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셈블리 - 준비되지 않은 당선, 자격을 묻다
정치란 게 참 우습다. 정치를 하려던 사람이 아니었다. 정치를 해야겠다는 의지도, 정치를 어떻게 해보겠다는 포부도, 그를 위한 어떤 구체적인 비전이나 계획도 없었다. 그저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다 보니 얼떨결에 공천도 받고 출마도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도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다. 정치란 이렇게 간단한 것이었던가.
최인경(송윤아 분)이 진상필(정재영 분)에게 분노하는 이유다. 그를 경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벌써 오래전부터 정치에 뜻을 두고 준비해 왔었다. 이유도 있었고, 동기도 확실했다. 목적도 분명했다. 필요한 실력과 경력도 넘칠 정도로 충실히 쌓아 왔다. 언제 어느 자리에 가더라도 충분히 자기 몫은 할 수 있다. 공천만 받을 수 있다면. 기회만 주어진다면. 그러나 그녀가 간절히 바라던 기회는 무지렁이 진상필에게 돌아갔다.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정치란 무엇인지.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치를 통해 무엇을 이루려 하는지. 그런데도 개인적으로 가장 믿고 따르는 선배이기도 했던 여당의 사무총장 백도현(장현성 분)은 자신이 아닌 그를 선택했다. 자존심을 굽히고 먼저 전화를 걸어 공천을 부탁했고, 백도현만을 믿고 미리 보궐선거가 치러질 경제시로 내려가 선거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었다. 그 모든 자료들이 다른 사람도 아닌 진상필의 당선을 위해 쓰이고 있었다. 어째서 자신이 아닌 진상필이어야 했는가. 정확히 진상필 개인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자신이 아니었던 현실의 모순에 대한 분노이고 원망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에 뜻을 두고 있는 한 자신에게 공천을 주어야 할 여당과 여당의 사무총장 백도현을 정면으로 거스를 수는 없을 테니까. 그래서 순순히 자신이 준비한 자료들을 내주었고, 진상필의 당선에도 협력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과연 얼마나 잘하는가 보겠다.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얼마나 잘하는지 똑똑히 지켜보겠다. 자신이 아닌 진상필을 선택한 백도현에 대한 소심한 항의이며 시위다. 지금은 아니지만 다음에는. 다음에는 반드시. 그런데 그런 자신의 앞에서 진상필이 청와대 수석행정관까지 지낸 자신을 보좌관으로 임명하겠다 말한다. 더 이상 이대로 참고 있을 수 없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무시하고 능욕하는가.
정치인의 자격에 대한 이야기다. 학력이 아니다. 출신이나 직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서 얼마나 대단하게 가치있는 삶을 살아왔는가 하는 것도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고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는가. 그보다는 정치를 하려는 이유다. 정치를 하고자 하는 목적이다. 정치를 해야만 하는 동기다. 한 편으로 그렇기 때문에 더 가차없는 한국의 정치현실에 대한 비판이고 조롱일 것이다.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도 정당과 유력정치인의 의지에 의해 아무나 공천을 받고, 또 당선까지 될 수 있다. 과연 진상필이라는 인물에게 한 지역의 유권자들을 대표할만한 자격이 갖춰져 있는가. 진상필과 같은 이가 국회의원이 되도 좋은 것인가.
하지만 과연 정치인의 자격이란 무엇인가. 물음 뒤에 물음을 숨긴다. 진상필이 주인공인 이유다. 어찌되었거나 진상필이 경제시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다. 더 많은 지식과 경험, 더 탁월한 기술적 능력까지 지니고 있음에도 최인경은 단지 진상필로부터 보좌관 제안을 받는 처지에 불과하다. 이제 곧 이유와 동기가 주어진다. 목적도 생겨난다. 정치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와 정치인이 되어서 하고 싶은 것들이 생겨나게 된다. 정치인이 되어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사명과도 같은 것이다. 진상필의 원죄다. 피선거권을 가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 평소 정치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던 평범한 - 물론 아주 평범하지만은 않은 한 개인이 우연찮게 정치인이 되어 좌충우돌하며 조금씩 성장해간다. 최인경은 진상필을 정치인으로 이끄는 스승이며 조력자의 역할이다. 무엇이 그를 정치인으로 만드는가.
시작은 우연이었다. 의도하지 않은 제안이었다. 현실의 필요가 결국 그 제안을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많은 것들을 희생해가며 정치인이 되었다. 진짜 많은 것들을 잃어야 했다. 정치인으로서 정치를 잘해야 한다. 국회의원으로서 보랏듯이 훌륭한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정치인이 된다.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현실이 부딪힌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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