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징비록 - 왕의 선택과 백성의 분노, 냉혹한 현실 앞에서

까칠부 2015. 4. 6. 04:06

흉년이 들었다. 먹을 것이 귀해지며 가족이 모두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굶주리고 있었다. 이웃집에서 그 모습이 너무 딱한 나머지 자기들 먹을 몫을 덜어 한 줌 겨우 한 사람 먹을 만큼의 몫을 나누어 주었다. 과연 그 쌀은 가족 가운데 누구에게 우선해 돌아가야 할까?


그것은 냉혹한 자연의 법칙이기도 할 것이다. 부모의 마음이야 자식 배부른 것이 자기 배부른 것보다 더 기꺼울 것이다. 자신들은 굶주리더라도 자식들 만큼은 배부르지는 못해도 무어라도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그러면 그 다음은? 아직 어린 자식들은 일을 해서 먹을 것을 구해올 만큼 충분히 자라지 못했다. 차라리 일을 할 수 있는 아버지가 먼저 배를 채우고 체력을 회복한 뒤 나가서 먹을 것을 벌어오는 것이 모두를 위한 최선일 것이다.


아니 결국 굶주림을 못이긴 아이들이 모두 죽고 남지 않게 되더라도 부모가 살아있으면 아이는 얼마든지 다시 낳을 수 있다. 부모는 아이를 낳을 수 있지만 아이는 결코 혼자서 살아남을 수 없다. 효율이다. 부모가 먼저 먹고 체력을 회복하여 아이들을 위해 먹을 것을 찾아 나선다. 부모라도 살아남아 다시 아이를 낳고 종을 이어간다. 부모가 죽고 자식이 살 수 있다면 그리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만 남아 살아갈 수 있는 여유롭고 안전한 환경이 필수다. 차라리 아이와 함께 죽으려 한다면 얼마나 가혹한 사회인가. 가혹한 환겨에서 살아갈수록 그만큼 더 냉혹한 본능에 충실해야 한다.


어찌 어버이가 되어 자식들을 저버릴 수 있는가. 왕에게 자식이 한양의 백성들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왕이 목숨걸고 싸운다고 백성들이 반드시 사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왕이 없다고 백성들이 죽는 것도 아니다. 다만 불리해진다. 전쟁에서 진다면 진 쪽이 가진 모든 것은 이긴 쪽에 전리품으로써 주어진다. 오로지 이긴 쪽의 자비와 관용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왕이 살아야 하는 이유고, 왕을 위해 싸워야 하는 이유다. 왕이 아직 살아있는 한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다. 왕을 지키며 싸우고 있는 동안은 결코 진 것이 아니다. 왕이 다시 돌아와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리라는 희망이 있다. 그것은 오로지 왕만이 가능한, 혹은 왕이 될 누군가만이 가능한 무엇일 터다. 아무리 백성이 많다고 왕을 대신할 수는 없다.


물론 류성룡(김상중 분)도 그것을 알고 있다. 아니 조선의 사대부 가운데 그 사실을 모르느 사람이 드물다. 하지만 정작 버려지는 백성의 입장에서 감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그같은 백성의 마음을 헤아릴 필요도 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파천에 찬성했던 이산해(이재용 분)에게 모든 책임을 지워 희생양으로 삼는다. 임금은 도성과 백성을 버릴 뜻이 전혀 없었으나 신하들이 잘못된 건의로 임금을 잘못된 길로 이끌고 말았다. 그렇다고 이미 떠난 파천을 다시 되돌리자 주장하는 이는 없었다. 류성룡도 말과는 달리 끝까지 도성에 남아 백성들과 함께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명분이다. 그만큼 도성과 백성을 저버리는 파천은 잘못된 선택이고,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럴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절박한 사정이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여전히 선조에 실망하고 심지어 적대하는 류성룡의 모습은 현실감을 잃은 듯 보이지 않는가. 아직까지도 현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다.


마지막까지 임금인 자신의 입장은 헤아리지 않고 오로지 자기의 주장만을 고집한다. 인간으로서 두렵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무작정 적으로부터 도망쳐 안전한 곳에 몸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럼에도 군왕으로서 위엄을 잃지 않으려 애써 붙잡고 신하들을 설득하려 하고 있었다. 듣지 않았다. 오로지 윤두수(임동진 분)만이 임금인 자신의 입장만을 우선해 생각해준다. 배신감이다. 신립을 비롯한 장수들과 병사들은 자신의 믿음을 저버리고 일본군에 패하거나 싸우기도 전에 도망쳐 버렸고, 류성룡과 같은 신하들은 임금인 자신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자기 고집만을 내세우려 한다. 선조의 표정이 바뀐다. 그것은 좌절일 것이고, 분노일 것이다. 그만큼 류성룡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류성룡만은 자신의 진심을 알아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결국 버려지고 만 백성들의 분노는 전혀 별개라는 것이다. 분노는 분노, 당위는 당위다. 백성들이 분노한다고 충분히 아직 몸을 피할 수 있는데 도성에 남아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다. 아무리 백성들이 바란다고 왕인 자신을 위험속에 방치할 수도 없다. 백성들은 분노한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왕과 신하들 역시 가슴 한 구석에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묻어두고 먼 피난길을 떠난다. 중요한 것은 다시 돌아오는 것이고, 돌아오기 위해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다. 그 다음에 해야 할 일들을 떠올린다. 남겨진 백성들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 것인가. 백성들의 분노만을 쫓아 남는 것은 어리석다. 아직 전국에는 일본군과 싸우려 하고, 이미 싸우고 있는 백성들이 헤아릴 수 없다.


임금이 곧 국가다. 자신이 곧 조선이다. 자신의 목숨은 조선의 모든 백성들의 것이며, 왕인 자신이 적에게 잡힌다면 싸움은 끝나는 것이다. 선조의 진심이라 여겼었다. 그만큼 강경하고 단호했다. 하지만 단단한 가면에 균열이 생기며 드러난 본모습은 너무나 인간적인 두려움과 불안, 초조, 좌절과 분노일 것이었다. 너무나 이기적인 자신에 대한 환멸이고 후회였다. 그러면서 그런 자신의 판단을 끝까지 정당화하려는 집착이었다. 왕은 어떤 잘못도 저질러서는 안된다. 왕의 잘못은 신하의 잘못이다. 끝까지 자신을 반대하는 류성룡을 보는 선조의 눈빛이 차갑게 굳는다.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 누군가에 대한 배신감이며 증오다. 과연 실제의 선조도 이러했을까. 김태우의 캐스팅은 그야말로 최선의 한 수였을 것이다. 감탄한다.


옥의 티다. 양반가의 아녀자로 술을 파는 장사를 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상당히 궁핍한 처지라는 뜻일 것이다. 머리에 쪽을 지고 있으니 이미 결혼을 했다. 그런데 남편도 없이 혼자서 술장사를 한다. 과부이든, 아니면 이혼을 당한 것이든 화려한 비단옷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더구나 전란을 피해 피난길에 올랐는데 입고 있는 옷이 주름 하나 없이 깨끗하다. 발이 붓도록 한양에서 걸어서 개성까지 피난왔다. 과부든 이혼녀이든 사대부인 류성룡과 이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귀인 김씨(김혜은 분)처럼 류성룡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는 것도 아니다. 도대체 내외주점의 주인 한설희(한지완 분)를 설정한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일 없이 분주하게 오가기만 하는 이천리(정태우 분)만큼이나 의미없어 보인다.


마침내 선조가 파천을 떠난다. 한양의 경복궁이 백성들에 의해 불탄다. 고니시 유키나가(이광기 분)가 뒤늦게 한양으로 들어와 탄식한다. 어째 침략군을 이끌고 있는 고니시가 조선의 지배층보다 더 조선을 걱정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아직은 도망칠 때다. 가장 암울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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