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스캅 - 총구를 겨누며 마주선 그들, 시간은 이어지다
클라이막스에 어울리는 압도적인 장면이었다. 지명수배중인 범인 강태유(손병호 분)와 그를 쫓는 강력반 팀장 최영진(김희애 분)이 서로 총을 겨눈 채 마주선다. 아들의 원수이며 아버지의 원수다. 자신을 망친 원흉이며 수많은 범죄를 저질러 온 범죄자다. 광기와도 같은 복수와 치열한 냉정이 그 순간 서로 충돌한다. 강태유를 반드시 죽여주겠다던 약속과도 교차한다. 하나밖에 없던 아들의 죽음에 대한 원한을 끝끝내 놓지 못한다.
긴 대치 끝에 강태유와 최영진은 서로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거의 동시에 쏜 총에 맞고 피흘리며 쓰러진 가운데 다음 한 발을 먼저 쏘아 맞춘 것은 다행스럽게도 경찰인 최영진이었다.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고 고통속에 살게 했음에도 정작 자신의 고통을 이겨낼 정신력은 가지지 못했다. 고통에 익숙하다. 피해자가 느끼는 고통을 자기 것처럼 여기며 온갖 어려움과 괴로움과 고단함을 이기고 여기까지 왔다. 짊어진 것도 견뎌야 하는 것도 다르다. 강태유를 다시 일으켜세운 것은 지금의 자신을 만든 독기이고 최영진에 대한 증오이고 복수심이었을 테지만 그러나 다시 한 발 최영진의 총알이 그의 숨통을 끊는다. 그 순간 최영진의 표정에는 복수를 마친 통쾌함따위는 없었다. 단지 강태유라는 악에 대한 분노와 혐오 뿐이었다. 강태유의 죽음은 완결이 아닌 계속될 그녀의 삶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강태유가 죽고 나서도 에필로그라기에는 조금은 긴 이야기가 그 뒤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은. 사랑하며 범죄자를 쫓는다. 범죄자를 체포하며 서로 사랑하는 일상을 이어간다. 하필 대상이 강태유여서가 아니다. 그는 단지 범죄자였고 경찰로써 반드시 체포하거나 제압해야 하는 대상일 뿐이었다. 강태유가 죽었어도 세상에 악이 남아있고 범죄가 존재하는 한 경찰로써 그들을 쫓고 체포하는 것이 자신의 일상이다. 강태유라고 하는 나름대로 거물이라 할 수 있는 악인에 대한 처절한 능욕이었을 것이다. 강태유가 전부가 아니다. 당연히 끝도 아니다. 일부이고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동안 강태유에 대한 복수심에 흔들리는 듯 보이던 최영진이었지만 그 순간 분명 그 원한과 증오마저 넘어서고 있었다.
사실 지나치게 길었던 에피소드는 드라마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듯 보이고 있었다. 강태유가 사라짐으로써 드라마에는 더 이상 시청자를 긴장시킬만한 요인이 남지 않게 되었다. 아무런 긴장감없이 고저없이 나열되는 영상들을 그저 지켜만 보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분량계산을 잘못해서 어쩔 수 없이 남은 시간을 채우기 위한 용도가 아닌 작가의 적극적 의도가 담겨진 것이라면 어쩌면 매우 탁월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째서 하필 주인공 최영진은 여성이었고 더구나 어머니였는가. 그것도 남편 없이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홀어머니였다. 때로 남편같은 취업문제로 고민이 많은 여동생을 둔 언니이기도 했다. 강력팀의 팀원인 조재덕(허정도 분)이나 한진우(손호준 분), 민도영(이다희 분), 이세원(이기광 분) 등에게도 그녀는 다정한 어머니이고 든든한 손윗누이였다. 경찰의 위험하고 고단한 삶이란 그들에게 일상이다.
그에 비하면 잘못에 대한 대가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전 형사과장 염상민(이기영 분)은 비겁했을 것이다. 그동안 자신이 저지른 죄와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자신이 지은 죄의 대가를 스스로 확인하고 감당해야 한다. 마땅히 그래야 했다. 당사자인 자신의 입으로 직접 모든 죄를 자백하고 다른 범죄자를 처벌할 수 있게 스스로 증인이 되었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죄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그것이 경찰이 하는 일 아니던가. 하기는 그런 내면의 나약함이야 말로 염상민으로 하여금 강태유와 같은 무리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게끔 만든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염상민다운 최후였을까? 아무도 그를 처벌하지 못하고 죄에 대한 대가조차 충분히 묻지 못한다. 강태유의 죄를 입증하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염상민은 강태유와 비슷하다.
당장의 분노를 참지 못한다. 아들의 죽음에 대한 원한과 자신을 파멸시킨 자에 대한 증오, 그리고 자신을 배신한 자에 대한 적개심까지. 도망쳤어야 했었다. 어차피 전국에 자신에 대한 지명수배가 내려진 상황이었다. 하기는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 차와 함께 불태운 시신을 한때 조력자였던 김의원까지 움직여서 진짜 자신의 시체가 맞다는 국과수 부검결과까지 내놓았던 터였다. 법적으로 이제 완전히 죽은 사람이고 수사본부까지 해체되려는 상황이었다. 바로 눈앞에서 자신의 사진이 실린 신문을 사는데도 전혀 의식조차 않고 있었다. 그 방심한 틈을 노려 배신자를 응징하고 원한까지 갚는다. 결국 그것이 비행기표까지 예약하고서도 끝내 도망도 가지 못하고 최영진의 총에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자신의 상처에 약하다. 자신의 고통에 예민하다. 악이란 어쩌면 그같은 연약한 이기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시청자마저 속이는 기기묘묘한 수단들에 의존하지 않는다. 다른 계획따위 없었다. 서로 짜고 맞춘 것도 없었다. 우직하다. 보이는 것이 전부다. 보고 듣는 그것들이 드라마의 전부다. 모르게 계략을 짜고, 음험하게 함정을 감추고, 놀라기야 하겠지만 때로 자연스럽지 않다. 17회에서처럼 최영진이 신체적으로 불리한 여성의 몸으로 자신을 죽이려는 살인청부업자를 제압하는 답답할 정도로 치열한 액션도 불필요했을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기습에 당황하면서도 끝내 경험과 기지로 신체적으로 우월한 남성 청부업자를 제압하고 만다. 기대와 예상이 모두 빗나갔지만 오히려 후련하다. 아마 현실에서도 모든 사람이 그처럼 복잡하게 머리를 쓰며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군더더기없이 깔끔하다.
강태유를 연기한 손병호는 악이 왜 악인가를 몸으로 그대로 보여주었다. 끝까지 자신의 악을 포기하지 않는 진짜 악을 보여주고 있었다. 복수와 정의라는 경계와, 모성과 신념이라는 조화를 김희애 역시 최영진을 통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딱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었다. 탁월한 연기력과 캐릭터가 드라마를 무겁게 힘있게 마지막까지 끌고 간다. 한진우와 민도영의 에필로그는 차라리 이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후속시리즈를 기대하게 한다. 어쩌면 후속시리즈에서 팀장은 민도영이고 한진우는 민도영과 치고받는 베테랑 형사가 되어 있지 않을까. 조재덕은 언제까지나 일선의 민완형사로서 남아있을 것 같다.
기대한 이상으로 완성도가 높은 드라마였다. 확실한 주제와 중심이 마지막까지 흐트러짐없이 유지되고 있었다. 상당히 허술한 듯한 부분도 없잖아 있지만 드라마가 너무 치밀해도 답답한 법이다. 적당히 틈도 보이며 시의성있는 소재를 영리하게 녹여낸다. 무엇보다 캐릭터가 살아있다. 씨줄과 날줄이 성긴 듯 촘촘이 엮인다. 완결된 하나의 드라마가 남는다.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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