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데이 - 지진과 재난의료, 그러나 서론이 길다
흥미롭다. 전혀 기대도 안했었다. 미국이나 중국처럼 땅이 아주 넓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본처럼 지진을 일상으로 겪는 것도 아니다. 하기는 그런 점에서 기왕 재난드라마를 만들려면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장마나 태풍으로 인한 홍수를 소재로 삼았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그래서는 또 병원을 배경으로 하는 메디컬드라마가 성립하기 어렵다. 역시 전쟁이 아니면 지진이 최선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아쉽다. 지진이란 그만큼 한국인의 일상과 거리가 먼 낯선 소재다. 아무리 국회의원이 나서고, 전문학자와 언론인이 강하게 경고를 하더라도 드라마속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한국인 시청자 역시 그것을 실감하기란 매우 어렵다. 단순히 앞으로 일어나게 될 사건에 대한 복선이 아니다. 시청자의 불안을 유도하며 장차 맞이하게 될 사건에 대비하여 긴장을 고조시킨다. 이를테면 비일상적인 사건을 맞이하는 준비단계인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도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서울에서 지진이 일어난다는 것은 너무 멀고 낯선 실감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서로 겉돌게 된다.
차라리 낯설고 실감하기 어렵다면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도 좋았을 것이다. 오히려 지질학자가 서울에서 큰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을 지진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까지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그저 어느 기자의 호기심이 과거 자료를 살펴보게 만들었을 뿐 현실에서 서울에서 일어날 큰 지진은 결코 있을 수 없는 흥미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3류 인터넷 언론사에서 오로지 흥미만을 위해 작성한 기사였다면 더 좋았을 뻔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드라마 초반 시청자의 일상을 깨뜨리며 지진이라는 재앙이 그야말로 밀어닥친다.
너무 관계를 이리저리 꼬았다. 캐릭터 자체는 상당히 전형적이다. 오로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주위와 타협하지 않는 사회부적응 외과의사 이해성(김영광 분)을 중심으로, 오로지 돈만을 아는 병원장 박건(이경영 분)과 성공지향적인 실력자 일반외과 부교수 한우진(하석진 분), 여기에 아직 의사로서 자각이 부족한 부산출신 정형외과 레지던트 정똘미(정소민 분)에 한우진과의 관계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 이해성의 우군 간호사 박지나(윤주희 분)까지. 현실과 이상의 타협을 시도하는 강주란(김혜은 분)의 옆에는 젊고 야심찬 국회의원 구자혁(차인표 분)이 있었다. 노숙자와 친구먹는 괴짜 구조반장 최일섭(김상호 분)은 우연히 마주친 자전거동호회 회원들과 싸움을 하고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후송되고 있었다. 다른 캐릭터들 은소율(김정화 분)과 안대길(성열 분), 온정원(주현진 분)은 그나마 시간적인 문제로 그저 스쳐만 지나가고 있었다. 서울에 지진이라는 큰 사건이 일어났는데 언제 이 많은 이야기들을 담아내려 하는 것일까.
아니 설사 등장인물들 사이에 갈등을 강조하려 하더라도 최대한 압축하여 나머지 이야기들은 지진 이후로 미뤄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응급수술 장면도 사실상 필요없었다. 그저 일상적인 병원의 모습이면 좋았다. 이해성이 반드시 옳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박건이 반드시 틀려야 하는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모든 평가와 판단은 드라마가 끝나는 순간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그저 부딪히면 되었다. 다투고 싸우면 되었다. 일상적이면서 숨가쁜 초반이 지나면 바로 전혀 예상치 못한 재앙처럼 지진이 밀어닥치고 응급상황이 시작된다. 드라마를 시청하는 입장에서도 이해하기 쉽다. 이것은 재난의료드라마다. 아직 한국에서 시도한 적 없는 새로운 장르다. 기대가 높아진다.
확실히 한국드라마는 관계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 캐릭터 자신보다, 혹은 드라마의 중심이 될 사건보다, 캐릭터와 캐릭터의 관계에 집착한다. 그것만을 보다 상세하게 보여주려 노력한다. 그래서 치열하고 따뜻하다. 하지만 그래서 가끔은 본질을 놓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가. 무엇이 드라마가 보여주고자 하는 주제이며 줄거리인가. 결국 남는 것은 캐릭터와 캐릭터 사이에 서로 부딪히고 싸우고 사귀고 헤어지는 이야기들 뿐이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고, 누가 잘하고, 누가 못했고, 누구와 누구가 어떻게 되었고. 숨은 사연이 없어도 캐릭터는 매력적일 수 있고, 굳이 관계를 강조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인간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어찌되었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가 크다. 지진이 일어났다. 아무렇지 않게 라면을 먹고 고기를 구워먹는 사이 그야말로 재앙처럼 그들의 일상에 지진이라는 사건이 밀어닥치고 말았다. 본격적인 시작이다. 이해성은 외과의이며 구급의다. 박지나는 그의 충실한 협력자다. 병원이 전장이 된다. 머릿속을 스치는 해외의 여러 드라마들이 있다. 어떻게 그려나갈 것인가. 다만 아직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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