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대한민국 사회의 권력과 부패의 이유...

까칠부 2015. 6. 8. 02:12

권력이라고 하는 단어에는 두 가지 서로 상반된 의미가 공존한다. 하나는 책임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다. 권력을 가진 만큼 비례하여 사회적 책임을 가지게 된다. 권력을 가진 만큼 비례하여 다른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권력을 가지고자 하는 동기부터가 다를 것이다. 사회적으로 더 높은 자리와 더 큰 힘을 가지고 더 많은 일들을 하고자 한다. 자신이 반드시 이루고 싶은 일이 있어 그 수단으로써 권력을 가지기를 꿈꾼다. 비슷하지만 단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치워버릴 수 있는 방편만을 바라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권력을 가지고 난 뒤의 행동들도 그에 비례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친다.


"대학에만 들어가면 너 하고 싶은대로 마음대로 하라!"


대학이란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면허다.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더 많은 것들이 허락된다. 더 좋은 직업을 가지면 더 많은 것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지금 억압당하고 통제당하는 것은 아직 그것들을 손에 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에 대해서는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하기는 그렇게 배워왔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자유당과 군사정권의 독재를 경험하면서. 유리된 권력이었다. 공동체로부터 주어진 권력이 아니었다.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더라도 일본제국주의와 독재정권의 이익에만 충실하면 얼마든지 권력을 누릴 수 있었다. 권력이란 사회적 책임이 아닌 권력자에 기생함으로써 얻어지는 단지 자신의 권리에 불과했다. 어떤 비판도 견제도 받지 않으며 공공의 규범과 가치마저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고 짓밟았다. 권력이란 그들에게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그래서 아주 작은 권력이라도 생기면 어떻게든 과시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이 권력인 때문이다. 규범과 가치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할 수 있는 데까지 법을 무시하고, 윤리와 도덕마저 비웃는다. 그러라고 있는 권력이고, 그러자고 가지는 권력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갑을문화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갑이 되었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해도 된다. 을은 그것을 모조리 감수해야 한다.


그렇게 권력을 가진다. 그를 위해 공부하고, 그를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면서, 그를 위해 마침내 권력이라는 것을 손에 넣는다. 과연 그 권력을 누구를 위해 사용하게 될까? 권력은 너무나 당연하게 부패한다. 부패는 곧 권력이 가지는 특권이다. 이제는 아예 권력의 부패를 비판조차 하지 않는다.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한정호는 매우 적확하게 대중의 심리를 분석하고 있었다. 그것이 권력인 이상 대중은 어떤 잘못을 저지르든 얼마든지 용서할 것이다. 아니 부러워할 것이다.


어째서 한국사회에서 권력의 부패가 일상화되었는가. 그러라는 권력이니까. 그러자는 권력이니까. 그렇게 가르치고 그렇게 배운다. 권력만 가지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직업, 더 많은 돈과 더 높은 사회적 지위, 그러면 하고 싶은 모든 일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불법과 비리와 부정은 곧 권력이 가지는 특권이기도 하다. 그만한 위치에서 그 정도도 하지 못한다면 권력을 가질 의미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서 공부하고, 그래서 노력한다. 부패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 가르치고,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익숙해간다. 그래서 심지어 말한다. 부패해도 능력있는 게 낫다고. 부패한 것이 어떻게 능력있을 수 있는가. 단지 닮고 싶을 뿐이다. 배우고 싶을 뿐이다. 심각한 것은 젊은 세대에서 주로 읽는 장르소설에도 그와 같은 사고가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과 주위의 인연있는 소수를 위해서만 가진 힘을 사용하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긴다. 어떤 보편적 정의나 가치를 위해서가 아닌 오로지 자신과 주위의 소수만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힘을 가지고 힘을 기르려 한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는 부정을 저지르고서도 부끄러워하거나 뉘우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그것을 밝혀낸 이들을 비난한다. 그것을 세상에 알린 이들을 욕한다. 너무나 당당하게 권력의 힘을 빌어 자신들의 죄를 덮기도 한다. 언론이 아닌 대중이 그것을 용인한다. 아직 부패할 만큼 권력을 가지지 못한 때문이다. 아직 부패할 정도가 못되었기에 질투하는 것에 불과하다. 한국사회의 정의다.


오히려 권력이 부패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다. 권력이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 것을 비정상으로 여긴다.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그래서 차라리 청렴과 강직을 혐오한다. 정의와 진실을 증오한다. 자식들에게조차 바르게 살라고 말하기보다 자신만을 위해 살라 가르친다. 대한민국의 현실이며 미래다. 안타까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