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문으로 들었소 - 참을 수 없는 인간의 어설픔, 한정호 외도를 들키다
그러고보니 얼마전 간통죄에 대해 위헌판결이 났을 것이다. 국가가 개인의 감정에 대해서까지 관여할 수 있는가.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까지 강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차라리 순수해 보인다. 분명 법적인 아내를 두고, 그것도 아직은 누군가의 아내인 다른 여자와 부적절한 만남을 가지는 것인데, 그런데도 오히려 소년의 그것과 같은 천진함마저 느낀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룰을 만드는 사람과 그 룰을 따라야 하는 사람. 논리도 정의도 전자가 만든다. 사법고시 독선생(허정도 분)의 예시가 적절하다. 과거 지배자들은 신성을 빌어 권력의 이유로 삼았고, 지금의 지배자는 이성과 합리로써 권력의 근거로 삼는다. 한정호(유준상 분)가 항상 강조하는 법과 질서, 예의, 이성, 합리, 절차, 품위, 상식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분주하고 각박한 현실에 치이며 살아가는 서봄(고아성 분)의 가족들로서는 어쩔 수 없이 허술하게 지나치고 마는 것들일 터다.
충분한 경제적 시간적 여유와 더불어 상당한 훈련을 필요로 한다. 아이를 돌보는 것마저 전문가를 고용해 거의 전적으로 의지한다. 식사준비며, 집안일이며, 주변의 다른 일상적인 일들까지도 모두 대신해서 해결해주는 고용인들이 있다. 하다못해 언니의 일까지 비서를 통해 대신 해결토록 한다. 굳이 말로 전할 필요도 없이 알아서 자신이 바라는대로 모두 이루어준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 한인상(이준 분)과 결혼한 지 이제 겨우 몇 개월, 그러나 그 짧은 시간 동안 서봄은 전혀 다른 사람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크게 바뀌어 있었다. 아직 친정에 있을 때 그녀는 그 가운데 많은 것들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해결해야만 했었다.
하나의 재판을 위해 최고의 법률지식을 가진 변호사가 몇 명이나 투입되어 팀을 이루어 함께 움직인다. 필요하다면 법조문 하나를 위해서 몇일을 하루의 대부분을 투자해가며 분석하기도 한다. 막대한 전문적인 자료들을 확보하고, 그것들을 낱낱이 해체한 뒤 목적에 맞게 철저히 재구성한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변호사라도 개인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작업일 것이다. 하물며 법적인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세계를 뒤지고 법전을 글자 하나까지 헤집어 찾아낸 논리란 그래서 일반인이 닿을 수 없는 첨단의 영역에 있는 것이다. 한송이 강한 이유이고, 한정호가 자랑스러워하는 부분이다.
법은 단지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법이란 목적이다. 태초 이래 신이 성전의 내용에 말 한 마디 글자 한 자 직접 더하거나 뺀 적은 없었다. 모두가 사람이 한 것이었다. 무엇을 빼고, 무엇을 더하고, 어디는 어떻게 고치며, 어느 부분은 어떤 식으로 해석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피가 흘렀고, 때로 그 혼란은 수 세기 넘게 이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만족해했다. 비로소 진정한 신의 의지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신이란 그래서 목적이며 수단이었다. 그렇게 사제들은 신성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오만이다. 법이란 이미 자신의 손안에 있다. 신의 의지가 자신의 안에 있다. 신벌이 내려진다. 단지 인간에 불과함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그것이 한정호가 지영라(백지연 분)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려 하고 있음에도 그 모습이 전혀 추하거나 음험하지 않게 그려지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아무리 대한민국의 법을 한손에 쥐고 주무르는 한정호라 할지라도 그는 단지 인간에 불과하다. 이성에 설레고, 이성의 유혹에 흔들리며, 어느새 자신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예정된 징벌처럼 아내 최연희(유호정 분)는 그런 한정호에 대해 이내 알아차리고 만다. 차라리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오로지 아내에게만 충실한 삶을 살아왔기에 갑작스런 외도라는 것이 새삼스럽기만 하다. 그것도 어설픈 인간이 되어 버린 한정호를 모두의 앞에 드러내고 마는 것이다. 과연.
과연 그들은 하늘 위에 있다. 사람들의 위에 있다. 어째서 전혀 타인인 사돈에 대해서까지 그 사는 것마저 한정호네가 책임져야 하는가. 자기 능력껏 살아온 대로 살아가면 그만이다. 자기가 지금에 만족하며 살겠다는데 그것을 한정호는 불편해하고 주위에서는 어색해 한다. 오만이다. 인간의 운명을 마음대로 쥐고 주무를 수 있다. 인간을 자신의 의지대로 얼마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럴 힘을 자신들이 가지고 있다. 한정호에게 그것은 법이다. 지영라의 경우 그것은 아버지의 돈이 아닌 자신의 여성으로서의 매력이다. 어찌보면 가엾을 것이다. 남녀관계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열등감과 한계가 그녀를 다시 궁지로 내몬다.
인간의 정의와 신의 논리가 충돌한다. 아직 서봄과 한인상이 인간으로서 느끼는 인간의 정의와 한정호가 말하는 법이라고 하는 신의 논리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법적은 한정호가 옳다고 손을 들어주었다. 한정호와 한송이 내세운 법리가 타당하며 적합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과연 그것으로 좋은 것인가. 서봄의 변신과 성장에 더욱 관심이 가는 이유다. 그녀의 선택은 무엇인가. 그녀는 무엇의 손을 들어주게 될까. 그녀의 부모와 언니는 인간에 머물려 하고, 한정호는 신의 힘에 도취되어 있다. 한인상은 고민한다.
사람은 땅을 딛고 살아가는 존재일 것이다. 물론 태어나면서부터 날개를 달고 태어나는 이들도 존재하기는 한다. 그들은 처음부터 구름위에서 살아간다. 땅에서 태어난 사람이 갑자기 하늘로 날아오르려 하면 굴러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을 잃어 버린다. 서누리(공승연 분)가 깨닫게 된 사실일 것이다. 자신의 날개가 아니었다. 동생 서봄으로 인해 주어진 자신의 것이 아닌 날개였다. 윤제훈(김권 분) 역시 그 사실을 오래전부터 깨닫고 있었다. 어차피 한 걸음씩 땅을 딛고 걸어도 높은 산에 오르면 구름마저 내려다 볼 수 있다. 자신을 단지 수단으로 도구로만 여기는 한정호와 지영라의 의도를 이미 꿰뚫고 있다. 강한 것이다. 서봄의 가족들 역시 잠시 흔들렸을지 몰라도 끝까지 자신을 잃지 않는 강함을 가지고 있다.
존엄이란 부도 권력도 명예도 아니다. 존엄이란 존재 그 자체다. 가난해도,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그런 자신을 인정하고 그런 자신의 삶을 존중할 줄 안다. 좌절도 실패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런 것들이 결코 자신이라고 하는 존재를 훼손할 수 없을 것임을. 자식이 부끄러워한다. 아버지인 자신을 존경하고 자랑스러워해야 할 아들 한인상이 아버지 한정호를 낯설어한다. 그래서 풍문일 것이다. 풍문이라는 말처럼 세상의 눈과 말이란 얼마나 가벼운가. 어떤 진실도 아무런 가치도 없이 그저 바람처럼 떠도는 말일 뿐이다.
민주영의 마지막 발버둥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자신을 그토록 믿고 의지하던 한인상마저 수단으로 이용하고 만다. 서봄마저 이용하려 한다. 고작 한정호에게 아주 작은 상처라도 입힐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딛을 땅이 사라져버렸다. 아무런 희망도 기대도 남아있지 않다. 서철식(전석찬 분)을 만난다. 그녀의 현실은 돌아올 수 있을까? 우스운 가운데 우울하다. 무겁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6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