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 끌러내리기의 이유...
문득 새청지민주연합의 비례대표 장하나 의원이 발의한 '칼퇴근법'에 대한 일반의 반응이 눈에 들어왔다. 노동자들이 부당한 잔업이나 야근에 동원되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일찍 퇴근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되찾을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한다. 그런데 정작 노동자들이 반대한다.
"그게 되겠느냐?"
"부작용만 더 커지는 것 아니냐?"
"반드시 악용될 것이다."
"피해만 더 커지고 말 것이다."
어차피 더 나아질 희망따위 없다. 바란다고 이루어질 리 없다. 구한다고 손에 쥐어질 리 없다. 어차피 정치란 남의 일이다. 현실은 그들을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아예 포기하다. 기대따위 가지지 않는다. 희망같은 건 몽상일 뿐이다. 그런데 누군가 나보다 더 나은 현실을 누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어찌해야겠는가.
그 사람이라도 잘되면 좋은 것이라고 납득하고 넘어갈 수 있으면 아주 좋은 사람일 것이다. 나도 그처럼 되고 싶다 목표를 가지는 것은 앞서의 전제에 어긋난다. 나 자신을 끌어올릴 수 없으면 상대를 끌어내리면 된다. 그러면 모두 같아진다. 굳이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할 이유 역시 사라진다.
취직이 안된다. 그러므로 오래 직장다닌 사람 월급을 깎도록 하자. 어떻게 해도 취직이 너무 어렵다. 그러므로 정규직도 해고가 쉽도록 법을 바꾸도록 한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당장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다. 더 오래 더 열악하고 불안한 환경에서 더 적은 임금만 받고 일하도록 새롭게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사실 여기에는 90년대부터 이어진 민주화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을 것이다. 기대가 컸었다. 달라질 것이다. 이전과는 분명 다른 현실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같았다. 전혀 다르지 않았다. 어째서 야당의 지지율이 저처럼 정체를 보이는가. 새누리당을 지지하지 않더라도 차마 새정연을 지지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예전에는 대안이라는 것이 있었다. 우리들이 이렇게 하면. 자신들이 저렇게 한다면. 그래서 누가 권력을 가지고, 어떤 정부가 들어서게 된다면. 하지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진보정당들은 너무 미미하다. 쉰냄새 진동하는 구태의 운동권의 행태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차피 같다는 것을 알았는데 야당을 지지하겠는가, 아니면 아예 대놓고 하겠다는 여당을 지지하겠는가.
일베의 이유이기도 하다. 차라리 이도저도 아무것도 아니라면 그냥 가장 현실에 가까운 쪽을 선택하겠다. 무엇이 현실인가. 부패하고 타락한 부조리한 모순들이 곧 현실인 것이다. 비슷하다. 어차피 현실이란 이런데 이상론을 이야기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이런 현실이 있는데 그저 듣기 좋은 소리 늘어놓는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차라리 수용해 버린다. 내면화를 시도한다. 그럼으로써 위화감을 없앤다.
남성이 여성을 증오하고, 여성이 남성을 혐오하고, 세대별로 서로를 경멸하며, 차라리 서로를 끌어내려 시궁창으로 쳐박고 싶어 한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는가. 어떻게 하면 더 좋아지고 나아지는가. 사실은 그 답을 바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라도 납득할 수 있는 답을 들려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과격한 물음이다. 그러므로 이제 자신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헬 조선이라는 말 자체가 그런 뜻일 것이다. 아무런 희망도 기대도 없다. 내일이 없다. 오늘만으로도 하루가 버겁다. 떠나거나, 아니면 아예 포기하거나. 아수라지옥이란 서로의 발목을 잡아당겨 끝내 아무도 지옥의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곳이다. 남은 것은 환멸과 증오 뿐. 위험하다. 나락에는 깊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