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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파와 내가권, 중국무술이 약해진 이유...

까칠부 2015. 9. 18. 00:56

명이 망하고 청이 들어서자 지식인 가운데는 야만족에 불과한 이민족의 지배를 받는 현실에 불만을 가지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불만을 가지는 정도가 아니라 부당한 현실을 억지로라도 바로잡으려는 이를테면 인지의 부조화를 시도하려는 이들도 나타나고 있었다. 바로 황종희와 황백가 부자가 그런 이들 가운데 하나였다.


분명 야만족인 만주족이 가진 외적인 힘에 굴복하여 중화의 한족은 그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한족의 진정한 힘은 그런 것이 아니다. 외적인 힘 이외에도 보다 근본적인 내적인 힘을 한족은 원래 가지고 있었다. 그같은 주장을 담은 책이 '왕종남선생기'와 '내가권법'이다. 내가권이니 내공이니 하는 말들이 처음으로 중국무술계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때부터였다.


무당파와 장삼봉이라는 이름도 바로 이를 계기로 무술가들 사이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천하공부출소림, 천하의 모든 무술은 소림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천하의 모든 무술이란 이미 드러나 있는 외가권을 뜻한다. 소림은 중국 선가가 시작된 불교의 성지다. 외가권에 가려진 진정한 힘이라면 당연히 그에 어울리는 무게의 이름이 필요하다. 무당파는 또한 명황실로부터 지원받던 유명한 도교의 성지 가운데 하나였다.


기존의 외적인 힘에 의존한 무술은 껍데기다. 진정한 힘은 내면에 숨어 있다. 도가의 양생법이 내공이라는 이름으로 그 힘의 정체가 된다. 진짜 무술은 무술의 동작에 그 힘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하필 글줄이나 읽은 지식인계층인 신사들이 교양삼아 무술을 배우고 익히며 그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무술들을 이론화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가진 유교와 불교, 도교의 지식들이 적극 사용되면서 보다 고도화된 체계를 갖추게 된다. 문제는 과연 이들이 얼마나 자신이 익힌 무술로 실전을 경험했는가 하는 것이다.


신사들이 배운 무술이란 결국 비슷한 계층 내에서 소비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문화는 하방지향성을 갖는다. 무술가들의 입장에서도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이들 유한계층인 신사계급의 마음을 사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명중엽에도 이미 부귀한 신분의 젊은이들 사이에 겉보기만의 화권수퇴가 유행하고 있음을 비판하는 이들이 있었다. 어차피 실전에서 쓰일 일도 없는 무술이라면 보기 좋고, 그러면서 대단한 의미를 가지는 그런 것들이기 쉬웠다. 청말에 이르면 화약무기가 일반화되며 더욱 무술의 필요성은 줄어들었다.


이소룡의 지적이 옳다. 아니 지금도 많은 무술가들이 그리 비판하고 있다. 내공을 버리라. 내공을 버려야 중국무술은 원래의 자신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 팔극권이 질실고박이라 하여 높이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론화 형식화되기 이전의 실전을 위해 쓰이던 중국무술의 원형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 단순하면서 호쾌하고 그리고 힘차다. 허튼 동작이 적다.


중국무술이 원래 실전성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남파의 경우 대부분 흑사회를 통해 만들어지고 발전한 실전무술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중국무술이 정작 현대에 와서 겉보기 뿐이라 비판받는 이유. 그런 무술들이 또 많이 배우고 많이 익히며 널리 알려지고 있다. 그런 것들이 중국무술의 전부라 여겨진다. 역시 배우기에는 보기 좋은 것들이 더 좋다.


원래 중국무술에서 내공이란 기라든가 그런 특별한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내공이다. 내면에 깃든 힘이다. 경험과 지식, 집중력, 인내력, 직관, 사고력 등등. 원래 무술은 머리로 하는 것이다. 단련된 육체를 활용하기 위한 소프트웨어다. 너무 멀리 많이 왜곡되었다. 아마도. 시대의 흐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