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혐오와 정치의 이상화...
하기는 여성운동에 비판적인 사람일수록 그렇게 말하고는 한다.
"진정한 여성운동가라면..."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들이 더 소수성애자를 위한 활동에 그런 비판들을 하고는 한다.
"진정으로 동성애자들을 위하려 한다면..."
그래서 한때 '진정성'이라는 말이 그리 끔찍하도록 싫기도 했었다.
베르베르 베르나르의 소설 '개미'에서도 개미에 대한 환상을 키우다 개미가 가지는 현실의 잔혹함에 배반감을 느껴 오히려 개미를 박멸하려 하는 과학자 이야기가 나온다.
여성에 대한 환상이 여성에 대한 혐오를 키운다. 진중권의 지적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여성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 여성을 경험할 기회가 부족하다. 그래서 현실의 여성보다는 이상화된 여성만을 관념적으로 품고 사랑하게 된다. 현실의 여성이 더럽고 추하다. 그래서 항상 여성혐오자들을 보면 아니나다를까 이상적인 여성상을 전면에 내세우며 이야기한다.
정치무관심층이 그렇다. 정확히 정치혐오층이다. 어차피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다. 어차피 이놈이나 저놈이나 썩기는 매한가지다. 기준이 0에 수렴하고 있으니 8이나 13이나 0에서 멀기는 매한가지다. 그러므로 다 썩었으니 아예 둘 다 욕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겠다.
정치인이라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세상에서 벗어나서 천상의 이슬만 먹고 살아가는 존재도 아니다. 유권자가 썩은 만큼 정치인도 썩는다. 사회가 더러워진 만큼 정치인도 더러워진다. 그 가운데 상대적으로 덜 더러운 정치인이 있다. 덜 더러워지려 노력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그를 통해 사회는 조금 더 깨끗해지고 조금더 바르게 바뀐다.
하기는 교육부터 그렇다. 한국의 교육은 못하는 것부터 바로잡는 교육이다. 더 나은 것이 있다. 더 잘하는 것이 있다. 그러나 더 못하고 못하는 것들만을 본다. 그것들을 배제하려 한다. 다그치고 채찍질한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 그래서 정치를 외면한다고 정치가 깨끗해지는가.
0이 아니면 더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1도 2도 다 더러운 것이다. 똑같이 더러우니 똑같이 0으로 만들자. 한 번에 모든 것이 다 쉽게 이루어지면 세상에 어려울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이미 곳곳이 다 잔뜩 더러워져 있는데 한번에 깨끗이 한다고 모두 깨끗해질 리는 없다. 노력하는 것이다. 과정이다.
누군가에게는 배제해야 할 대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당을 지탱하는 중추다.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인물이다. 동지적 연대를 포기할 수 없다. 그마저 비난한다. 모두 썩었다. 더럽다. 실패했다.
선의는 믿는다. 하지만 선의만 믿는다. 그래서 사실 처음부터 좋아하지 않았다. 2007년과 2012년 국민은 다름아닌 정치혐오를 선택했다. 정치를 하지 않을 정치인을 뽑았다. 실제 그들은 정치를 하지 않았다.
깨끗한 것보다 깨끗해지려는 노력과 의지, 깨끗해질 수 있는 능력과 실력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다. 깨끗하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무런 신뢰도 얻을 수 없다.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일베의 이유일 것이다. 세상과 인간에 대해 무지하다. 이상화된 논리가 '팩트'란 이름으로 유행한다.
여러가지로 답답하다. 다시 말하지만 정치란 이상을 향해 나가는 과정이다. 결론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