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탐정 네우로 - 마인의 전지와 전능에 패하다...
작중 악마적 방화범 카사이 겐지로가 말한 것처럼 범죄든 추리든 결국 인간이라는 한계 안에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어느날 신이든 악마든 갑자기 나타나서 사람을 죽이고 재산을 불태운다고 그것을 범죄라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것들은 그냥 재앙이라 불리운다. 인간의 능력으로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재앙이다.
추리 역시 마찬가지다. 마계의 다양한 도구를 사용해서 이미 인간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알지 못하는 것들마저 얼마든지 알 수 있다. 그나마 패널티처럼 남아있는 것이 마계의 마인이기에 인간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래서 네우로의 곁에는 누구보다 인간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카츠라기 야코라는 인간 소녀가 존재한다. 하지만 어차피 야코가 아니더라도 사건의 전말은 이미 네우로에 의해 낱낱이 밝혀진 지 오래다. 그럴 것이란 기대와 확신이 있다. 추리가 성립할 수 있을까?
그래서 굳이 네우로가 마계를 떠나 인간계까지 와서 먹고자 했던 수수께끼들은 겨우 그의 생명을 유지하기도 급급한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계속해서 약해져야 하고, 한계를 가져야 한다. 그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이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마인 네우로에 대비되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인간 X였다. 네우로를 함정에 빠뜨려 궁지에 몰아넣고 마침내 목숨까지 위협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마인인 네우로에 비해 인간이라는 X의 한계가 너무나 분명했다. 그래서 더 강하고 더 악한 인간을 넘어선 또다른 존재가 필요하게 되었다. 만화 '바쿠만'에서 니즈마 에이자가 그랬던 것처럼 약해서 필요없어진 X를 대신할 새로운 악역 '식스'를 등장시킬 필요가 생겼던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커져버린 네우로와 식스의 싸움으로 인해 추리라고 하는 애초의 목적은 흔적도 없이 파묻혀 버리고 만다.
아마 우리나라였다면 이 시점에서 네우로와 야코 사이의 로맨스로 한참을 때울 수 있었을 것이다. X와의 사이에 삼각관계를 만들었어도 그만큼의 분량은 확보된다. 네우로의 과거 사연까지 더해지면 분량은 더 늘어난다. 과거 전지라는 한계를 무시했던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선택했던 방식들이었다. 다른 이유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던 주인공의 능력은 무력화되었다. 마계의 마인이 인간세상에서 추리를 하며 사건에 내재된 수수께끼를 식량으로 삼는다는 의도는 훌륭했지만 디테일이 아쉬웠다.
그래서 더 안타까운 것이 마계의 마인이 탐정으로 등장하는 만큼 동정이나 연민의 여지 없는 악 그자체로써 묘사된 범인들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냥 나쁜 것이다. 그냥 악한 것이다. 본능적인 악이 그들로 하여금 범죄를 저지르도록 만든다. 심지어 범인이 아닌 경우에도 추악한 자신의 속내를 적나라하게 노출시킨다. 'X'가 등장하며 삼켜버린 것들이다. '식스'가 모조리 삼켜버려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마계의 마인이 누구보다 인간다워졌다. 네우로가 그렇게까지 강력한 마인이 아니었다면.
아주 오래전에 읽었었다. 중간에 어떤 이유에선가 보다 말았을 것이다. 다시 새삼스레 기억을 떠올리며 더듬어 읽어내려갔다. '식스'가 등장하면서부터 고조되는 긴장감 만큼이나 실망이 밀려들고 있었다. 흔한 배틀물이 되어 버리고 만다. 머리보다는 몸을 쓰는 원초적 폭력에 자신을 맡긴다. 너무나 전형적인 엔딩이다.
굳이 찾아읽을 필요가 있는가. 초반은 그런대로 신선하다. 참신하면서도 나름대로 작가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중반 이후로는 작가가 만화에 끌려다니며 방향을 잃게 된다. 전형적인 재미는 있지만 만화만의 재미는 찾아보기 힘들어진다. 아쉽다. 그래도 끝까지 읽었다. 실망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