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송곳 - 드라마이기에 불편하고, 드라마만이 아니기에 더 불편한

까칠부 2015. 10. 26. 05:50

드라마임을 알기에 불편하다. 드라마이기만 한 것이 아님을 알기에 더 불편하다. 어째서 즐겁자고 보는 드라마가 이토록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가. 재미있으라고 보는 드라마가 사람을 아프게 하고 괴롭게 만든다. 그래서 보기 싫다. 나는 이수인(지현우 분)이 아니다.


어른들은 항상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친다.


"조용히 하라!"

"가만히 있으라!"

"시키는대로 하라!"


어른의 말을 잘 들어야 착하고 좋은 아이다. 어른이 하라는대로 잘 따르는 것이야 말로 훌륭하고 바른 어른이 되는 길이다. 아무리 틀린 말이고 잘못된 지시라도 감히 거스르려 해서는 안된다. 어른을 똑바로 마주보는 것조차 불경이다. 어른의 말에 토를 다는 것도, 어른이 시키는데 일일이 따지고 묻는 것 역시 있어서는 안되는 패륜이고 악이다. 세상의 어떤 악이나 죄보다도 우선하는 악이고 죄다. 그렇게 어른들의 삶은 아이들에게 그대로 물려진다.


선생님이 때리면 때리는대로 맞아야 한다. 선생님이 눈치를 주면 알아서 부모님이 찾아가 봉투라도 쥐어주어야 한다. 그나마 교권의 추락을 걱정해야 하는 요즘은 많이 나아졌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가장 중요한 대학입시가 걸려있기에 다른 학생이나 학부모와의 관계를 생각해서라도 학교나 선생님의 잘못을 있는 그대로 세상에 드러내기란 상당한 부담이 따른다. 하물며 상하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한 군대에서 하급자가 상급자를 고발하여 심지어 처벌받게 만들었다면 보는 눈들이 어떠할까? 잘못된 관행에 반발해서 규정과 원칙을 지키려 했다는 이유만으로 이수인은 하마트면 사관학교에서 퇴교당할 뻔했었다. 상급자를 거스르는 정의야 말로 악이다. 상급자를 거스르는 원칙이야 말로 죄가 되고 마는 것이다.


불법인 것을 안다. 잘못된 일인 것을 안다. 그러나 명령이다. 계통에 따라 내려온 지시사항이다. 물론 당장 자신의 밥줄을 쥐고 있을 것이다. 인사에도 상당한 불이익이 따를 것이다. 그렇더라도 법이 자신의 편에 서 준다면. 법이 법을 지키려는 자신의 편을 들어준다면. 학교에서 선생님과 학생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군대에서도 규정과 원칙이 상급자의 권위나 명령을 넘어서지는 못했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법은 멀지만 권력은 가깝다. 권력 앞에 권력을 가지지 못한 개인은 약자일 수밖에 없다. 부장의 말 몇 마디에 의기투합했던 과장들은 그대로 뿔뿔이 흩어져 버리고 만다. 그렇게 길들여진다. 누구도 자신들을 돕지 못한다. 지켜주지 못한다. 무엇도 어떻게도 할 수 없다. 자신들은 무력하다. 그나마 조금만 자신을 낮추고 세상에 맞춰간다면 자기 하나는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구고신(안내상 분)과 같은 이가 필요한 것이다. 아무도 자기의 편이라고는 없을 때 다만 한 사람 자신의 편에서 사용자와의 불가능할 것만 같은 싸움에 나서주는 이가 있었다. 외롭지 않다. 기댈 수 있다. 그래서 구고신의 사무실에는 괜히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 터였다. 구고신의 한 마디에 중국집 단골까지 바꾼다. 뻔히 돈도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일하겠다 찾아오는 여직원도 있다. 이수인도 처음 기대했었다. 자기와 뜻을 같이 하는 듯한 과장들에게서, 그리고 회사와 맞서싸우고 있는 노조의 존재에 대해. 그러나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는 다시 절망하고 있었다. 이미 고집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희망도 목적도 방향도 없이 그저 버티는 것이 고작일 뿐이었다. 차라리 자신을 위해 현실과 타협한 이들이 더 강하고 더 용기있어 보일 정도였다.


그런 이야기일 것이다. 무력한 정의가 힘을 갖는다. 나약하기만 한 개인들이 서로에게 의지가 되며 하나가 된다. 정의를 정의롭게 만드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정의를 정의롭게 만들고자 일어서는 다수의 힘이다. 그토록 합리적이고 개방적으로 보이던 외국인 점장이 이수인의 정당한 반론에 경멸과 적개심을 드러낸다. 프랑스에서는 너무나 당연했을 노조마저 노골적으로 혐오하며 부정한다. 어차피 아무것도 못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지시해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쉽지만은 않다. 모두는 뿔뿔이 흩어져 있고, 그나마 이수인은 철저히 고립된 상태다. 무언가 그들이 서로 손을 마주잡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무력하던 개인들이 비교도 안되는 강대한 적과 싸울 힘을 손에 넣게 된다.


너무 착하다.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자기가 먹고 살 걱정보다 일을 할 수 없게 된 자신을 계속 고용해야 하는 사용자의 처지를 걱정한다. 노동자를 위해 일하는 것을 빨갱이라 욕한다. 다름아닌 자신의 동료를 위해 나서는 사람에 대해서다. 그만큼 나라를 걱정하고, 이 사회를 걱정하고, 자신이 몸담은 회사를 걱정한다. 동료를 걱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 편으로 동료도 버릴 수 있다. 동료가 당한 산재에 대해 증언을 거부한다. 바로 아침까지 화이팅을 외치던 직원들을 내쫓으려 의도적으로 괴롭힌다. 역시 말한다. 어쩔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현실에 순응하는 착하고 성실한 인간들일 것이다.


그래서 송곳일 것이다.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 당연하게 일하다 다치고, 당연하게 일하면서 온갖 모욕과 부당한 대우를 견뎌낸다. 단단하게 굳어진 일상의 껍질을 비집고 뚫고 나오는 이가 생겨난다. 그 계기가 되어준다. 이수인은 이미 튀어나온 혹이다. 기대한다. 전혀 새롭다. 이제까지 어떤 드라마에서도 없었다. 생생한 현실이 아프도록 적나라하게 보여진다.


주인공 지현우의 존재감이 과연 대단하다. 군인출신에 올곧은 정의감의 날선 단정함이 현실과의 괴리에 고민하는 혼란스런 내면과 함께 지현우라는 배우를 통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보여진다. 선이 선이 아니다. 정의가 정의가 아니다. 배우 자신이 곧 주제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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