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징비록 - 마치 유령처럼, 혼자 따로 겉도는 류성룡

까칠부 2015. 4. 20. 04:36

신이 전지전능하지만 그러나 인간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은 무소부재 - 즉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곳에 존재하며 그 의지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런데 그 의지가 직접적인 형태로 나타난다면 자칫 전지전능으로 인해 자기가 자기를 부정하는 모순에 빠질 수 있다. 그 존재와 의지를 얇게 펴서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조절한다. 실제 현실에서 신의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그래서 항상 인간일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모든 것들을 꿰뚫고 있다. 항상 옳다. 가장 정확하게 현실을 꿰뚫고 있다. 그리고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다. 임금이 신하들과 나라의 중요한 일들을 논의하는 순간에도 그는 관직도 없는 몸으로 문밖에서 모두 듣고 있었다. 임금이 몸소 백성들 찾아 위로하는 순간에조차 그는 나타나 쓴소리를 던지고 있었다. 성난 백성들이 임금을 찾아가 따져 물으려는데 그 앞을 막고는 무겁게 타일러 돌려보내기도 한다. 심지어는 아예 왕명에 의해 대신들이 모여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 대신 가운데 누군가는 관직도 없는 그를 찾아 조언을 구하고, 갑자기 나타난 그에게 모두 설득당해 반론할 말을 찾지 못한다. 그런데도 전쟁은 역사대로 - 즉 류성룡이 예상한 그대로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어떻게? 무능하지 않다면 무력해지면 된다. 어느새 류성룡이 지겨워지기 시작한 이유다.


얇아진다. 그리고 흐려진다. 아무리 정확하게 현실을 꿰뚫고 앞일을 예측해도 그러나 정작 류성룡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아니 그를 위한 최소한의 노력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도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만일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온갖 시련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왕과 대신들을 설득하려 바쁘게 움직이더니만, 그러나 정작 전쟁이 일어나자 모든 시도를 포기한 채 그저 입바른 말만을 늘어놓고 있다. 어떻게 하면 선조(김태우 분)로 하여금 자신의 말을 듣게 하고, 어떤 방법을 써야 대신들이 자신의 말을 따르게 될 것인가. 그것이 바로 정치다. 때로 마음에 없는 말도 하고, 싫은 일도 웃으며 해야만 한다. 그저 믿는 대로 느끼는대로 아무 궁리도 고민도 없이 내뱉는 말에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들다. 그저 일개 재야의 선비가 아니라 한 나라를 이끄는 재상의 반열에 올랐던 이의 말이다.


그래서 방관자로 머물고 만다. 기껏해야 심판역할이나 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 역사에서는 전혀 상관없이 일어난 사건들인데 주인공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떻게든 류성룡과 엮으려 한다. 선조의 파천에 반대하며 평양성을 사수하자던 류성룡이 정작 평양성이 함락되는 순간에는 그 자리에 없었다. 평양성을 끝까지 지키겠다며 계책까지 내놓더니만 정작 평양성이 함락되는 순간 명군을 맞이하기 위해 평양성을 벗어나 있었다. 실제의 역사는 바꾸지 못하고, 그러나 입바른 소리는 해야겠고, 그렇게 마치 유령처럼 드라마속 현실과 섞이지 못하고 겉돌게 된다. 어찌되었거나 모두가 당장의 현실을 헤쳐나가기 위해 어떻게든 필사적인데 혼자서만 다른 세상에 있는 양 말끔하기 이를 데 없다. 실수도 하고 잘못도 저지르는 것은 그것이 그들의 현실인 때문인데, 오로지 냉정하고 침착할 수 있는 것은 자기의 일이 아닌 때문이었을 것이다.


확실히 지난 19회 이순신의 해전장면에서 제작비를 모두 다 써버린 모양이다. 전투들이 생략된다. 그것도 전투가 일어나기까지는 치밀하게 묘사하는 듯하다가 갑자기 전투장면만 건너뛴 듯 사라지고 결론만 나온다. 어디서 어떤 전투가 있었는데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다. 물론 굳이 역사드라마라고 해서 항상 막대한 인력과 물자를 동원해가며 전투장면을 구현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 방식이 비겁하다. 기대하게 만들고는 배반해 버린다. 차라리 아예 전투를 배제한 채 전투 이외의 역사를 보다 치밀하게 구현하는 방식이었다면 납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작가의 역량이 필요한 고난도의 작업이다. 쉽게 가려 한다. 인물 몇을 세워놓고 그들의 대사로 나머지를 대신하려 한다. 반드시 거창한 전투장면을 넣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방식을 문제삼는 것이다. 성의가 없다.


아마 그같은 무성의의 극치를 이루는 것이 바로 류성룡이 명의 요동도사사 진무 임세록과 함께 대동강을 건너 일본군의 진영을 살피고 돌아오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류성룡이 임세록을 직접 만났다면 만남의 성격상 압록강 건너에서였을 텐데, 그러나 어느새 그 먼 길을 몰래 이동해서 대동강까지 건너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의도로 무엇을 위해 그런 장면을 집어넣은 것인지. 다만 덕분에 이천리(정태우 분)가 비중있게 출연할 수 있었다. 원래는 청원사로 가서 명조정의 오해를 풀고 원군까지 받아온 이덕형의 활약이 있어야 할 자리였다. 류성룡의 전지와 전능을, 무소부재의 신성을 강조하다 보니 발생한 오류다. 그렇다고 재미있지도 않다. 전지전능한 신이 주인공이어서 재미있었던 드라마는 거의 없다.


전라좌수사 이순신(김석훈 분)이 각지로 병사들을 보내 정보를 모아오도록 한다. 전장에서의 정보수집과 그 이외의 지역에서의 정보수집은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반역을 꾀하고 있다 조정에서 의심하더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행동이다. 하기는 싸움을 하지 못하니 이순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무어라도 나라와 백성을 위해 궁리하고 실천에 옮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뱀을 그대로 그리면 허전하다고 다리까지 그려넣으면 그것은 여전히 뱀일 것인가. 그래야만 하는 이유와 동기가 전혀 설득력있게 그려지고 있지 않다. 장차 이들 정보원들은 이순신과 조선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인가. 임진왜란이 끝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날 때까지 일본인들은 이순신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과연 전쟁을 처음 겪는 사람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루에도 선조의 표정과 태도가 몇 번 씩 바뀐다. 겁먹었다가, 화를 내다가, 의기양양하다가, 다시 겁을 먹고 도망치려 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극한상황이 그를 감정적으로도 극한까지 내몬다. 명의 원군을 청한다. 서애 류성룡이 선조로 하여금 함경도가 아닌 의주로 파천하도록 제안한 이유였다. 의주로 가야지만 명으로 가서 원군을 불러 올 수 있다. 류성룡만이 옳다. 류성룡만이 전지전능이다. 재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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