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셈블리 - 아름다운 대미, 국가가 의무고 국민이 권리다!
결국 대통령의 거부권행사와 법안 재상정까지 보여준다. 국회의 이야기다. 국회의원들의 이야기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은 국회밖에 존재한다.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 국회의 역할 가운데 하나다. 굳이 대통령까지 직접 나설 필요 없이 국회 안에서 국회의원 자신의 판단에 의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처리한다. 비대위원장이 되어 여당인 국민당의 실세로 떠오른 박춘섭(박영규 분)의 몰락 역시 마찬가지다.
반드시 박춘섭이 먼저 나서서 압박한 때문만은 아니었다. 최인경(송윤아 분)이 전화를 받았을 때도 진상필(정재영 분)이 발의한 '배달수법'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아직 자신의 의중을 드러내기도 전에 박춘섭이 먼저, 그것도 직접 기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어 대통령의 거부권행사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법안이 재상정되었을 때도 국회에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배달수법'에 대한 확고한 반대의지를 드러내며 국민당소속 국회의원들의 선택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있었다.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대통령 자신인데 정작 지나치게 앞서나간 탓에 정치적인 책임은 박춘섭과 나눠 지게 되었다. 더구나 자신의 권위를 앞세워 소속 국회의원들을 동원하려 했으니 결과에 따라 리더십과 정치적 역량에 대한 평가도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권력은 독이다. 마약이다. 잠시 그것을 잊는다.
아직은 여당소속인 대통령까지 동원하려 했던 박춘섭과는 달리 진상필은 오로지 국회의원들만을 대상으로 그들을 설득하려 한다. 국회의장을 찾아가고, 야당대표들을 찾는다. 차라리 박춘섭이 개인의 탐욕만을 위해 그런 판단을 했다면 오히려 설득은 더 쉬웠을 것이다. 서로가 다른 국민들을 대표하고 있다. 박춘섭이 대표하는 국민과 진상필이 대표하는 국민이 다르다. 서로가 대표하는 국민을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그것이 박춘섭의 신념이었다. 자신이 살아온 시대의 흔들림없는 정의였다. 마지막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백도현(장현성 분)을 찾아간다. 오로지 백도현만이 자신을 도울 수 있다. 마지막에 결과를 바꾼 것도 국회의원으로서 자신을 되찾은 백도현에 의해서였다. 자신이 서 있는 이 곳이 국회라는 사실을 잊었다. 자신은 무엇 때문에 국회의원이 되려 했던가. 권력의 정점에 서고자 했던 것인가. 국회와 국회의원이라는 본래 의미를 떠올리고 만다.
겨우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된 전보좌관 임규태(정희태 분)를 찾아가 씹어뱉듯 다그쳐묻는다. 과연 지금의 자신이 당신이 보좌관으로써 모시던 그 백도현으로 보이는가. 그 단계를 넘어서면 그냥 체념하게 된다. 자신은 원래 그런 인간이다. 그런 정도에 불과하다. 나아가 모두가 같다. 남들도 모두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얼마든지 그래도 된다. 그래도 상관없다. 다행히 그 바로 앞에서 멈춰서고 만다. 임규태의 요구대로 준비한 무기명채권이 들어있는 가방을 앞에두고 그는 그 앞에서 간신히 멈춰서고 만다. 마지막 존엄이며 긍지였을 것이다. 박춘섭이 자신을 찍어누르려 하고 있었다. 부탁도 요구도 아닌 명령이고 지시였다. 자신의 처지를 깨닫는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 그런 자신을 더구나 최인경과 진상필이 흔들어댄다. 껍질을 벗는다. 가장 본능적인 욕구에 충실하기로 한다. 넘어서는 안되는 선을 지킨 것은 그래서 대통령이 아닌 백도현이었다. 박춘섭을 향한 치명적인 비수다.
의미심장하다. 박춘섭과 진상필이 국회에서 마주친다. 박춘섭의 뒤에는 국회의원들이 서있다. 진상필의 뒤에는 그를 지지하는 옛동료들이 함께하고 있다. 이미 서로가 대표하는 국민에 대해 치열한 설전이 오간 뒤였다. 진상필의 뒤에는 그가 대표하려는 국민들이 서 있다. 하기는 박춘섭이 대표하는 국민들은 굳이 그런 자리까지 따라오지는 않을 것이다. 더 아쉽고, 더 절박하고, 그래서 더 간절한 국민들이 굳이 국회의원의 뒤를 따라 국회까지 들어선다. 진상필이 더 옳아서가 아니었다. 더 잘나서는 더욱 아니었다. 그만큼 진상필이 대표하려는 국민들의 요구와 필요가 더 강했기 때문이었다. 진상필로 하여금 이 한 마디를 대신케 한다.
"자신의 의무를 다한 국민들에게 국가는 의무이고 국민은 권리다!"
박춘섭의 몰락이 아쉽다. 이념적으로야 자신과도 크게 거리가 있지만, 드물게 자신의 이념과 신념에 충실한 정치인이다. 정도를 넘어서는 경우도 거의 없고, 보편적인 상식을 크게 거스르는 경우도 거의 없다. 권력욕이야 있지만 정치란 결국 권력의지인 것이다. 더 나은 정책, 더 국가와 국민,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법과 정책들, 더 국민들이 좋아하고 반길만한 말과 행동들을 보이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권력이다.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싶어서다. 지금 가지고 있는 권력을 놓고 싶지 않아서다. 진상필의 순수한 열정도 필요하지만 박춘섭의 노회함도 현실에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과연 박춘섭으로 하여금 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선거운동에 나서게 만든 주체는 누구일까? 국민당의 공천방식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결국 힘겨루기에서 패해 당에서 밀려난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단지 정치공학적 결과에 불과하다.
'배달수법' 재상정 표결 이후의 에필로그들은 사실상 최인경을 위한 할애였을 것이다. 결국 진상필의 뒤를 이어 국민당의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에 출마하고 당선되었다. 진상필의 도움까지 얻어 전국최다득표의 국회의원으로 당당히 국회로 들어서고 있었다. 권선징악이라기보다는 국회의원에 대한 욕심을 버렸기에 백도현이나 홍찬미(김서형 분)나 홀가분하고 자유롭기만 하다. 오히려 권력을 놓았기에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 진상필은 당당하다. 꿈을 이어간다. 국민진상의 뒤를 이어 딴청계의 뜻을 이어간다. 정치란 미래고 희망이다. 어느 시점에서 완결되는 이야기가 아닌 계속 이어지는 진행형의 이야기다.
진상필의 국회연설이 아프도록 가슴을 울린다. 국가를 위한 국민의 의무는 강제다. 의무를 저버리면 법적인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국가의 국민에 대한 의무는 선택이다. 국가가 요구한 모든 의무를 다했는데도 국가는 국민들에 돌려줘야 할 것들을 오히려 망설인다. 국가가 요구한 모든 의무를 다했다면 이제부터는 국민이 국가에 요구할 차례다. 당연한 말이지만 현실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 서로 다른 국민을 대표한다. 박춘섭의 당당한 이 한 마디도 마음을 울린다. 그것이 정치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그것이 국회이며 국회의원이라 불리는 이들이다. 정치란 어렵지도 너무 멀리 있지도 않은 어쩌면 너무나 가까운 우리들 자신의 상식일 것이다.
진상필을 용접공으로 설정한 이유가 드러났다. 맞다. 그것이 정치다. 서로 다른 조각들을 서로 맞추어 붙이는 것. 다만 누구를 중심으로 어디에 비중을 두고 조각들을 모아 붙이는가. 어떤 모습, 어떤 용도로 모아 붙여서 만들려 하는가. 그래서 오늘도 국회 안에서, 혹은 국회 밖에서 국회의원들은 끊임없이 서로 싸우고 다툰다. 주의깊게 살피고 들어야 하는 이유다. 선택은 국민이 한다. 국민의 손에 들린 표가 한다. 민주주의란 과정이다. 멋진 마지막이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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