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어셈블리 - 정치인 진상필, 국회에서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들

까칠부 2015. 9. 17. 04:44

국회에서 어떻게 법이 만들어지는가를 텍스트가 아닌 영상으로 생생히 지켜본다. 법을 발의하고, 상임위에 상정하여, 심사받고, 의결하여, 법사위 의결을 거친 뒤, 국회본회의에서 표결로써 확정한다. 법안에 동의하는 발의자를 확보하고, 상임위부터는 동료국회의원들을 설득하여 법안에 대한 지지를 구한다. 본회의에서는 정당과 계파를 넘나드는 보다 큰 정치가 오가게 된다. 하기는 정치라는 자체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도의 기술인 것이다.


반드시 법안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 법안이 가지는 이미지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어딘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안보와 관련한 이미지를 가지고 싶을 경우 국방위에서 발의하는 법안에 자신의 이름을 넣고 싶을 것이고, 여성들에 좋은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 여성과 관련한 법안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 싶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판단하고 이용하는 것도 고도의 정치적 기술이다. 그래서 박춘섭(박영규 분)도 집권을 위해서라도 의제를 주도하고 싶은 제 1야당인 한국민주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이용하려 한다. '배달수법'은 여당의 일개 국회의원이 아닌 제 1야당 한국민주당의 이름으로, 그것도 오세창(박지일 분) 자신이 대표로 있는 동안 발의되고 통과되어야 할 법이다.


역시 국회의원 개인보다는 공천권을 쥐고 있는 당지도부나 계파수장의 판단이 현실에서는 더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비대위원장을 맡으며 당권을 틀어쥐게 된 박춘섭의 판단에 의해 국민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행동은 결정된다. 박춘섭의 설득에 넘어간 오세창의 판단에 의해 제 1야당인 한국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 역시 개인의 입장과는 상관없이 진상필(정재영 분)이 상정한 '배달수법'의 의결을 지연시키는데 동참하고 있었다. 그래서 진상필도 직접 오세창을 찾아가 설득을 시도한다. 진상필과 홍찬미(김서형 분)의 의석을 더하면 과반수 여당인 국민당을 상대로 한국민주당이 상정한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진상필의 진심어린 설득과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거래가 법사위까지 법안을 일사천리로 통과케 한다.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이 있고,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있다. 정치의 기본이다.


아마 마지막 본회의에서의 무기명투표는 국회의원 개인의 양심과 역량을 가리는 현실의 정당 및 계파정치의 모순을 고발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에게는 자신만의 양심과 이념, 신념이 있을 것이다. 그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할 권리가 주어져 있고, 그를 감당할만한 역량 또한 갖추고 있다. 자신은 아니더라도 보좌관들이 부족한 부분들을 채우고 더해준다. 하지만 현실에서 때로 많은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양심과 이념과 신념을 배반하는 판단을 해야 하고, 아무런 확신도 자신도 목적도 없는 행동마저 의지와는 상관없이 해야만 한다. 그리고 국회 전체와 함께 비난을 듣는다. 그러나 국회의원이라고 국민들과 전혀 다른 것을 보고, 다른 것들을 듣고, 다른 판단과 행동을 즐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일 게다. 그렇게 만드는 구조적인 모순이 있다. 국민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동요에 반드시 대가가 따를 것이라는 박춘섭의 한 마디가 다른 모든 가능성을 틀어막아 버린다. 국민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자기들만의 논리로 돌아가는 국회의 현실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치란 더 가치있는 것이다. 더 높은 곳에서, 더 멀리 넓게 보며, 일반 국민들은 전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고차원적인 것들을 논의하고 실천한다. 국회의원이란 일반 국민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다. 전혀 다른 차원에 존재해야 하는 이들이다. 그것은 어쩌면 국회의원으로써 박춘섭 개인이 가지는 긍지이고 자존심이었을 것이다. 개인이 먹고 사는 문제는 어디까지나 개인이 해결할 문제다. 굳이 국회의원까지 나서서 신경쓸 필요 없이 얼마든지 개인의 역량과 노력에 맡겨 해결할 수 있도록 놔두어도 되는 사소한 문제다. 설사 개인의 역량이나 노력이 부족해서, 혹은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더라도 고작 몇몇 개인들이나 곤란을 겪을 뿐이다. 그보다 더 가치있고 더 의미있는 일, 시간이 지나서 더 큰 결과로 돌아올 수 있는 그런 대단하고 특별한 일을 국회의원들은 해야만 한다. 그래서 진상필의 발의한 '배달수법'은 포퓰리즘에 불과하다. 정치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을 하자는 게 정치가 아니다.


다만 정치란 이념으로 하는 것이라는 박춘섭의 주장에 대해서는 십분 동의하는 바다. 누군가는 패자에게 기회를 주자 말한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노력하며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한 낙오자들에게 새롭게 일어설 수 있도록 기회를 주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 편으로 그것이 결국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일 수 있다는 부분을 지적한다. 그것은 어쩌면 사회 전체가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는 비용이다. 성장인가, 아니면 복지인가. 설사 중도라 할지라도 둘 모두를 추구하려 할 때 그 비중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도 서로 입장이 갈리게 될 것이다. 성장을 우선한다면 성장에는 과연 어느 정도의 자본과 자원을 투입할 것인가. 복지를 우선하더라도 복지에 쓰이는 자원과 자본은 어느 정도이면 적당하겠는가.


그래서 토론이라는 것도 이루어진다. 의결이라는 것도 하게 된다.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눈으로, 다른 방향에서 하나의 대상을 보고 그것을 가지고 의견을 나누며 전체의 입체적인 모습을 그려간다. 장점과 단점, 보완할 점과 그럼에도 추진해야 하는 이유 등이 보다 구체화되어간다. 그래서 어느 나라든 민주주의를 추구한다면 두 개 이상의 서로 다른 이념과 성향을 가지는 정당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때로 필요하다면 서로 결코 섞일 수 없는 이념과 지향을 가진 정당들이 연대를 하기도 한다. 거래와 타협을 통해 최소한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스스로 시도한다. 그런 공존과 타협이 민주주의 그 자체다. 중도란 그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존재할 수 있는 수많은 이념과 신념과 성향과 지향의 하나에 불과하다. 국민을 위하더라도 그 방법에 있어서 분명 국회의원마다, 그리고 정치인마다, 심지어 국민 개인마저 서로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잘못된 것이 아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확실히 이제는 진상필도 현실정치인이 되어 있었다. 동료 국회의원을 설득하고 동의를 구한다. 동의를 구할 수 없으면 약점을 이용해 거래를 할 줄 안다. 평소 언론과 가까운 홍찬미를 이용해 언론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얻으려 하기도 한다. 시작은 김규환(옥택연 분)의 일인시위였지만 그것을 전국민적인 여론으로까지 확산시킨 것은 역시 언론의 힘이었다. 나쁜 것이 아니다. 그것이 정치다. '배달수법'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하기에 반드시 반대해야 하는 법안만 아니라면 한국민주당의 법안통과를 지지해 줄 수 있다.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혼자서 자신의 정의감으로만 독불장군으로 하는 정치를 흔히 독재라 부른다. 그럴만한 힘도 위치도 가지지 못했다면 홀로 고립된 채 따돌림당하다 끝나고 말 것이다. 반드시 하고 싶은 일이 있기에 도리에서 벗어난 것을 제외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그만큼 간절한 의지라는 뜻일 게다.


마지막 반전을 꾀한다. 대통령이 최인경(송윤아 분)에게 전화한 그 순간 박춘섭은 백도현과 함께 대통령에게 본회의에서 통과한 법안에 대한 거부권사용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념도 신념도 아니다. 단지 고집이다. 자신이 나서서 소속국회의원들을 단속하며 시작된 본회의가 무기명투표로 인해 자신의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로 끝나고 말았다. 자신의 신념과 어긋난다. 어쩌면 비대위원장으로서 당권을 거머쥐며 손에 쥔 권력에 취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야마로 권력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을 상대로 무리수를 두고 만다. 대통령의 약점을 잡아 당권을 넘겨받고, 이제는 거부권까지 강요하며 압박한다. 여기서 물러서는 것은 패배이며 굴욕이다. 박춘섭이 본회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 그대로 대통령에게도 적용된다. 전면에 나선 순간 더 이상 숨을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이제껏 약점이라고는 없어 보이던 박춘섭에게 치명적인 틈이 생기고 만다.


백도현의 내면이 혼란스럽다. 비서실장 임규태(정희태 분)를 통해 그동안 자신이 해 온 정치의 끝을 보게 된다. 박춘섭이 하는 주장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거부하지도 못한다. 억지로 논리를 꾸며내어 진상필을 공격해 보지만 그것이 얼마나 비루한가를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진상필은 한없이 당당한데 자신은 끝없이 초라해만진다. 이제는 질시와 분노마저 스스로 지쳐버린다. 이제 마지막회다. 어떻게 마무리지으려는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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