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프로듀사 - 평범하지만 특별한, 일상에 안착하다

까칠부 2015. 5. 23. 04:38

재미란 결국 일상의 변주일 것이다. 일상을 부수고 비튼다. 그로부터 공포가 생기고, 슬픔과 분노를 가지며, 웃음을 짓게 된다. 일상적인 것들로 전혀 특별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재미를 만들어낸다. 쉽지 않다. 그만큼 일상이란 대중에게 익숙한 대상인 때문이다. 조금만 어긋나도 바로 느끼게 된다. 작가의 내공이며 배우의 역량이다.


무슨 대단한 내용 같은 것은 없었다. 어디서나 흔히 있을 법한 그런 일상의 이야기들 뿐이었다. 신입에 사회초년생답게 어수룩하고 고지식하게 기존의 구조와 관습에 부딪혀간다. 괴롭히려는 사람도 있고, 이용하려는 사람도 있고,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손잡아주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어색하게 부대끼는 가운데 어쩔 수 없이 일상의 파편들이 튀어나온다. 그냥 웃게 된다. 아, 저런 사람들도 있구나. 저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그냥 백승찬(김수현 분) 자신같다. 얼굴에도 목소리에도 전혀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 더 연기를 잘하고자 하는 욕심도 보이지 않는다. 원래 김수현이 백승찬이었던 것처럼. 지금 백승찬이 보이는 모습들이 김수현의 원래 모습이었던 것처럼. 차태현(라준모 역)과 공효진(탁예진 역)이 기대한 그대로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면 김수현은 너무 달라서 차라리 평범해 보일 지경이었다. 어째서 김수현이 대세인가 새삼 깨닫게 된다. 잘생기고, 매력적인데, 연기마저 탁월하다. 그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하기는 주인공을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은 조용하려 해도 주위가 그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는다. 아니 세상이 온통 분주한데 혼자서만 조용하려 하고 있다. 호떡은 그런 의미에서 백승찬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상당히 의미심장한 기호로써 쓰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깟 호떡 달라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 주고 나서 다시 사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이다. 처음 산 그대로의 호떡을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호떡을 사오라 시킨 것이었다. 어차피 식으면 맛도 덜하다. 하지만 출연을 교섭하러 간 자리에서도 호떡봉투를 꽉 움켜쥐고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백승찬의 진심은 호떡과 같다. 백승찬의 꿈에서도 '안녕하세요'의 MC들은 백승찬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사귀고 있다면 다른 상대를 찾으면 되지 않겠는가. 어차피 당사자에게 전하지도 못한 사랑이었다. 혼자서 상대에 대한 마음만을 끌어안은 채 누구에게도, 누구와도 전하거나 나누려 하지 않는다. 고지식하게 처음의 마음 그 하나만을 지키려 하고 있다. 그저 호떡을 사오라는 탁예진의 심부름을 하던 길이었다. 여러 사정과 사연들이 있었지만 술에 취하고, 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백승찬은 탁예진의 집까지 찾아가 그녀에게 직접 호떡을 건네주고 있었다.


하기는 자신의 프로그램에 출연해달라 캐스팅하는 자리에 호떡을 싸들고 간 자체가 오해받기에 딱 좋은 행위인 것이다. 누군가는 거슬릴 수 있다. 불편해질 수 있다. 그러나 전혀 아랑곳않는다. 의도해서라기보다 굳이 의식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리석다기보다는 눈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백승찬이 들고 있는 호떡을 자신을 위한 것이라 여기는 것처럼, 단지 선의로 건넨 우산을 자신을 향한 호감의 표현이라 착각한다.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음에도 그의 무심함이 그런 상황을 만들고 만다. 이성에게 이유없이 신상을 묻는 것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지 전혀 생각조차 않고 있다. 자신은 그저 호떡을 원래의 주인에게 건네기 위해 들고 있을 뿐이었다.


신디(아이유 분)가 보여주는 의외의 평범함은 그를 위한 장치일 것이다. 평범하게 오해하고, 평범하게 고민한다. 누구나 그런 오해를 할 수 있다. 고민도 할 수 있다. 자신을 겨냥한 안티카페에 가입하려 혼자서 투덜거리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겉으로 보이는 스타로서의 오만함과 그 이면의 소녀적인 평범함이 대비를 이루며 예능국 신인PD이며 평범하지 않은 남자인 백승찬과 엮이게 될 것을 예고한다. 방송국이라고 하는 특별한 공간에서 그들의 만남과 관계는 어떻게 평범하면서 평범하지 않게 그려지게 될까. 방송국이라고 하는 특별한 환경이 평범한 일상조차 특별하게 만들어 버린다. 아직 백승찬이 겪어야 할 것들이 많이 있다.


의외의 일격이었다. 단순하게 끝내지 않겠다는 선언일 것이다. 오래전부터 탁예진은 라준모를 좋아해 왔었다. 탁예진 자신의 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너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도록 티를 내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자기 아닌 다른 남자를 그렇게 티나도록 좋아하는 여자를 끝까지 진심으로 대할 수 있는 남자란 드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지난주 라준모가 탁예진에게 키스하는 장면에서 탁예진에 대한 라준모의 진심 역시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엇갈려 온 그들의 진심을 직설적으로 드러낸 만큼 앞으로 그 과정이 얼마나 험난할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백승찬이 호떡을 건넨 상대가 탁예진이었다.


화려한 수준을 넘어선 카메오들의 면면이 보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실명으로, 실제의 자신을 연기하며, 시청자의 상식을 살짝 비틀어 보여준다. 하니는 심지어 경찰서 유치장에서 경찰들과 함께 춤까지 추고 있었다. 방송국에는 꿈이 있다. 그리고 현실도 있다. 모든 일상을 끝내고 PD들이 모여 함께 술잔을 기울인다. 모든 것을 비운 그곳은 동지이자 전우들이 모여 일상의 피로를 푸는 곳이었다. 혼자서 떡볶이를 먹으며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꿈의 이면, 그리고 현실의 공감,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처음에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성공적으로 시청자의 일상적 감성에 안착하고 있는 듯 보인다. 평범하지만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진부하다기보다 친숙한 자신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방송국이라고 하는 공간의 특별함이 일상마저 특별하게 만든다. 가벼우면서도 진지한 웃음이 있다. 심각하지만 무겁지 않다. 시간이 흘러간다. 재미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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