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나의 신부 - 더 하찮고 더 가치없게, 악인 서진기의 마지막
어차피 악당의 최후란 것이 그렇다. 이용하고 이용당하고, 버리고 버림받고, 배신하고 배신당하고. 하기는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아는 이들이 범죄따위나 저지르고 다닐 리 없지 않은가. 고문에 굴복하여 자신의 보스를 배신하고, 막상 버림받을 위기에 놓이니 살기 위해 모든 것을 경찰에 넘길 결심을 한다.
서진기(류승수 분)가 송학수를 배신하고, 김비서(최병모 분)가 강회장(손종학 분) 모르게 송학수를 죽이는 계획에 동참한 것도 사실 그리 거창한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송학수가 가진 것들이 탐났고, 송학수로부터 받은 수모를 잊지 않았다.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병원에서 구해낸 손혜정(이엘 분)의 한결같은 진심을 서진기는 결코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보다 자신을 향해 던진 술잔으로 모든 것을 대신하고자 한다. 인간에 대한 신의란, 그리고 애정이란. 그래서 그들은 쉽게 인간을 속이고, 빼앗고, 상처입힌다.
죽어가는 서진기 앞에서 굳이 송학수의 죽음을 거론하는 명동 강회장(손종학 분)를 바라보는 김비서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만일 강회장이 자신이 서진기가 송학수를 죽이는데 한 팔 거든 사실을 알게 된다면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까지 강회장에 대한 충성과 의리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다른 선택을 할 것인가. 보스로서 강회장은 그다지 인정이나 관용을 기대할만한 인물이 못되었다. 굳이 경찰이나 김도형(김무열 분)이 나설 필요도 없이 단지 빌미를 주는 것만으로 너무 쉽게 균열을 일으키고 스스로 무너지고 만다.
드라마가 가진 미덕 가운데 하나다. 결코 악을 미화하지 않는다. 범죄를 변명하려 하지 않는다. 배우 자신이 가진 연기력과 매력이 배역에 대한 인기로 이어지는 실수도 저지르지 않는다. 철저히 악하고 철저히 비겁하다. 보스나 동료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서슴없이 목숨까지 내던지는 낭만적인 갱스터의 모습이란 말 그대로 영화속에나 존재하는 판타지일 것이다. 탐욕에 자신을 잃고, 충동에 자신을 잊는다. 남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 범죄조직에 몸담을 일따위 없는 것이다. 하물며 그림자다. 인간을 철저히 수단으로 여기고 파괴하여 이익을 얻으려는 조직이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심과 이성이 남아있다면 결코 용납할 수 없다.
가치없이 쓰러진다. 하찮게 죽어나간다. 그나마 남은 것은 자신을 죽이려는 이들에 대한 원망어린 독기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도 무엇도 해치거나 두렵게 만들지 못한다. 강회장으로부터 버림받은 순간 목에 바짝 들이민 칼조차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한다. 이미 더 큰 힘이 서진기를 노리고 있었다. 더 큰 폭력과 공포가 서진기를 제거하려 하고 있었다. 차라리 비웃고 차라리 화를 낸다. 김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대신해 응징하도록 한다. 한 꺼풀 자신을 치장하던 장식들이 벗겨졌을 때 드러난 서진기의 본모습은 한심할 정도로 꼴불견이었다. 손혜정이 기억하는 것이지 서진기가 기억케 하는 것이 아니다. 그나마 서진기가 남긴 유일한 가치있는 것이다. 스스로 거부하고 밀어냈던.
정글의 상층부에는 포식자들이 있다. 누구보다 크고 사납고 강하다. 오로지 같은 포식자들만이 서로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싸우면 서로 다칠 수 있기에 안전하게 영역을 나누어 작고 약한 동물들만을 먹이로 삼는다. 힘을 가지려 한다. 스스로 포식자가 되려 한다. 누구도 자신을 함부로 할 수 없도록. 더이상 피식자로 남지 않기 위해서. 돈을 벌겠다고 했다. 힘을 가지고 싶다고 말했다. 싸우기보다는 그들과 같아지려 한다. 그들로부터 인정받고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박형식(박해준 분) 형사가 범죄와 손잡은 이유였다. 김도형은 그들과 맞서싸우려 하고 있었다. 강회장과 어머니 문인숙(김보연 분)이 만나고 있었다.
어머니를 넘어야 한다. 어쩌면 어머니를 고발해야 할지도 모른다. 은행은 물론 경찰과 검찰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명동 강회장의 존재도, 그가 계획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 역시. 어머니 문인숙 역시 매우 익숙한 모습으로 강회장을 만나고 있었다. 어머니를 용인하는 순간 강회장이 지으려는 죄에 대해서도 용인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까지 자신이 지켜온 가치와 정의, 윤리, 무엇보다 사랑마저 모조리 놓아버려야 한다. 어머니를 죄인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어머니와도 맞서 더 소중한 것들을 지킬 것인가. 강회장과 문인숙의 대립은 김도형에게 더 큰 동기를 부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서진기도 퇴장하고 강회장이 전면에 나섰다. 강회장마저 지엽말단에 불과하다. 저 위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강회장이 전화를 걸어온다. 이진숙(이승연 분)에게서 제안을 받는다. 김도형은 강회장과 결코 타협할 생각이 없다. 이진숙의 제안은 윤주영(고성희 분)에게 상당히 솔깃한 것이기도 하다. 김도형을 만나기 전이었다면. 마지막을 향해 더욱 속도를 내어 달려간다. 양보하지 않는 탐욕과 탐욕이 서로 부딪히며 파열음을 낸다. 김도형이 일어선다. 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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