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 - 마침내 관계역전! 김현숙 웃다

까칠부 2015. 4. 17. 04:34

어른이라고 모두 강한 것은 아니다. 선생님이라고 모두 훌륭한 것은 아니다. 어린시절 어른이란 감히 넘볼 수 없는 어떤 절대의 존재였다. 공포이고 동경이었다. 두려워했던 만큼 더욱 닮고 싶어 했었다. 모든 것을 알고 뭐든지 할 수 있다. 덩치도 더 크고 힘도 훨씬 세다. 그런데 우연히 보게 된다. 아직 어린 자신처럼 약할 수 있고 어리석을 수 있는 모습을.


나현애(서이숙 분)란 김현숙(채시라 분)에게 '악' 그 자체였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어떤 절대와도 같은 존재였다. 나현애를 경찰에 폭행죄로 신고한 것은 정면으로 겨루어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다는 판단에 나름대로 편법을 쓴 것이었다. 경찰과 법, 그리고 기자를 등에 업고 나현애의 약점을 잡아 그대로 되갚아주겠다. 그런데 보고 말았다. 친정을 앞세워 친구에게 사정하는 나현애의 모습을.


여유가 생긴다. 전같으면 모여있는 기자들에게 나현애와 자신의 관계를 털어놓는데 급급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고 도움을 받고 싶다. 이문학(손창민 분)과 이도진(김지석 분)에게도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모두의 앞에서 나현애를 변호해주고 칭찬해 줄 수 있다. 자세히 알지는 못해도 나현애에게도 나름의 절박함이 있지 않을까. 어른이 되었다. 차라리 이제 나현애가 아이처럼 보인다.


하기는 김현숙의 협박에 굴복해서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을 반성문을 반복해서 쓰고 돌아가는 길에서도 나현애는 마치 아이처럼 칭얼거리고 있었다. 오히려 나현애가 세상물정 모르고 떼쓰는 아이가 되어 버린다. 김현숙이 자신의 억울한 사정만을 사람들이 오로지 들어주기를 바랐듯, 나현애 역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자신만의 이유를 사람들이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아무리 그래도 타인에게 함부로 폭력을 휘둘러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 대상이 누가 되었든 일단 폭력을 휘두른 이상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만 한다. 도저히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


그렇게 살아야 했었다. 그렇게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모두가 적이었다. 세상은 전장이었다. 조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이면 짓밟힐 뿐이다. 잠시라도 마음을 놓으면 떠밀려날 뿐이다. 살아남아야 했고 지켜야 했다.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만을 바라보는 가족들까지도. 전액장학금을 받으며 장학금은 집으로 보내고 자신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렵게 학교에 다녀야 했었다. 그러면서도 꿈을 꾸었었다.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 모두가 보란 듯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세상이 그녀에게 가르쳐주었다. 승자가 되고 살아남는 방법을 그녀 역시 세상으로부터 배웠다. 무엇을 잘못했는가. 배운 그대로 했을 뿐인데.


바로 이런 장면들이 필자가 이 드라마에 매료된 이유일 것이다. 바로 직전까지 안종미(김혜은 분)와 머리채까지 잡고 몸싸움을 벌이더니 장모란(장미희 분)의 값비싼 블라우스가 그 와중에 찢어지자 나란히 앉아 바느질하며 박은실(이미도 분) 소심하게 궁시렁거린다. 어쩌면 그녀가 가진 트라우마였을 것이다. 선생님의 돈을 빼돌렸다. 수제자로 자처하면서 다른 사람도 아닌 강순옥(김혜자 분)의 돈을 몰래 훔쳤다. 무언가 느낀 듯 정색하는 박은실을 보며 안종미 역시 움찔 말을 돌리고 있었다. 애써 강한 척, 짐짓 못된 척, 어쩌면 장모란도 그런 박은실의 본모습을 꿰뚫어 보았을 것이다. 사람보는 눈이 좋다는 강순옥이 박은실을 수제자로 삼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결국 아직까지 박은실이 등장인물 가운데 직접적으로 해를 끼친 경우는 없었다. 장모란의 편지도 읽기만 했을 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고슴도치가 가시를 세우는 것은 약하기 때문이다. 복어가 독을 품은 것도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포식자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겁먹은 개가 사납게 짖는다. 사자는 가시도, 독도, 자신을 치장할 화려한 무늬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순간 껍질이 벗겨져 나간다. 박은실은 순박하다. 자신을 감출 줄 모른다. 나현애 역시 작은 도발에도 너무 쉽게 자신을 드러내고 만다. 친아들처럼 여겼던 이도진에게도 못할 말을 내뱉고 만다. 후회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그런 자신을 인정하기란 너무나 두렵고 겁나는 일인 때문일 것이다. 차라리 못된 계모가 되겠다. 최소한 지금까지 이도진을 대하는 나현애의 모습은 거짓없는 진심으로 보였었다.


무엇이 이들을 그렇게 만들었는가. 김철희(이순재 분)가 다시 가족으로부터 도망친다. 비겁하고 못난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려던 것이 오히려 가족들에게 더 큰 상처만 입히고 만다. 자신만을 바라보는 아내 강순옥과 가족들에게 너무나 큰 죄를 짓고 말았다. 사랑을 앞세워 장모란에게 했던 일들도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마주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내와도, 딸들과도, 장모란과도, 그리고 잊고 싶은 자신의 죄와도. 용기다. 하지만 아직 김철희는 모든 사실을 털어놓기를 주저한다. 그래서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진실을 외면하며, 단단히 두른 거짓의 갑옷에 기대어 자신을 잊어간다. 아내인 강순옥과 장모란이 함께 짜고 자신을 해치려던 꿈은 그같은 쫓기는 김철희의 무의식을 보여주고 있지 않을까.


차라리 아무 관계도 아닐 때는 오히려 무거운 짐을 내려놓듯 후련하게 털어놓으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강순옥과도 친밀한 관계가 되면서 혹시나 사실을 전하는 것을 주저하게 되었다. 혹시라도 오해하지는 않을까. 결국 어떻게든 자신을 원망하게 될 것이다. 김철희가 기차에서 떨어지고 장모란 역시 기차에서 내려 사고가 난 장소를 더듬어 찾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강순옥과 그녀의 가족들에게 친혈육과도 같은 정을 느껴버린 장모란에게는 아주 사소한 어긋남조차 두려울 뿐이다. 그 두려움이 자기에게 솔직해지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 두려움으로부터 숨거나 도망치거나, 혹은 정면으로 맞서거나. 후자를 용기라 부르고 지혜라 일컫는다.


과연 그 나이에 어울리는 에피소드이고 장치일 것이다. 가족들로부터 도망친 김철희를 찾기 위해 김철희가 머물던 요양원을 찾는다. 그곳에서 강순옥은 그동안 잊고지내던 자신의 절친을 만나게 된다. 그 절친이 당시 김철희가 사고를 당했던 기차에 함께 타고 있었다. 장모란까지 목격하고 있었다. 도망치려 한다고 도망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실이란. 양심이란. 언젠가는 반드시 자신의 앞에 나타나고 만다. 장모란을 재촉한다. 그녀의 고백을. 그녀가 간직한 진실을. 그리고 진정한 화해와 용서를. 문득 오랜만에 어렸을 적 친구를 만나고 돌아와 자랑하는 어머니를 보는 것 같아 흐뭇하기도 했던 장면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단서를 던져준다.


드디어 관계가 역전된다. 현실이란 너무나 잔혹하고 냉정하다. 거짓의 갑옷이 진실 앞에 허무할 정도로 그 민낯을 드러내고 만다. 김현숙이 먼저 손을 내민다. 용서가 아니라 이해다. 화해가 아닌 관용이다. 반성문이란 어쩌면 핑계에 불과할 것이다. 나현애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가 필요했다. 그 어떤 때보다 웃음이 당당하다. 진정한 승자란. 흐뭇한 다음회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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