞에서 짓는 환한 웃음처럼

까칠부 2015. 3. 20. 04:26

그래도 웃는다. 아무리 속상하고, 화나고, 원망스럽고, 슬퍼도, 마음속에 한 줄기 의심이 피어나도. 그러나 날씨가 좋으니까. 카메라가 앞에 있으니까. 예쁘게 찍히려 가장 밝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사는 게 그런 것 아니던가. 아무리 괴롭고 힘든 일이 있어도 적어도 그 순간 만큼은 아름답게 기억되고 싶다. 거울앞에서 마주한 자신만큼은 아름답기를 바란다.


그래서 김현숙(채시라 분)이 지금까지도 그토록 고통스러워하는 것 아니겠는가. 지난 모든 순간들에 볼품없이 초라한 자신의 모습이 마치 저주처럼 뒤섞여 있다. 그래도 행복했던 적도 많지 않았는가. 그러나 자신이 아니었다면. 상대가 자신만 아니었다면. 그러면 더 많이 행복했지 않았을까. 마치 자기의 자리가 아닌 듯 어색하다. 자기의 것이 아닌 것 같고, 자기의 것이어서도 안되는 것 같다. 이제라도 진짜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보내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 김현숙 나름의 남편 정구민(박혁권 분)에 대란 사랑표현이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기억들을 위해서. 아름답게 기억되기 위해서. 기억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 어쩌면 강순옥(김혜자 분)의 요리교실에 등록하고 정마리(이하나 분)의 너무 젊은 엄마를 의식해 잔뜩 긴장해 있는 나현애(서이숙 분)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과거 유일하게 자신의 편을 들어주었던 이문수 기자의 막내삼촌이라는 이문학(손창민 분)을 만나러 가며 김현숙은 언니 김현정(도지원 분)의 옷장을 뒤지고 있었다. 이도진(김지석 분)또 의붓어머니 나현애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정마리를 대학교수라 소개하고 있었다.


김현숙은 자신의 어긋난 과거를 바로잡으려 하고, 나현애는 그것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김현숙이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되돌리려 하듯, 김현숙이 실패한 인생으로 남아 있어야 나현애 역시 과거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동생에게 과거 자신이 버렸던 한충길(최정우 분)을 찾아보도록 시킨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충길의 초라한 현재가 당시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해 줄 것이다. 과거에도 옳았으므로 지금도 역시 자신은 옳다. 의외로 그녀는 그다지 보기보다 강하지 못한 듯하다.


아무튼 바로 이런 재미일 것이다. 황혼에 접어든 두 여자가 심각한 대화를 나눈다. 화내고, 소리지르고, 눈물흘리고... 그런데 정작 오가는 내용은 갈수록 유치해지기만 한다. 


"언니는 못됐어! 앞에서는 감싸주는 듯 하면서 뒤로는 욕하고..."

"내가 언제 뒤로 욕을 해? 난 면전에서 하잖아?"


하기야 그렇게 분위기를 유도한 것이 강순옥 자신이었을 것이다. 죽었다 여기는 남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 너무 무겁고 심각해지자 짐짓 장모란(장미희 분)이 한 번 사양도 않고 침대를 차지해버린 이야기로 슬쩍 넘어가려 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지금 자신에게 가장 불만은 장모란의 염치없음이다. 장모란 역시 그에 호응하듯 한 번도 자신을 찾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에서 기껏 공원 입구에서 사온 셀카봉이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 것에 대한 원망을 털어놓는다. 어차피 그런 것 다 이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바로 그런 것이 연륜이고 지혜라 하는 것일 게다. 당시에는 그리 심각했다. 죽고 싶었고, 죽이고 싶었다. 물론 지금도 그런 감정이 남아 있다. 하지만 시간은 그들에게 그것들이 그렇게 자신들이 생각한 만큼 대단하거나 절실한 무엇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해준다. 그래도 자신들은 살았고, 지금껏 아무일없이 살아왔다. 웃기도 했고, 행복하기도 했으며, 기억마저 희미해지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 그런 일들로 서로 감정상해봐야 무엇하겠는가. 강순옥이 굳이 남편이 사랑한 여자인 장모란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머물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오늘만 살기에도 남은 날들이 바쁘다. 지금 이곳 이 순간에 충실하려 한다.


낙천일 것이다. 긍정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강순옥이나 장모란이나 자신의 일로써 성공한 드문 경우일 것이다. 매순간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아왔고, 그 결과 모두가 우러르는 위치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아무리 과거의 기억에 휘둘리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현재로 돌아오고 만다. 과거의 기억에 휘둘려 자신을 잃어가다가도 다시 현재의 자신을 찾아간다. 강함일 것이다. 아직 두 딸 김현정과 김현숙은 그같은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여전히 과거에 집착하며 미래를 두려워하고 현재를 부정하려 한다. 그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 


도도하고 냉정해 보이던 김현정의 의외의 모습을 보고 만다. 그녀 역시 필사적이었다. 미운 만큼 부러웠을 것이다. 부러운 만큼 더욱 미웠었다. 자신도 동생처럼 자유로웠으면. 멋대로 사고까지 치고 저 하고싶은 것은 다 하며 살았었다. 아버지마저 잃고 혼자가 되어 버린 어머니가 가여워서. 동생이 사고친 만큼 힘들어할 어머니가 걱정되어서. 그리고 동생도 자기가 지켜주어야 했었다. 그녀의 완벽해 보이는 겉모습은 그렇게 자신을 끊임없이 다잡아 온 결과였을 것이다. 잠시도 흐트러져서는 안되었다. 화를 낼 정도로 동생을 걱정하는 마음이, 그러나 이미 엇나가버린 김현숙의 열등감으로 인해 제대로 전해지지 못했다. 


비로소 지금의 자신의 모습을 고민한다. 자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왔고,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 우울해질 때다. 초라해진 자신의 모습이 과거의 자신마저 부정하도록 만든다. 약해졌다. 한 번도 보이지 않던 눈물을 보이고, 한 번도 털어놓은 적 없는 진심마저 털어놓는다. 항상 걱정만 끼치던 동생과도 한심할 정도로 목소리까지 높여가며 말싸움을 벌인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그동안 치열하게만 살아왔던 지난 과거를 긍정할 수 있도록 해 줄 내일의 무엇일 것이다. 일이든, 아니면 사랑이든. 자신이 지금껏 노력해 온 시간들이 가치없지 않았음을, 무엇보다 자신이 아직 건재함을 확인해 줄 무언가다. 무엇일까?


로맨틱코미디의 정석이다. 오해. 서로 진심으로 사랑함에도 오해가 두 사람을 멀리 돌아가도록 만든다. 어느새 정마리나 이루오(송재림 분)나 서로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깨닫고 있음에도 사소한 오해가 두 사람의 진심을 갈 곳을 잃고 헤매게 만들어 버린다. 마침 가까이에 여러가지로 좋은 조건의 남자 이도진이 버티고 있다. 이도진에 대한 김현숙의 호감과 송재림에 대한 정마리의 아버지 정구민의 첫인상은 더욱 두 사람의 사이를 비틀어버리는 역할을 한다. 너무나 흔하고 뻔한 사랑이야기가 한 편의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서로 결정적으로 오해하는 과정에도 오히려 서로에 대해 더 이끌리고 마는 모순의 운명인 것이다.


드디어 나현애 - 아니 나말년의 이름이 김현숙을 통해 이문학과 이도진 두 사람에게 전해진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김현숙에게는 구원이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가족도, 친구도 아닌 누군가가 자신과 자신의 이야기를 긍정하며 들어주고 있었다. 공감해주고 있었다. 나현애와 무관하지 않았다. 같은 시간 나현애는 강순옥의 집을 찾고 있었다. 여전히 두 사람은 거울을 마주보듯 서로 엇갈린다. 마치 서로 닿지 못하는 정마리와 이루오를 보는 것 같다. 이야기를 들은 이문학이 묻고 있었다. 어째서 나현에는 그토록 김현숙을 증오했는가? 답을 찾는다.


드라마의 미덕일 것이다. 한참 심각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하다가도 어느새 허술한 웃음으로 빠지고 만다. 이야기의 무게에 빠져들거나 휘둘리지 않는다. 어디서나 흔히 들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라는 듯. 그다지 대수로울 것 없는 대단치 않은 이야기처럼. 그래서 미니시리즈치고 배우들의 연령도 높은 모양이다. 사는 것이다. 즐겁게. 행복하게. 스스로를 위해서. 기쁘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3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