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데이 - 재난과 선지자, 어쩔 수 없는 잔인한 선택 앞에서
때로 희망이 절망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 있는 것은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선택해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 살기 위해. 죽일 수 있고, 죽을 수 있다. 하지만 어쩌면 살 수 있다는 희망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그 잔인한 선택을 가능케 한다. 죄를 짊어진다. 이미 암이라는 절망을 짊어진 환자들에게 더 큰 절망과 고통을 짊어질 이들을 위한 양보를 요구한다.
어째서 하필 암척수 전문병원이었을까. 환자를 떠나보내야 한다. 살고자 하는 환자를 병원에서 내보내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더 큰 고통과 위험 앞에 놓인 환자들을 구하기 위해서. 잔인하다. 하지만 누군가 해야만 하는 일이다. 오로지 효율만을 생각한다. 가능성만을 생각한다. 병원장 박건(이경영 분)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보다는 다급하고 절박한 현실 앞에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만을 어떻게든 할 수밖에 없다.
고민도 있다. 갈등도 있다. 두렵고 불안하다. 과연 자신은 이 무거운 짐을 혼자서 온전히 짊어질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그런 자신을 믿고 기대며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그런 자신을 가까이서 지탱해주는 소중한 동료들이 있다. 의사다. 자신의 환자들이다. 자기가 쫓겨났다고 병원에 사표까지 내고 지진으로 온통 혼란스러운 가운데 여기까지 함께 따라와 주었다. 겨우 어제 처음 본 사이인데도 부산으로 돌아가는 것도 미루고 자신이 시키는대로 무리한 요구에도 기꺼이 따라주었다. 호감을 사려 농담처럼 내뱉은 말인데 여전히 자신을 '브라더'라 부르며 곁을 지켜준다. 자신의 손으로 받은 쌍동이들과 쌍동이의 엄마도 어떻게든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위기는 영웅을 부른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을 만났을 때 사람들은 기댈 수 있는 누군가를 찾게 된다. 도무지 어디로 가야 할 지 길도 빛도 보이지 않을 때 자신을 붙잡고 이끌어 줄 누군가를 찾아 그에게 기대려 하게 된다. 종교에서는 그들을 선지자라 부른다. 고난에 빠진 이들을 구원으로 이끈다. 자신이라는 자각조차 없다. 벌써부터 모두가 자신만 바라보고 자신에 의지하고 있음을. 한강미래병원에서 사람들을 이끌고 폐허가 된 길을 지나고 강을 건너 마침내 미래병원에까지 도착했을 때 이해성(김영광 분)에게서 종교적 구원자의 모습마저 보게 된다.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고 모든 짐을 짊어지려 한다.
자식을 잃고 병원에 나타난 강주란(김혜은 분)의 모습도 그래서 상당히 상징적이다. 길잃은 자식을 둔 어머니다. 가엾고 애닲은 모성이다. 재난을 맞아 갈 곳을 잃은 환자들을 위해 기꺼이 나서서 병원장 박건과 거래하려 한다.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겠다. 직접 환자들 앞에 나서서 설득하려 한다. 어떤 비난도 원망도 달게 듣는다. 누구보다 환자를 살리고 싶은 것은 그녀 자신이었을 것이다. 모두를 살릴 수 없다. 자신의 힘으로 모두를 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 가엾고, 더 힘없고, 더 애처로운, 그러면서도 살릴 수 있는 누군가를 위해.
이성으로 판단할 때가 아니다. 상식을 벗어난 재난 앞에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한 가지 구원 뿐이다. 살 수 있다는 희망과 살릴 수 있다는 의지 뿐이다. 사람들이 모인다. 강주란이 길을 열고 이해성의 그 길위로 사람들을 이끈다. 그들과 다른 길을 가려는 사람들이 있다. 벌써 두 사람이 무너지는 병원에서 목숨을 잃었다. 박건의 욕심과 한우진(하석진 분)의 야망, 그리고 구자혁의 계획이 그들이 나가려는 길과 엇갈린다. 희망도 고난도 결국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압도적인 특수효과가 지난 자리는 사람의 이야기가 대신한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재앙의 끝도 역시 사람의 이야기가 채운다. 절망과 탐욕이, 원망과 분노가, 혼란과 다툼이, 그럼에도 끝내 살고자 하는 의지와 희망이. 애써 힘들게 구한 아주머니의 아기가 사실은 강아지였다. 차라리 웃는다. 아무것도 아닌 음료수 하나에도 사람은 웃을 수 있다. 살아간다. 인간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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