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변호사는 연애중 - 아름답지 않은 그들의 간절한 사랑
온갖 오물들이 고여 썩고 있는 웅덩이에 그만 지갑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악취로 눈을 뜰 수 없고, 닿는 것만으로 바로 병에 걸릴 것만 같다. 그런데도 과연 지갑 하나 건지겠다고 그 안에 손을 담그려는 사람이 있겠는가. 당연히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면 손만이 아닌 몸 전체를 그 안에 담글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찾아야만 하는 무엇이 그 지갑 안에 있다면 말이다.
겨우 동전 몇 개 들어 있었다. 고작 10원짜리 몇 개 때문에 그 더러운 웅덩이 속으로 손을 집어넣겠는가. 하지만 그 동전 몇 개가 당장의 허기를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재산이었다. 아니 자신에게는 부모와의 소중한 추억이 담겨 있는 남다른 의미가 있는 동전이었다. 아예 지갑 안에 몇 백, 혹은 몇 천만 원 이사의 가치를 가진 무언가가 들어 있을 수 있다. 손을 더럽혀서라도 찾아야 할 가치를 지닌 물건이 그곳에 있다. 손이 아니라 몸 전체를 더럽히더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무엇이 지갑 안에 있었다. 기꺼이 자신을 더럽힌다.
아직 그토록 간절했던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국내 국지의 로펌을 이끄는 대표를 아버지로 두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다. 부러울 것 없는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 타고난 재능마저 실력으로 바꿀 줄 알았다. 남다른 실력과 노력으로 가지고자 해서 가지지 못한 것이 없었다. 굳이 흙바닥을 뒹굴며 떼쓰지 않더라도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주어지고 있었다. 폼나게, 이성적이고 고상하게, 냉정하고 예의바르게, 친절과 선의를 더해서, 우아하고 품위있다. 잊고 있었다. 진정으로 가지고자 하는 것을 손에 넣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행히 그것은 본능이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더라도 아이들은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발을 구르며 떼부터 쓰기 시작한다. 그래도 안되면 고함을 지르고, 울고, 심지어 바닥에 누워 버둥거리며 뒹굴게 된다. 처음으로 가지고 싶은 것이 생겼다. 유일한 것이었다. 길지 않은 평생이지만 오로지 그것만을 바라고 살아왔었다. 그런데 처음이었고 유일했던 소중한 사람이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으로 떠나가려 하고 있었다. 잡아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떠나기 전에 반드시 붙잡아야만 한다. 그곳에 웅덩이가 있다는 사실마저 알아차리지 못한다. 온통 젖어 악취를 풍기면서도 오로지 소중한 그 한 가지만을 쫓으려 한다. 진정 가치가 있는 것은 멋진 자신의 모습이 아닌 자신의 곁에 있는 그 사람이다. 하물며 누구보다 자신을 더 사랑했던 봉민규(심형탁 분)와 조수아(왕지원 분) 두 사람이었다.
소정우(연우진 분)와 고척희(조여정 분) 역시 서로에 대한 자신들의 진심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가 그토록 어렵고 힘들었던 것이었다. 악연으로 시작된 관계였다. 마치 관성처럼 악연은 서로에 대한 서로의 입장과 처지마저 정의하고 있었다. 소정우는 고척희를 싫어한다. 고척희 역시 소정우를 싫어한다. 두 사람 뿐만 아니라 그들을 아는 주위의 모두가 그것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었다. 증거가 사실이고, 사실이 곧 진실이다. 그들이 알고 있고 믿고 있는 그것이 곧 사실이며 진실이다. 역시 이혼상담을 위해 찾아온 부부의 이야기가 그들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단서가 되어 준다. 서로의 관계와 진실을 정의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들 자신이다. 진실로 자신들이 바라는 그 무엇이다.
용기를 낸다. 과감해진다. 지하철까지 고척희를 쫓아가고, 봉민규의 손을 놓고 소정우에게로 돌아간다. 조수아를 의식해 뒤에 감췄던 넥타이를 건네고, 자신의 진심을 고백하려 한다. 그나마 소정우와 고척희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닌 상대의 진심을 우연히 멀리서 지켜보게 된다. 악해질 수 있는 용기다. 독해질 수 있는 용기다. 자신을 버릴 수 있는 용기일 것이다. 상대에게 이미 다른 사람이 있다 오해하고서도 그것을 무릅쓰고 자신의 진심을 전한다. 상대를 다른 사람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 때로 치사해지고, 비겁해지고, 비루해지고, 한심해지는, 자신에 너무 솔직한 자신이 있다. 비로소 드라마는 시작되려 하는 것일 게다. 서로 닿지 안는 곳에서 맴돌던 감정들이 정명으로 충돌하려 한다. 봉민규는 고척희를 사랑하고, 조수아는 소정우를 오래전부터 짝사랑해왔다.
사실 반전이랄 것도 없었다. 굳이 힌트따위 주지 않더라도 너무나 반복되어 사용되어 온 흔한 구성일 것이다. 악연으로 얽힌 두 남녀가 있었다. 그런데 두 남녀는 어느 순간 운명처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알고 보니 두 남녀 사이에는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다.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온 필연, 곧 운명인 것이다. 운명처럼 과거의 우연은 필연이 되어 두 사람을 잇는 끈이 되어 준다. 납골당과 고척희, 소정우가 보았던 뒷모습, 그리고 제한된 등장인물 속에서 유독 과거의 인연을 강조하는 듯한 구성까지. 고척희가 과거 소정우에게 박하사탕을 건넨 은인이었다. 차라리 다른 반전을 기대했었다. 소정우에게 과거의 운명이 나타나 고척희와의 사이를 가로막는다. 조수아의 존재가 너무 걸린다.
과연 소정우와 고척희가 오해를 풀어준 그 부부는 다시 예전처럼 잘 살 수 있을까? 남편이 자신을 믿지 않았다. 믿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살인자로 단정짓고 모두의 앞에서 적의까지 드러내고 있었다. 과연 아내로서 그런 남편을 끝까지 믿고 함께 살 수 있을까? 남편으로서 아니의 진심을 외면하고 믿어주지 않았다는 자책 역시 평생 무거운 짐처럼 지워지게 될 터였다. 대등할 수 없다. 혹시나 의심할까 의심하고, 의심한 사실을 의식하여 다시 의심한다.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처음 사랑을 시작하는 것보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잃었던 신뢰를 다시 찾을 수 있다. 봉합한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상처는 곪고 언젠가는 다시 터지게 된다.
어쩌면 너무 빠를 수 있다. 방해자가 없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관계를 비틀거나 꼬아 놓는 악역의 존재가 없었다. 그대로 솔직하게 사랑만 하면 되었다. 이혼변호사로서 그들이 맡게 될 사건은 덤이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갈등하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침내 서로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하려 한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 조수아의 선택은 무엇일지. 차라리 법이 아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으면. 봉민규의 탄식이 뼈저리다. 처음으로 진심이 되었다.
이혼이라고 하는 주제가 소정우와 고척희 두 사람의 어쩌면 단조로울 수 있는 로맨스에 변화와 활력을 불어넣는다. 역시 변호사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한 변호사로서의 일이 두 사람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어 줄 것이다. 일이 그들을 만나게 하고, 함께하게 하고, 서로에게 익숙해지게 한다. 이해하게 만든다. 두 사람 관계의 키워드이기도 하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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