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룡이 나르샤 - 잔혹한 시대와 이방원의 결심
한결 정돈된 느낌이다. 무엇보다 일관된 주제가 있다.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인물과 사건들이 유기적으로 맞물린다. 주인공은 다름아닌 이방원(아역 남다름)이다. 아직 순진했던 소년이 잔혹한 시대만큼이나 냉혹한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불의에 짓밟히고 꺾이는 이들을 위한 분노와 나약한 자신에 대한 환멸이 악을 향한 단호한 증오로 바뀌어간다.
불의한 권력이 문제가 되는 이유다. 정의만 악을 포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불의 역시 선을 포용하지 못한다. 불의란 옳지 못한 정의다. 폭력이 옳지 못한 것을 옳은 것으로 만든다. 자신을 거부하는 것은 불손이며, 자신을 거부하는 것은 불경이다. 바르지 못한 것을 억지로라도 바로잡으려 한다. 반드시 자신을 거스르려는 선을 물들이거나 아예 꺾어 버리고 만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불의와 탈협하거나 스스로 악해져야 한다. 타락해야만 한다.
강직한 관리였다. 힘없는 농민을 위해서라도 길태미(박혁권 분)의 부정하고 부당한 요구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제아무리 권신 이인겸(최종원 분)의 최측근이라 할지라도 그 요구가 옳지 못한 이상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되었다. 그래서 그 아들을 인질로 삼는다. 무고하게 살인자로 만들어 아비를 협박한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을 따를 수밖에 없다. 강직한 선비 홍인방(전노민 분)도 육신에 가해지는 혹형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저들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어렵지 않다.
유학을 섬기는 선비가 자신의 손으로 경전인 맹자를 불태워야만 했다. 그러기까지 가해지는 고통과 수모를 견디지 못했다. 아니 설사 끝까지 버티더라도 남는 것은 이마에 시겨진 흉측한 '사문난적'이라는 문신 뿐이었다. 차마 남들 앞에서 자신의 손으로 맹자를 불태웠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수치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료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한 것을 알면서도 끝내 그 한 마디를 삼킨 채 내놓지 못한다. 평생을 굴욕속에 살거나, 아니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 그나마 명예를 지키거나. 침묵에 익숙해지고 거짓에 익숙해진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죽거나 도태되어 사라진다.
자신은 자신이 생각한 만큼 선비가 아니었다. 의롭지도 올곧지도 못하다. 너무나 쉽게 불의와 타협하고 악에 굴복한다. 인간은 누구나 욕망과 이기를 위해 살아간다. 생명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다. 그 본능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적다. 굳이 선택하지 않아도 당연하게 선을 말하고 정의를 말한다. 도덕을 말하고 윤리를 말한다. 옳고 바른 것만을 추구한다. 그러나 시험받는다. 위협과 고통으로써 일방적인 선택을 강요한다. 누구보다 높은 이상을 추구했기에 누구보다 실망과 절망도 클 수밖에 없다. 분노는 체념이 되고, 절망은 환멸로 바뀐다. 한 사람은 죽었고, 한 사람은 선비로서 자신을 죽였고, 한 사람은 자신의 삶을 통째로 부정했다. 옳고 바른 이들이 그렇게 하나씩 사람들의 앞에서 사라져간다.
그나마 분노를 증오로 바꾸었다. 자신을 향한 환멸을 상대를 위한 적의로 돌려세웠다. 차라리 죽이겠다. 차라리 그들을 세상에서 없애겠다. 기꺼이 이인겸 앞에 고개를 숙이던 아버지 이성계(천호진 분)를 떠올린다. 자신이라면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수모와 굴욕을 안고서도 아버지 이성계는 아무일없이 고향 동북면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살아있다면 언젠가 다시 기회는 돌아온다. 실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그 기회를 움켜쥘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짐만이 당장의 비참함을 이길 수 있는 동기가 되어 준다. 기약이라도 하듯 이방원은 그날 늦게 피를 묻히고서 집에 돌아왔었다. 홍인방이 보낸 자격이 손을 쓰기도 전에 목표였던 이씨 세 형제는 피를 흘리며 누워 있었다. 아직 한참 어린 나이임에도 그 순간 결심을 굳히는 이방원의 표정을 훌륭히 연기해 보이고 있었다.
땅개와 분이 남매의 어머니가 사실은 공민왕의 비 노국공주를 섬기던 궁녀였었다. 공민왕이 지었다는 노래 '무이이야'를 알고 있었다. 납치할 당시 남매의 어머니를 궁녀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가난한 백성의 어린 남매의 어머니 납치가 죽은 선왕의 이름까지 언급되는 국가적 서사로 이어진다. 비로소 어머니의 진실을 알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제까지 동생에게 끌려다니던 땅개가 비로소 오빠의, 남자의 모습을 보이게 된다. 당차지만 분이 역시 아직 어린 여자아이에 지나지 않았다. 성장의 계기를 만난다.
정의로운 이들이 죽어간다. 선량한 이들이 꺾여간다. 불의한 시대에 악만이 남아 세상을 물들여간다. 정의는 악을 포용하지 않는다. 자신은 결코 지금의 불의한 시대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또 한 사람 자신에 대한 실망을 포기와 타협으로 바꾸고 만다. 실제 역사에서 염흥방도 어쩌면 비슷한 과정을 거쳐 바뀌게 되었을 것이다. 어둡고 밤에 길들여진다.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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