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장사의 신 객주 - 칼과 권력, 불의한 시대에 장사꾼으로 사는 방법

까칠부 2015. 10. 16. 05:34

흔히 근대를 나누는 기준의 하나로 자본주의의 성립을 꼽는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엄격하게 보장되는 사유재산은 곧 배타적이고 독립적인 단위로서의 개인이었을 것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시장에 참여하여 경쟁하고 부를 축적할 수 있다. 그럴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으로 철저히 보호받고 보장받는다. 오로지 시장에서의 지위는 축적한 자본으로 계량되는 개인의 역량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보다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공정한 심판의 존재일 것이다. 사유화되지 않은 보다 고도화된 공적 체계와 구조다.


더 좋은 물건을 더 싼 값에 사서 더 필요한 곳에 더 비싼 값에 팔아 이문을 남긴다. 장사의 기본일 것이다. 어떻게든 경쟁자보다 더 좋은 물건을, 더 빨리, 더 싼 값에, 더 많이, 그리고 더 비싼 값에 사줄 손님을 찾아 다시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속이지 않는다. 훔치겨나 빼앗지 않는다. 강요하거나 강제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물건과 자신의 실력만으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거래를 이끌어낸다. 좋은 장사꾼은 누구도 손해보지 않으면서 거래할 수 있는 사람이다. 거래처와 손님 모두로부터 신용과 신뢰를 얻는다. 천봉삼(장혁 분)의 방식이 송파마방에서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도록 자신이 팔고자 하는 상품의 가치를 철저히 분류하고 관리하여 보여준다. 송파마방에 큰 일이 났다는 소식에 몰려든 거래처 사람들마저 천봉삼의 말 한 마디에 믿고 발길을 돌린다.


그러나 과연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천봉삼의 아버지 천오수 역시 마찬가지였었다.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발품을 팔고 뛰어다니며 보다 좋은 해삼을 확보하려 했고, 자신들만의 비법을 사용하여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의 상품으로 가공하고 있었다. 신용과 성실성을 인정받아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까지 받고 있었다. 그러나 김학준(김학철 분)에게 매수된 관리들 앞에서 그는 한낱 장사치에 불과했고, 결국 아편밀매의 오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이 되어 스러지고 말았다. 자신이 평생 일군 천가객주마저 김학준의 손을 거쳐 이제는 신석주(이덕화 분)의 소유가 되어 있었다. 30만냥의 가치가 있다던 천가객주를 고작 3만냥에 신석주의 손에 쥐어준 것은 다름아닌 김학준의 적형제인 김보현(김규철 분)이었다. 서출인 김학준은 결코 김보현을 거스를 수 없었다. 환전객주 김학준도 육의전 대행수 신석주를 넘어설 수 없었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객주들이 모여서 계추리의 독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시장을 교란하는 독점과 사재기를 막자는 자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조정과 권력에 의해 신석주의 육의전에서 계추리를 독점할 수 있도록 명령이 내려지는 자리였었다. 육의전을 제외한 모든 객주에서 계추리 거래를 중단한다. 그동안 조정과 권력을 위해 성의를 아끼지 않은 대가였다. 권력을 등에 업고, 그 권력을 앞세운 순간 더 이상 경쟁이란 의미없어진다. 아무리 빼어난 실력과 수완을 가지고 있어도 원칙없이 자의적으로 휘둘러지는 권력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도움이 될 더 큰 힘을 알아보는 것이 실력이고, 그 실력을 배경으로 가지는 것이 수완이다. 길소개가 천가객주의 몰락과 신석주로부터 보고 듣고 배운 현실이며 정의다.  


차라리 송만치(박상면 분)가 송파마방의 문서를 팔고 받은 2만냥의 어음을 훔치려 한다. 정당하게 정직하게 젓갈이나 떼어 파는 것으로는 몇 년이 가도 이 모양 이 신세를 면할 수 없다. 육의전 대행수가 되어야 한다. 누구보다 크게 높이 되어 자신을 내쫓은 신석주와 맹구범(김일우 분)을 발아래 둘 수 있어야 한다. 아버지의 한을 풀고, 자신의 잘못을 변명할 수 있어야 한다. 어차피 세상천지가 도적놈들 뿐이다. 그깟 2만냥따위. 아직 자신의 신분을 감춘 개똥이(김민정 분)의 설득은 그들이 놓인 현실이기도 했을 것이다. 속이거나, 훔치거나, 아니면 빼앗거나. 2만냥짜리 어음을 두고 벌이는 송만치와 길소개(유오성 분)의 일대활극이 차라리 우스꽝스럽다. 돈에 자신을 잃어버린 군상들과 현실에 대한 조롱이었을 것이다.


직접 칼을 갈아 손에 쥔다. 십수년을 함께 살을 맞대고 살아온 아내의 발꿈치를 자르고, 이제는 의형제의 목숨마저 거두려 하고 있다. 법에 호소하지 않는다. 공권력에 기대지 않는다. 오히려 법을 어기는 것이다. 아무 자격도 권한도 없는 개인이 자의로 사람을 해치고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는다. 어차피 법과 상관없이 지켜왔다. 오히려 불의하고 부패한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했었다. 쇠살쭈만이 아니다. 전근대의 조합이란 그같은 사적 제재를 매개로 엮인 자치조직이었다. 천봉삼이 지키고자 하는 보편적인 가치와 쇠살쭈로서 지키고자 하는 조성준(김명수 분)의 조직의 논리가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래도 아내이고 형제인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지 않은가. 그러나 송파마방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만 했다.


제목과 달리 장사하는 모습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장사꾼의 뒤에 버티고 선 권력이 보이고, 장사꾼의 손에 들린 날카로운 칼만이 보인다. 전근대다. 권력자의 말 한 마디면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자신은 죄인이 되고 만다. 신분의 벽은 신분이 낮은 장사꾼들을 조이는 현실의 족쇄가 된다. 협잡과 야합이 일상화된다. 비정상적인 수단이 정상을 대신한다. 그래서 더 천봉삼에게 기대하게 된다. 천오수가 추구한 상인의 길은 그런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저 정직하게 장사헤서 오로지 자신의 실력만으로 부를 쌓고 성공을 거머쥔다. 그저 실력이 있고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고 부자가 될 수 있다.


유독 조소사(한채아 분)에 대한 낯선 감정을 표현할 때만 천봉삼의 표정이나 말투가 어울리게 자연스러워진다. 불필요한 힘들이 빠져나간다. 어리숙하고 엉뚱하다. 힘은 들어갔는데 무게는 없다. 가벼운데 편하지 않다. 선돌(정태우 분)이 야무진 가벼움이 유연하게 그것을 받쳐준다. 인연이 한 번 멀어진다. 자신이 놓았고, 상황이 등떠밀었다. 아직은 일렀을까. 정이 너무 깊어 원망이 되고 미움이 되는 복잡한 감정을 김명수, 박상면, 양정아(박금이 역) 세 배우가 전혀 특별하지 않게 연기해 보여준다. 그저 흔한 드라마같다. 넘치지도 튀지도 모자르지도 않다.


그냥 그런 시대였다. 정직한 것만으로는 부족했던.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턱없이 미치지 못했던. 힘을 가져야 하고, 배경을 등에 업어야 한다. 자신이 아니다. 자신의 힘이고, 자신이 가진 배경이다. 자신을 대신하는 것들 가운데 오롯이 자신을 찾으며 살아간다. 때로 야망이고, 때로 복수이며, 때로 반드시 찾고 싶고 지키고픈 누군가 혹은 무엇일 것이다. 슬프고 아프다. 추하고 더럽다. 잔인하고 비열하다. 그런 한 가운데 천봉삼은 주인공으로서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아직 그는 누구와도 무엇과도 싸우지 않고 있다. 그래야만 하는 때가 온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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