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 한정호의 분노와 제국의 몰락

까칠부 2015. 5. 20. 06:57

제국이란 곧 정의다. 정의란 곧 표준이다. 시대를 판단하고 정의하는 규준이 된다. 단순히 힘만 세다고 제국으로 군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폭력만으로 군림하려 한다면 결국 승리한 만큼 늘어나는 적들로 인해 마침내는 멸망하고 말 것이다. 동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국내는 물론 주변의 여러 경쟁자들로부터도 자신들이 패권을 가지는 것이 정당함을 납득시켜야만 한다. 오히려 동경하며 추종하게 된다. 배우려 하고 닮으려 한다. 그래서 제국이다. 제국이란 그래서 곧 시대라 할 수 있다.


비서 양재화(길해연 분)가 한정호(유준상 분)에게 강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정확히 한정호의 제국이라 할 수 있는 법무법인 '한송'은 정작 한정호 자신이 아닌 아버지에 의해 세워지고 일구어진 것이었다. 한정호는 단지 아버지가 이룩한 제국을 물려받아 경영해 온 것에 불과했다. 그렇게 길러졌다.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배우고 훈련받아 왔다. 한정호가 그동한 상대해 온 인물들 역시 아버지의 시대를 살았거나, 아니면 그 영향 아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버지가 하던 방식 그대로 답습하더라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얼마나 충실하게 모방했는가가 능력을 판단하는 척도가 되고 있었다. 2세로서 한정호는 그렇게 훌륭하게 물려받은 제국 '한송'을 지금껏 이끌어오고 있었을 것이다.


확실히 그런 점에서 한정호의 판단도 마냥 틀리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아직 가난하던 과거에는 당장 먹고 사는 문제보다 더 시급하고 절박한 것은 없었다. 입고 자는 것마저 당장 굶주림을 해결할 한 끼를 위해 양보해야만 했다. 인간으로서의 양심과 존엄 같은 것은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더 배부르게, 더 많은 것들을, 더 귀하고 높은 곳에서, 심지어 모든 개인이란 단지 그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었다. 오로지 그를 위해서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만 했었다. 그를 위해서만 존재하고 있었다. 한정호와 최연희(유호정 분) 부부가 얼마간의 물질적 댓가만으로 얼마든지 사람의 마음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 강하게 믿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야만 했었다. 그렇게 배워왔고 믿어왔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고 말았다.


당장 서봄(고아성 분)만 하더라도 한인상(이준 분)과 이혼하면서 아무것도 받지 않기로 결심했음에도 정작 아이를 기르는데 있어 크게 걱정하거나 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자신과 같은 곤란한 처지의 엄마들을 위한 다양한 제도정 장치들을 마련해두고 있었고, 더구나 그래도 아쉽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아르바이트만 해도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경제적인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 예전에야 엄마 혼자서 아이를 기르려면 그보다 큰 일이 없었지만 - 그래서 경제적인 이유로 엄마가 아이를 버리는 경우마저 적지 않았지만 - 이제는 굳이 한인상의 돈이 없이도 친정식구들과 함께 얼마든지 아이를 기를 수 있었다. 자존심을 돌볼 여유가 생겼다. 자신의 자존과 존엄, 양심을 챙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무려 사법고시 수석합격이다. 한송이 아니더라도 오라는 곳이 많았었다. 오히려 한송이 아쉽게 윤제훈(김권 분)을 붙잡으려 하고 있었다. 당장 한송을 그만두더라도 자기 능력으로 한 몸 먹고 사는 정도는 전혀 문제가 아니다. 자신감이다. 아쉬운 것이 없으니 비굴해지지도 않고, 급한 것도 없으니 느긋해질 수 있다. 유신영(백지원 분) 변호사의 불만도 자신의 실력에 비례해서 인정해주지 않는 한송의 오만과 독선이었을 것이다. 충분한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단지 출신을 이유로 철저히 비주류로서 소외시키고 있었다. 굳이 한송이 아니더라도 자기 실력이만 어디 가서든 제 몫은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송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한정호에게 그보다 더 큰 충격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한송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제국이 흔들리고 있었다. 제국의 정의를 부정하며 정면으로 도전하려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던 한정호의 방식이 그들로 인해 철저히 무력해지고 있었다. 아들 한인상마저 굴복시켰다. 서봄의 아버지 서형식(장현성 분)과 삼촌 서철식(전석찬 분)마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서누리(공승연 분)도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며 서봄과 윤제훈을 말리고 있었다. 그러나 서봄은 아니었다. 윤제훈도 아니었다. 오히려 정면으로 승부를 걸어오고 있었다. 한송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자신과 싸우겠다 선언하고 있었다. 유신영 역시 한송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납득하기보다 그를 거스르고 뛰쳐나가기를 선택한다. 그러나 모든 수단이 무력화된 상태에서 한정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철저히 아버지의 제국을 물려받기 위해 후계자로서 길러진 한정호였기에 그 이외의 다른 수단이나 방법은 아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폭주한다. 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아직까지 제국은 건재하다고. 제국의 정의는 유효하다고. 고집을 부린다. 무리한 행동을 하게 된다. 아들과의 약속을 저버린다. 아들을 믿지 못한다. 정확히는 아직도 아들에게 자신의 정의와 방식이 통용될 수 있을까 확신하지 못한다. 아직 한정호의 힘이 건재한 동안에는 그 압도적인 힘으로 자신의 정의를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이다. 상대의 정의를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흔들리기 시작한 그의 정의가 한계에 이르렀을 때 그 힘마저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할 것이다. 제국의 붕괴다. 그 단서를 벌써 여럿 배치해 놓고 있다. 지영라(백지연 분)의 딸 장현수(정유진 분)와 최연희의 비서 이선숙(서정연 분), 기득권에서도 송재원(장호일 분)이 한정호의 방식에 불만과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이익으로 엮인 관계란 이익 앞에서 너무나 쉽게 와해되고 만다. 제국은 너무 거대하고 그런 만큼 헛점도 많다.


양재화도 그같은 한송의 위기를 본능으로 느끼고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충언을 단지 듣기에 거슬린다고 거부하고 보는 한정호의 독선에 다른 대안조차 없음을 확실하게 깨닫고 만다. 한정호와 한송에 비해 어쩌면 한정호 자신보다 더 많이 더 깊숙한 곳까지 알고 있는 양재화일 것이다. 자신이 한정호를 대신할 수 없다면 함께 가라앉기 전에 침몰하는 배에서는 먼저 몸부터 피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챙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일단 챙기고 본다. 한정호가 양재화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게 된 순간부터 양재화의 선택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절박한 상황을 한정호 자신만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니 애써 무시하고 있을 뿐일 것이다.


대부분의 권력이 피지배자를 가난케 만들려 하는 이유일 것이다. 권력이 말하는 비전이란 내일을 위한 희망이고 목표이기보다 단지 아직 그렇게 되지 못한 오늘에 대한 실망이고 아쉬움일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이 되기 위해서 오늘의 자신을 희생하고 포기해야만 한다. 딸이 잘살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 잘사는 기준이란 결국 한정호의, 아니 그의 아버지가 만든 물질적인 풍요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깟 자존심따위, 존엄따위, 진실이며 정의같은 것들은 당장 손에 쥐게 될 물질적 풍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래서 서형식은 정작 딸이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그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성공에 목마른 서누리(공승연 분) 역시 동생과 남자친구의 사고를 이해하지 못한다. 의외의 곳에서 단서가 나온다. 낙천적이던 학창시절과 IMF라는 재앙의 기억이다. 한국사회가 급격히 보수화된 계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한국사회가 가난해지기 시작했다. 가난극복이 지상과제이던 시절의 정의가 여전히 지금 시대에도 유효하게 되어 버렸다. 계급은 다르지만 서형식과 한정호가 추구하는 바가 같다. 계급이 날줄이라면 세대는 씨줄이다. 그들의 세대에서 한정호와 한송은 곧 정의 그 자체였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세대에게는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잔인하지만 냉정한 자연의 법칙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제국의 몰락이다. 최고의 절정에서 균열은 시작된다. 아니 훨씬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을 것이다. 단지 절정이란 더 이상 오를 곳이 없기에 절정이라 일컫는 것이다. 절정의 끝은 내리막길이다. 억지로 부여잡으려 해봤자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 제국의 정의를 부정할수도, 그렇다고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외면할 수도 없다. 왕조의 마지막을 지켜봐야 하는 왕자 한인상의 비극일 것이다. 대안을 찾으려 노력해 보지만 타협이란 단지 아무것도 아닐 뿐이다. 서사시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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