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장사의 신 객주 - 야망과 복수, 살기 위한 이유

까칠부 2015. 10. 2. 05:15

유산을 물려받기에 아이는 아직 너무 어렸다. 유산의 가치도 모르고, 관리할 준비도 능력도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후견인이 필요하다. 장차 아이가 자라 충분한 자격을 갖추기까지 대신해서 유산을 관리할 사람이 필요하다. 천오수(김승수 분)는 책문에서 조성준(김명수 분)에게 장사꾼의 도리를 전했고, 이제 다시 한참의 시간이 흘러 악연처럼 조성준과 천오수의 아들 천봉삼(장혁 분)이 만난다. 과연 천봉삼은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을까.


조금, 아니 아주 많이 실망스러웠다. '봉이 김선달'이었다. 김선달 앞에 '봉이'라는 별호가 붙는 계기가 되는 첫에피소드를 그대로 가져왔다. 패러디도 오마주도 아니었다. 너무 유명한 이야기였다. 오래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전래설화였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이미 널리 알려져 있던 이야기를 단지 주인공 이름만 바꿔 자기 이야기인 양 쓰고 있었다. 차라리 그래서 반전을 기대했었다. 익숙한 이야기를 통해 드라마만의 장점과 개성을 보다 강하게 시청자들에 각인시킨다. 익숙한 만큼 관성을 벗어난 충격은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그런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아주 중요한 장면도 아니었다.


하나씩 놓아간다.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천오수를 놓고, 천가객주의 식구들을 놓고, 정혼자인 천소례(아역 서지희)와 그녀의 동생인 천봉삼,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나고 자란 천가객주를 놓는다. 어쩔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여겨야 했었다. 그렇게 믿어야 했었다. 거짓말이더라도 사실이어야만 했었다. 변명이고 핑계였더라도 사실로 만들어야 했었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버리고 놓아버린 자리를 이유들로 채워간다. 이유들이 자신이 된다.


아마 천가객주도 남의 손에 넘어가고 혼자가 된 천소례가 스스로 기생이 되려 하고, 원수인 김학준(김학철 분)을 따라나서 그의 집에서 살게 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자신이 버리고 온 동생 천봉삼은 이미 죽었다. 아니 죽었어야만 했다.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해도 살 수 없었다. 아니라면 아픈 동생을 두고 떠나온 자신은 무엇이 되는가. 만에 하나라도 동생이 죽지 않고 살았다면 다시 만났을 때 무엇이라 변명해야 하는가. 혹시라도 살 수 있었다면 그때 자신은 무엇을 어떻게 했어야 했던 것일까. 답이 없는 물음보다 답이 확실한 현실을 본다. 천가객주는 망했다. 천가객주를 자신이 되찾고 다시 일으켜야 한다. 복수를 해야 한다. 살아가야 할 이유다. 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스스로 몸을 팔고, 원수를 따라간다. 그것만이 오로지 그녀에게 진실이다.


버려졌다. 모두가 떠나고 혼자 남았다. 외롭다. 힘들다. 두고보다는 것은 단지 투정이다. 알고 싶다는 것도 그냥 핑계다. 다시 만나 그저 함께 있고 싶다. 옆에 있으며 예전처럼 기대고 응석부리고 싶다. 조성준에게까지 남겨지며 천봉삼은 자신을 그저 하인으로 부리려는 의원을 떠나 혼자서 길을 나선다. 자신의 발로 직접 보부상을 길러내는 동몽청을 찾아간다. 두고 온 것이 없다. 두고 간 사람만 있다. 오랜만에 조성준을 마주하고서도 짐짓 위악을 부리며 매운 소리를 일삼는 것은 자기만 남겨두고 떠나간 이들에 대한 나름의 심술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원망스럽도록 그립고 반가웠다.


시간이 흘러간다. 어른이 되어간다. 매미를 노리는 것은 버마재비고, 버마재비를 노리는 것은 날랜 제비다. 육의전이라는 헛된 꿈에 취한 길상문을 김학준이 노리고, 그 김학준이 애써 손에넣은 천가객주를 이번에는 신석주(이덕화 분)가 가로채려 한다. 어차피 돈을 앞에 두고 정정당당한 경쟁이니 승부니 하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 큰 욕심이 더 작은 욕심을 잡아먹고, 더 큰 힘이 더 작은 힘을 마음껏 희롱한다. 육의전 대행수 신석주와 경강의 환전객주 김학준 사이에 힘의 우열은 분명하다. 지금껏 형님, 아우님 하며 이익과 행동을 함께 했지만 적서의 구분이 명확했던 시대 적출인 김보현(김규철 분)과 서출인 김학준 사이에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 김학준 자신보다 신석주가 김보현에게 더 큰 욕망을 약속할 수 있다면 결과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어이없게도 길상문과 천오수를 농락하며 파멸로 몰아넣었던 가해자가 이번에는 자신이 더 큰 힘에 농락당하며 피해자로 전락하고 만다. 장차 길소개가, 천소례가, 천봉삼이 살아갈 조선의 현실이다. 그들이 부딪히고, 극복하고, 적응해야 할 대상이다.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많은 사연들이 있었다. 이후 주요인물들의 캐릭터와 행동의 동기가 된다. 조금 길지 않은가 싶지만 대신 군더더기가 없다. 어른들의 이야기다. 이제 어른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려 한다. 아이들의 이야기란 단지 거쳐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래서 더 아쉬울 것이다. 굳이 거기서 사람들에게 이미 익숙한 '봉이 김선달'의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다 썼어야 했는가. 기대가 커진다. 천봉삼과 조성준이 만난다.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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