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청춘과 예능이론...
아마 기억하는 사람 있을지 모르겠다. 한창 청춘불패에 대해 쓰면서 내가 주장했던 예능이론들이 있었다. 첫째가 캐릭터, 둘째가 관계, 셋째가 서사, 혹은 사건이라 말하기도 했었다. 바로 이런 것들이 갖추어져 있어야 제대로 된 리얼버라이어티로 자리잡을 수 있다.
캐릭터는 어디에나 있다.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고,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다. 어떤 개성을 강조하여 살리는가. 김도균은 그야말로 기타 말고는 세상물정이라고는 모르는 그냥 도인이다. 그 어수룩함을 순수함으로 이해한다. 자칫 부정적으로 비쳐질 수 있는 부분마저 최대한 긍정적으로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치 누나와도 같이 그를 세상으로 이끄는 양금석이 등장한다. 남녀사이라기보다는 오누이같다. 때로 엄하게, 때로 다정하게, 그래서 아무일 없이도 단지 김도균과 양금석이라는 이름만으로도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강수지의 캐릭터는 사실 매우 모호하다. 부엌일을 김혜선과 함께 도맡아 하고 있음에도 콩쥐와 신데렐라는 오직 김혜선만의 몫이 된다. 그렇다고 다른 특별한 장기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김국진과 함께 엮이면 그녀는 누구보다도 강한 개성과 존재감을 드러낸다. 마치 실제의 연인처럼 보채고, 떼쓰며, 걱정하고, 질투한다. 말 그대로 커플이다. 아무것도 아닌 사건들도 그들을 위한 이야기의 소재가 된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반응을 지켜보기도 한다.
김동규는 특별한 관계가 있다기보다는 강력한 자신의 캐릭터를 이용하여 프리롤처럼 여러 출연자들과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남성출연자와는 경쟁관계를, 여성출연자와는 우호관계를, 다재다능함을 살려 프로그램 안에서 좌충우돌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김동규가 능동적 역할이라면 김일우는 수동적 역할이다. 편집을 걱정하는 소심함이 아예 캐릭터가 되어 버렸다. 출연자는 물론 제작진까지 때로 그것을 놀리면서 걱정해준다. 김일우 역시 그같은 역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연기한다. 전혀 웃음과는 거리가 먼데 어느 순간 그냥 보기만 해도 웃긴다.
아무리 처음이어서 낯선 출연자라도 그같은 기존의 캐릭터와 관계에 의존해 입을 열고 자신의 캐릭터를 드러낸다. 일부러 특별한 사건을 만들지 않더라도, 그저 아무렇지 않게 먹을 음식을 만드는 장면에서도 그래서 왁자할 수 있다. 역시 그 중심을 이루는 것은 김국진이다. 일부러 진행을 하려 하기보다는 때로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흐름을 자신에게 싣는다. 과연 예능의 전설다운 관록이라고나 할까.
아무래도 출연자도 출연자려니와 시간대도 그래서 시청률은 그다지 높다고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보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을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확실한 중심캐릭터와 관계가 어떤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분량을 보장한다. 이야기의 시작이 되고 마무리가 된다. 하나의 일관된 서사로서 독립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그 가운데 함께 있는 것 같다. 굳이 개인기따위 없이도 자신의 캐릭터가 곧 개인기가 된다.
최근 긴장이 풀린 탓인지 조금 늘어지는 듯한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여전히 보고 있으면 즐거운 이유다. 사람이 재미있다. 사람이 즐겁다. 원래는 그런 것이 리얼버라이어티였을 텐데. 웃음을 의식하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웃음을 만들 수 있다.
솔직히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나로선 모르겠다. 역시 시청률이 문제일 것이다. 시청자의 충성도가 관건일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재미있다. 때로 이런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옛날이야기보다는 지금의 이야기가 좋다. 권은아가 이렇게 귀여운 사람인 줄 처음 알았다. 즐겨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