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검사 - 복면과 반칙, 기대도 희망도 없는 현실
세상이란 부조리 투성이다. 아버지라고 찾아와서 아들인 자기더러 복수를 도우라 말한다. 어머니는 어린 자신을 버리고 아버지의 원수라는 남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 단지 아버지라는 이유만으로 어쩔 수 없이 어른들의 사정에 휘둘리고 마는 자신이 있다. 복면은 링위의 규칙에서 벗어나 마음대로 반칙해도 좋다는 허락이다. 차라리 세상을 냉소하며 자기 안의 분노를 있는 그대로 행동으로 옮긴다. 이 사회의 반영웅일까?
그러고 보면 여주인공 유민희(김선아 분) 역시 법대로 수사하는 것이 싫어서 검찰이 아닌 경찰을 지망하고 있었다. 법만으로 처벌할 수 없는 범죄자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 오히려 법이 범죄자를 지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법대로 수사하려다가 정작 그 법으로 인해 반드시 잡아야만 하는 범죄자마저 놓아주어야 한다. 반드시 잡아야만 하는 범죄자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잡아야만 한다. 체념이다. 결국 법에 범죄자의 처벌을 맡겨야 하는데, 그러나 그 과정에 있어 법을 전혀 신용하지 않고 있다. 법의 정의를 믿지 않지만 법이 정의롭기를 바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발버둥이다.
하대철(주상욱 분)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간다. 그의 속물적인 모습은 이 사회의 법과 정의에 대한 강한 부정이며 비웃음이었을 것이다. 검찰이라고 뭐 대단할 것 있는가. 고작해야 아버지의 복수를 위한 수단으로써 검사가 되어야 했을 뿐이었다. 결국 하대철에게 현행법으로 잡힌 피해자를 풀어주도록 압력을 넣는 그들도 검사였을 것이다. 그것도 한참 높은 곳에 있는 아주 대단한 검사였다. 아무리 법정에 세우더라도 실력있는 변호사를 앞세운다면 수많은 법조문과 판례 가운데 자신들에 유리한 내용 하나 찾아내지 못할 리 없다. 법은 수사과정은 물론이거니와 그 처벌에 있어서도 너무나 무력하기만 하다. 차라리 자기 손으로 직접 응징하겠다. 반칙이다. 그래서 복면을 쓴다. 링 아래로 내려와 흉기를 들고 용서할 수 없느 악인들에 긍징을 가한다. 그는 과연 영웅일까? 악당일까?
문득 일본의 만화가 타바타 요시아키의 만화 '아쿠메츠'를 떠올리고 만다. 어차피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썩어버린 사회일 것이다. 정상적인 수단으로는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비정상적인 수단을 사용하기로 한다. 극단적인 폭력은 희망이라는 출구가 사라진 절망의 표현일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서는 앞으로도 지금 이대로일 것이다. 그런 거창한 이야기까지는 아니다.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사회 전체를 향한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본질은 같다. 더 이상 법에, 이 사회의 정의에 기대하는 것이 없기에 차라리 폭력에 기대려 한다. 폭력으로 더 나아질 것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어차피 더 이상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없기에 차라리 폭력이 주는 통쾌함이라도 누리려 한다.
조금 작다. 어쩔 수 없다. 공중파다. 채널을 특정하지 않는 불특정한 다수의 시청자가 드라마를 시청하게 된다. 폭력도, 폭력이 주는 의미도 축소시킨다. 하대철의 아버지 정도성(박영규 분)의 복수를 전면에 등장시킨 이유다. 사회에 대한 절망도 체념도 아니다. 단지 복수다. 개인의 악을 응징하는 것이다. 하필 그 원수 가운데 하대철을 낳아준 어머니가 있고, 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이부동복형제가 있다. 폭력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듯, 결국 사랑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폭력의 수단이 레슬링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할 것이다. 프로레슬링이란 기믹이다. 단지 소비하기 위한 위장된 폭력인 것이다. 더 깊이 들어가기를 거부한다. 드라마는 드라마인 채로 좋다.
복수라고 하는 주제는 이미 너무 흔하다. 하물며 아버지 정도성의 원한이라는 것도 오래된 사진마냥 빛바랜 낡은 양식을 취하고 있다. 고루하다. 그런데 그것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이 상당히 새롭다. 아버지의 원한은 아버지의 원한이다. 아버지의 복수 역시 전적으로 아버지가 알아서 할 일이다. 고아로 자랐다고 아버지라며 나타난 누군가에게 무작정 끌려다니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묻는다. 아버지로서 가장 먼저 자신에게 해야 할 말이 있지 않느냐고. 결국 인정에 이끌리지만 그러나 아버지의 아들로서가 아닌, 자신의 아버지를 향한 것이었다. 그는 이미 인격적으로 독립된 개인으로서 존재한다. 과연 하대철이 보여주게 될 아버지를 대신한 복수극이란 얼마나 새로울까. 시간이 너무나 빠르게 흘러간다.
결코 즐겁기만 한 드라마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불편하다. 전체적으로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가볍고 유쾌한 느낌을 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 내용에 담긴 의미는 내내 너무도 무거웠다. 이 사회의 법과 질서를 지켜야 할 검찰의, 그것도 고위직이 범죄자와 손을 잡고 그들로부터 돈을 받는다. 전혀 남이라 해도 좋을 인연조차 현행범으로 체포된 피의자를 풀려나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차라리 하대철의 폭력이 통쾌하다. 아직은 시작조차 안했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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