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왕자의 난과 혁명의 좌절...
아마 드라마 '정도전'을 보면서, 특히 1차 왕자의 난과 관련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한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필 이방원의 편에 서서 왕자의 난을 일으킨 이들이 대부분 조선건국에 반대했던 온건파 사대부들이었다. 특히 하륜은 이인임의 처조카로 권문세족의 핵심에 있던 인물이었다.
최근 연구결과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면서 사람들이 생각하느 것과는 다리 지배층의 변화가 그리 크지 않았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새롭지 않다. 상식적으로 아는 내용이다. 조선시대 유력한 양반가문 가운데 어지간하면 거의 고려까지 시조가 거슬러올라가는 경우가 많았다. 고려의 귀족이 조선에서도 양반이다. 고려의 제도 역시 조선에서도 상당부분 수용되어 유지되었다. 어떻게?
말 그대로다. 고려말 조선건국에 반대했던 온건파 사대부들은 기존의 고려의 체제를 유지할 것을 지지했던 이들이었다. 급격한 변화보다는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드러난 문제점들만을 개선하고자 했었다. 스스로가 권문세족이었고, 지주였고, 토호였다. 급진파 사대부들에 의해 조선이 건국되면서 잠시 힘을 잃기는 했지만 그렇더라도 여전히 그들은 고려의 기득권 가운데 많은 것들을 유지하고 있었다. 정도전과 조준 등이 급격한 개혁정책을 펴지 못한 이유이며, 사병혁파 등 기득권을 견제하기 위한 정책들을 끊임없이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한양천도도 결국 이들 고려의 기득권들을 개경과 떼어놓으려는 시도였다.
그런데 1차 왕자의 난으로 그나마 조선건국을 주도했던 급진파 사대부 대부분이 몰락하여 사라졌다. 조정을 장악한 것은 조선건국에 반대했던 온건파 사대부였다. 태종 당시에는 태종 자신이 혁명을 주도하기도 했으니 그를 감히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세종이 즉위한 뒤 태종마저 죽자 태종의 공신이라는 타이틀을 등에 업은 기득권에 의한 혁명의 후퇴가 본격화된다. 태종에 의해 실시된 정책마저 그의 신하들에 의해 세종 때에 철회되었다. 이들이 또한 나중에 세조를 도와 정난을 일으키는 세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태종이 있었기에 세종도 있었다. 태종으로 인해 건국초기 조선의 모든 기반이 단단히 다져졌다. 하지만 한 편으로 조선건국의 이념이 바로 그것이었던가. 하지만 조선건국 이후 태종은 태조로부터 소외되었고, 조선의 권력으로부터 멀어지고 말았다. 태종에게 있어 조선은 단지 타도해야 할 대상이었던 셈이다. 정도전의 이상은 그렇게 좌절되었다. 조준 역시 왕자의 난 이후 뒷방늙은이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항상 그렇다. 순리를 거스르고 억지로 권력을 쥐려 하는데 부작용이 없을 리 없었다. 1차 왕자의 난도 그렇고, 계유정난도 그랬고, 중종반정과 인조반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억지로 권력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피가 흐르고 역사의 흐름이 틀어진다. 하지만 또 그것이 역사일 것이다. 우리가 아는 있었던 사실이다. 냉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