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와 도구로서의 인간...
한국사회의 교육은 훌륭한 '인간'이 아닌 '도구'를 길러내기 위한 교육이다. 얼마나 쓸모있고 가치있는 인간인가. 그렇게 줄을 세우고 평가를 한다. 그리고 그 평가가 개인에게 타이틀처럼 붙는다. 학력이고 학벌이다.
한국사회에서 어째서 그토록 자살률이 높은가. 존재할 이유를 잃었기 때문이다. 자존의 이유가 바로 타인의 평가에 있다.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에 있다. 홀로 존재한다. 홀로 자존한다. 스스로 인간으로서 존재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평가에 신경쓰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자신이다.
그런 일상에 익숙해진다.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줄세우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을 혐오하게 된다. 노예이기를 거부하는 노예에 대한 노예의 증오다. 인간을 철저히 대상으로써, 도구로써. 심지어 자신마저도 대상이자 도구로써 소모하려 한다. 사회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제물로 논란의 중심에 서려는 시도들은 그런 이유에서 시작된다.
인간이 하찮다. 인간이 이루고 사는 사회가 같잖다. 인간이 그토록 떠받드는 가치와 정의가 그저 우습기만 하다. 인간도 일상도 너무나 가볍다. 일베의 모든 행위는 '재미'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존엄도, 예의도, 정의도 없는, 그저 방종한 쾌락이다. 차라리 자신들을 향한 비난조차 그들에게는 쾌락이 된다.
어째서 보수와 일베는 연결되는가. 그것이 바로 보수가 추구하는 인간관이기 때문이다. 도구는 스스로 사고하지 않는다. 스스로 쓰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쓰일 수 있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일베의 모든 주장을 요약하면 인간을 '도구'로써 전제할 때 가장 이해하기 쉽다. 사실 가장 일상적인 언어를 쓰고 있기도 하다.
가끔은 묻고 싶어진다. 그토록 일베를 부정하고 비판하는 이유가 돈 그것들이 언제부터 이 사회에서 그토록 중요시되었을까. 언제부터 그런 것들이 그토록 절대적인 가치로 여겨졌던 것일까. 누가 가르쳤고, 누가 그리 그들에게 이야기했을까. 그저 보통보다 더 솔직하고 노골적일 뿐.
일베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언제부터인가 커뮤니티에 섞여 활동하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집단은 집단 안에 자신을 묻는 도구다. 개인이 사라진다. 그냥 떠올렸다. 어쩌면...
가난해도, 능력이 부족해도, 인간이 못나도, 그러나 인간이기에 인간은 존재한다.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당연한 말일 테지만. 아직 일상으로 여기기에는 먼 이야기다. 어렵다. 멀지 않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