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 역사의 역설, 이것이 바로 조선이다!
조선왕조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자 미덕을 꼽자면 역시 드라마에서 묘사된 그대로의 문치와 위민정치일 것이다. 폭력과 공포보다는 문치와 교화로써, 무엇보다 피지배자인 백성에 대한 지배자로서의 도덕적 책임을 자각하고 있었다. 백성의 삶을 편안케 하고 스스로 마음놓고 생산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만이 진정으로 나라를 부강케 하는 길이다.
조선을 동시대의 다른 왕조들과 구분짓는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이었을 것이다. 백성을 다스리는데 군사력에 의지하지 않았다. 권력을 지키고 혹은 과시하기 위해 군이라는 수단을 이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있는 군비마저 줄이고 있었다. 군을 유지하기 위해 인신을 징발하거나 세금을 더 거두는 대신 차라리 기존의 군비마저 줄이는 것을 선택하고 있었다. 필요한 만큼 세금을 거두고, 만일 백성들이 저항하면 그렇게 유지해 온 군을 동원해 진압하는 것이 당연하던 시대였음에도 어쩌면 조선만이 시대를 거스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유학의 가르침이었다. 공자가 자공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무릇 정치란 먹을 것이고, 지키는 힘이고, 백성들의 믿음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반드시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면 그것은 힘일 것이고, 그리고 다시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면 먹을 것이며, 어떤 순간에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면 백성의 믿음일 것이다. 싸움에서 져도 죽고, 먹을 것이 없어 굶어서도 죽지만, 그러나 죽는 것이야 어차피 살아있는 인간의 숙명과 같은 것이고, 백성의 믿음이 없다면 나라는 결코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맹자는 백성들이 진심으로 임금을 믿고 따른다면 단지 나무몽둥이 하나만 들려주어도 반드시 나라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 호언장담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백성의 마음이다.
어차피 군이란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으면서 막대한 생산을 일방적으로 소비만 하는 낭비적인 구조다. 더구나 군을 이루는 대부분은 생산에 종사해야 할 청장년의 남성들이다. 오히려 전쟁에서 승리하고도 내정이 피폐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한창 힘을 쓸 나이의 남성들이 전장에 끌려가 있는 동안 상대적으로 노동력이 떨어지는 여성과 아이, 노인들이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그러나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보급하기 위해 지출은 더 커져만 간다. 더구나 전장으로 끌려간 장정들이 죽고 돌아오지 못한다면 남은 가족들의 삶은 그만큼 더 비참해질 수밖에 없다. 로마의 시민들이 몰락하고, 한무제의 원정 이후 한제국이 쇠퇴했으며, 당제국은 균전제가 붕괴하며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당장 일본의 경우만 하더라도 임진왜란 이후 세키가하라와 오사카성 싸움 등을 통해 다수의 무사신분을 정리했음에도 여전히 일본의 생산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수의 무사들이 남아 있어 이후 일본사회에 큰 부담이 되고 있었다. 농민들은 그야말로 딱 죽지 않을 만큼만을 남긴 채 모두 세금으로 빼앗겨야 했고, 그럼에도 재정이 부족해서 녹봉을 받지 못하는 무사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하기는 그렇게 불우한 처지에 있던 하급무사들이 모여서 세상을 바꿔보겠다며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 메이지유신으로 이어졌고 보면 결과적으로 그리 나빴다고만은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까지 에도시대 일본의 혼란상은 필요이상의 군비가 가지는 한계와 모순을 고스란히 노출시켜준다. 임진왜란 역시 그런 점에서 지나칠 정도로 비대해진 전국시대 일본의 군사력을 소모하기 위한 일환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나마 군사력을 이용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생산이 침략 한 가지였을 것이다.
당장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군역이라고 불려와 훈련을 받아야 한다. 논에 씨를 뿌리고 물을 대야 할 시간에 성을 수리한다며 돌을 져 날라야 한다. 품삯이라는 것도 의미가 없다. 정조가 품삯을 주고 사람들을 부려 수원성을 쌓은 것은 그만큼 농업생산성의 향상으로 말미암아 한양으로 밀려든 잉여노동력이 늘어나 있었던 때문이었다. 일이 없는 사람들에게 일과 수입을 함께 제공한다. 그래서 영조 역시 일부러 청계천을 준설하며 한양의 빈민들을 고용하기도 했었다. 당장 부쳐먹을 땅이 있고 지어야 할 농사가 있는데 품삯을 준다고 반길 농민이 어디에 있을까? 그렇다면 그런 농민들을 어떻게 설득해서 자발적으로 훈련을 받고, 노역에 참가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최소한 그에 대한 불만을 가지지 않도록 만들 수 있을까?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도 쉽지 않은 질문일 것이다. 그것이 가능했다면 굳이 백성들의 동요를 우려해서 전쟁준비마저 소홀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설일 것이다. 임금이 스스로 밭으로 나가 흙을 밟으며 쟁기로 밭을 갈고, 신하들과는 모여서 장차 풍년이 들어 백성들이 만족한 웃음을 지을 것을 상상하며 기뻐한다. 과연 신하된 이들이 임금과 백성 둘 중 누구를 더 우선해야 하는가? 임금이라는 상선의 대답에 선조는 마땅히 백성이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었다. 단지 어째서 임금인 자신이 신하들보다 더 백성을 위하지 못하는가? 백성을 위하는 것이 어째서 임금인 자신을 거스르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는가? 그것은 질투이고 자괴감일 것이다. 그런 한 편에서 토요토미 히데요시(김규철 분)는 힘으로 백성들을 위협하며 인신과 물자를 강제로 징발하여 동원하려 하고 있었다. 과연 무엇이 더 옳고 더 바람직한 모습인가? 그러나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는가?
백성의 불만과 고통을 줄여주려 전쟁준비를 뒤로 미루는 선조와 조정의 대신들이 어리석어 보인다. 백성들이 동요할 것을 우려해 전쟁은 없을 것이라 단정짓고 마는 조선 조정의 모습이 한심해 보이기도 한다. 한가하게 밭이나 갈고, 서로 모여서 술마시며 속편한 소리들만 늘어놓고 있다. 그에 비해 일본은 차근차근 조선을 침략할 준비를 갖춰나가고 있다. 과연 누가 더 현명했고, 누가 더 옳은 판단을 했었는가? 그보다 과연 지금 드라마를 보고 있는 우리들 자신이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러나 역사란 냉혹할 정도로 무심하고 무정하다. 결코 옳고 그름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누가 더 결과적으로 백성을 고통스럽게 했는가. 그래서 더 정치란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무엇도 선택할 수 없을 때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돌고 돌아 결국 조선이었을 것이다. 선조이고 조정의 대신들이다. 사대부다. 성리학이다. 그들이 그토록 고집스럽게 추구하던 이상이었다. 백성이란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니었다. 그토록 왕권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던 임금 선조마저도. 모든 이들에게 냉정한 선조마저 백성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사람이 달라진다. 백성을 위해서. 백성의 삶을 위해서. 백성의 안위를 위해서. 단지 선택이 달랐을 뿐이다. 이산해(이재용 분)도, 류성룡(김상중 분)도, 성혼(김효원 분)도, 정철(선동혁 분) 역시. 그런 조선을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은 침략해 왔다. 그것이 얼마나 무도하고 무모한 행동이었는지 다시 한 번 역설해 보여준다.
흔히들 말한다. 조선왕조와 지배신분인 양반들의 문제는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백성을 위한 정치라는 것도 결국 유학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여러 모순과 한계들에도 마지막까지 그 이상을 놓지 않으려 했던 이들이 있었기에 조선은 600년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것이 조선이었다. 이번주 '징비록'이 가지는 의의다. 새롭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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