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 - 엄마의 위기, 김현숙 결심하다!

까칠부 2015. 5. 1. 04:02

사람을 잃는 두려움을 안다. 단지 사람 하나만 잃고 마는 것이 아니다. 비롯되고 말미암은 모든 것들이 기억과 함께 의미를 잃는다. 함께했던 많은 순간들이 미움과 원망으로, 혹은 후회와 죄책감으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자신이 살아온 삶의 일부가 아예 사라지거나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버린다. 그 상실감을 어떻게 감당할까? 어떻게 견뎌야 할까?


강순옥(김혜자 분)도 사람인데 어찌 자신을 배신한 박은실(이미도 분)이 밉지 않겠는가? 누가 뭐래도 자신의 삶이었다. 누구에게도 떳떳이 말할 수 있는 자신의 자부심이었다. 그것이 오물속에 나뒹굴고 있었다. 비웃음과 손가락질을 받으며 온갖 오해와 오욕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용서할 수 있을까? 단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지난 삶을 정리하기에는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차라리 자기의 잘못이기를. 자신의 탓이기를. 그러므로 그 시간들이 의미없는 것이 아니었기를.


장모란(장미희 분)이 찾아온다. 악연으로 시작된 인연이었다. 자신이 만든 또 하나의 인연이 찾아와 대신해서 화를 내고 댓가를 치르게 하겠다 약속을 해준다. 악몽이란 과연 장모란을 가리키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장모란의 말에 위안을 얻는 자신을 향한 말이었을까? 나현애(서이숙 분)에 대한 원망으로만 가득했던 김현숙(채시라 분)의 시간 속에서도 항상 그녀를 믿어주고 이해해주고 든든하게 곁을 지켜주던 소중한 가족과 남편과 친구가 있었다. 인연으로 인연을 대신한다. 사람이 사람에게서 위로를 얻는다. 사람이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유다. 강순옥의 휑한 빈자리를 어느새 친구가 된 장모란이 채워준다.


박은실 역시 늦게서야 깨닫게 된다. 미처 보지 못했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었다. 코앞도 보이지 않았다. 당장 닥친 일들만 해결하기에도 항상 벅차고 버거웠다.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었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면서. 주위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비로소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벌써 모든 것이 끝나고 혼자가 되고 난 뒤에야 후회라는 것을 하게 된다. 그런 자신을 용서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다시 고새를 숙이고, 눈을 감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된다. 강순옥의 진단은 정확했지만 너무 늦었다. 박은실에게 필요했던 것은 자기에 대한 확신이었고,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였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아직 한 사람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조금은 따뜻한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동생마저 비난한다. 아들조차 부끄러워한다. 그런데도 나현애는 김현정(도지원 분)으로부터 빼앗다시피 얻어낸 옷을 입고 거실을 거닐며 다시 몇 벌의 옷을 더 얻어낼 궁리만을 하고 있다. 염치를 잊었다. 누군가 자신의 잘못에 대해 무어라 말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자신이 가진 것들에 대한 시기이고 질투일 뿐이다. 그저 자신이 가진 것들을 탐내어 빌미로 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부끄러운 것은 가지지 못한 것이고, 당당한 것은 가졌기 때문이다. 가질 수 있다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뻔뻔한 것이 아니라 당당한 것이다. 단지 나현애가 타고나기를 못되게 태어났기 때문이었을까?


나현애가 흔들린다. 아니 오래전부터 흔들려왔었다. 그때마다 필사적으로 자신을 다잡아왔다. 더 못되게. 더 독하게. 더 사납게. 더 탐욕스럽게. 그런데 한충길은 전혀 동요없이 그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한결같다. 아직도 한충길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한충길을 통해 아직 그를 사랑하던 시절의 순수했던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꾸만 일깨운다. 그녀가 애써 지우려 했고 잊으려 했던 무언가를. 나현애가 그토록 악착같이 부여잡고 놓치 않으려는 과거의 진실을 김현숙이 인질로 잡는다. 나현애 자신이 틀렸을 수 있다. 김현숙의 말처럼 오해와 성급한 판단으로 크나큰 잘못을 저질렀을 수 있다. 계기가 되어줄까? 그녀의 껍질은 아직도 완고하다.


악의같은 것 없이도 사람은 얼마든지 다른 사람을 곤란에 빠뜨릴 수 있다. 크게 악의같은 것 가지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더 큰 위험으로 내몰 수 있다. 김현숙이 별다른 의도없이 한 행동들이 박은실에게는 큰 상처로 다가오는 것처럼. 그럴 생각까지는 없었지만 어느새 일이 너무 커지고 만다. 감당할 수 없이 너무나 커져버린 상황에 자신마저 휩쓸리며 없던 악의마저 만들어지고 만다. 돌아갈 수 없다. 돌이킬 수 없다. 용서받을 수 없다. 그렇게 용서할 수 없는 자신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기도 한다. 인간이란 얼마나 터무니없이 약한 존재인가.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김현숙이 털어놓는 사연들이 너무 길고 지루하다. 어차피 드라마를 통해 대부분 보았고 알고 있는 내용들일 것이다. 굳이 김현숙의 입을 빌어 반복해 들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제 어눌하고 주눅들었던 김현숙은 어디에도 없다. 당당하고 여유와 자신감이 넘친다. 아쉬운 부분이다. 엄마의 소중한 주방을 지키기 위해 마침내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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