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자본주의와 전체주의...

까칠부 2015. 10. 12. 01:31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국부'라고 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 아니었다. '국부'라는 결과에 이르는 과정이었다. 개인이 욕망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경쟁하는 가운데 결국 개인의 집합인 국가의 부도 결과적으로 향상되고 증진된다.


개인이란 국부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단위가 아니다. 수단도 도구도 아닌 그 자체로 목적이어야 한다. 지극히 근대적인 사고의 결과다. 따라서 개인은 무한히 자유로워야 하고, 외부의 압력이나 강요에 행동이 강제되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자유주의인 것이다. 그래서 자유시장주의인 것이다. 


자유로운 시장이란 공정한 시장이다. 외부로부터의 부당한 강제나 개입 없이 오로지 모두에게 공평한 '경쟁'이라는 룰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 아무리 대단하고 가치있는 기업이라도 경쟁에서 도태된다면 그대로 사라질 뿐이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작고 힘없고 존재감도 없는 신생기업이라도 충분한 경쟁력만 갖구고 있다면 얼마든지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노동운동의 의미도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더 쉽고 빠를 것이다. 노동자 역시 시장의 한 구성원이다. 노동자가 소유한 노동력 역시 시장을 통해 거래되는 여러 재화 가운데 하나다. 그러므로 노동자 역시 동등한 주체로써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 노동자 스스로 조합을 만들고 보다 유리하게 사용자와 협상할 수 있는 수단을 갖춘다. 그리고 노동자의 요구가 받아들여져 더 높은 수입이 보장되었을 때 노동자의 수입은 곧 상품에 대한 구매력으로 이어지며 시장을 키우는 한 동력으로써 작용하게 된다.


노동자의 수입이 늘어나면 그에 비례해 상품의 양은 물론 질에 대한 요구 또한 높아지게 될 것이다. 상품의 질은 곧 상품의 부가가치와 이어진다. 부가가치란 곧 이윤이다. 노동자가 시장에 쓰는 돈에 비례해 생산자는 더 많은 이윤을 얻을 것이고 그 이윤을 바라고 새로운 생산자가 참여하며 시장은 더욱 커져갈 것이다. 결과적으로 전체의 부가 증가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국가경쟁력을 위해 노동자가 희생해야 한다. 개인이 양보해야 한다. 국가경제를 위해 대기업의 부정한 수단도 용납하지 않으면 안된다. 과연 자유시장경제일까. 자본이 권력이 되는 순간 공정한 경쟁은 불가능해진다. 독과점 아래 시장은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않게 된다. 룰마저 어긴다. 당연한 주체로서의 개인들을 시장에서 배제한다. 목표는 하나 '국부'. 나라의 부를 위해 모두가 수단이 되고 도구가 된다.


전체주의가 자본주의와 대척점에 있는 이유일 것이다. 자본주의란 자유다. 가장 보편적인 최대의 자유다. 자유의 주체야 말로 자본주의의 단위이며 목적일 것이다. 전체주의는 오로지 목적을 위한 수단과 도구로써만 모든 것이 존재한다. 개인의 희생은 그래서 너무나 당연하다.


너무 끔찍하게 싫어해서 차마 비판조차 하고 싶지 않은 경우일 터다. 다른 것이 아닌 '틀린'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그것이 현실이 되고 만다. 비겁해진다.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하는데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인간이란 존엄이며 개인이란 목적이다. 당연한 상식을. 우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