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디데이 - 압도적 영상과 군상의 파편, 한국드라마의 새로운 경지를 열다

까칠부 2015. 9. 26. 10:08

압도적이다. 물론 허술하다. 하지만 어차피 드라마란 당장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전부다. 나머지는 상상으로 대신한다. 보이는 것들을 조각삼아 의도한대로 재구성한다. 지금 여기서 보이는 이 모습들이 다른 어딘가에서도 연속적으로 보여지고 있으리라. 의식의 관성이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노린다. 가장 적절한 곳에 가장 적절한 수준의 CG를 사용한다. 남산타워와 한강이 가지는 상징성을 이용한다. 더 많은 것들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의 한계를 인정한다. 여기는 헐리우드가 아니다. 막대한 자본을 동원하여 만드는 대작 블록버스터가 아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필요한 만큼만, 최대한의 효과를 노린다.


지진이라는 끔찍한 재난이 평범한 서울시민들의 일상에 밀어닥친다.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무너진다. 차가 뒤집히고 곳곳에서 폭발음과 함께 화염이 치솟는다. 뒤집히고 부서진 거리에 검뎅이와 피로 범벅이 된 사람들이 모인다. 사실 비현실적이다. 다른 곳도 아닌 서울이다. 더구나 낮이라면 경계밖에서도 경제활동을 위해 더 많은 인구가 그 좁은 공간에 밀집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현실의 한계일 것이다. 어디까지나 TV드라마이고, 이제 겨우 3회를 지나왔을 뿐이다.


파편들이 보여진다. 지진이 서울 전역을 덮치는 사이 강주란(김혜은 분)은 사고를 당하고 아이까지 잃는다. 지진으로 인해 회의가 중단된 구자혁(차인표 분)은 그 와중에도 자신이 얻게 될 이익과 손해를 계산한다. 전기도 수도도 끊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119 구조대는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구하려 하고, 거리와 병원에서 이해성(김영광 분) 역시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정똘미(정소민 분)와 함께 밀려든 환자들을 치료한다. 그리고 그 순간 더 많은 것들을 갖춘 미래병원에서는 병원문을 닫고 몰려든 사람들을 거부하고 있었다.


사람이 죽고 아이가 태어난다. 절망이 폭력으로 바뀐다. 안타까운 슬픔이 분노가 되고 증오와 원망이 된다. 다시 서로를 해치고 다리 서로를 배반한다. 의사가 환자를 포기해야 한다. 심장이 멈춘 상태에서도 살리고자 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던 이해성이 선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빨강과 파랑, 그리고 검정, 세상은 때로 너무 단순해질 수 있다. 살릴 수 있는 사람과 살릴 수 없는 사람과 이미 죽은 사람들.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 마취조차 없이 상처를 꿰매는 장면은 이해성의 각오와 결의를 보여주고 있었을 것이다. 차라리 우습기도 하다. 페이소스다. 얼마든지 괜찮다며 정작 꿰매기 시작하자 웃는 모습을 보이려 필사적이다. 익숙지 않은 - 그러나 반드시 해야만 하는 출산 앞에서 두 의사와 한 간호사, 그리고 한 간호조무사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노숙자가 사람들을 이끈다. 마치 선지자와 같다. 가장 낮은 곳에서 최후의 순간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한다. 하기는 평범한 노숙자는 아니었다. 구걸을 하지 않았다. 어찌되었거나 사람들 앞에서 연주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인정을 그 대가로 받고 있었다. 누구보다 지하철의 구조를 잘 안다. 사람들이 모인다. 시청자들에게 보여준 장면의 조각들이 마침내 모여 하나의 공간에 집중된다. 과연 그곳에서 시청자들이 보게 될 것은 무엇일까. 기적일까. 구원일까. 아니면 더 큰 환멸과 절망일까. 어쩌면 전형적일 수 있지만 재난의 이야기란 결국 인간이 스스로 일어나려는 의지와 희망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만한 드라마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한다. 그리고 감사한다. 다만 이번 3회의 장면들이 첫회에 더 큰 충격과 함께 보여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아직도 가진다. 그만큼 압도적이었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의 현실에 절망과도 같은 재앙이 밀어닥친다.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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