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장사의 신 객주 - 장사하지 않는 객주, 먼 길을 돌아오다

까칠부 2015. 11. 6. 04:18

새삼 이병훈PD가 어째서 거장인가 깨닫는다. 최소한 요리의 맛은 보았다. 다만 한 사람이라도 치료하고 살리려는 모습을 보였다. 수랏간 궁녀였으니까. 의원이었으니까. 장사꾼이다. 무려 마방의 쇠살쭈다. 그런데 지금 천봉삼(장혁 분)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선돌(정태우 분)도 그리 말한다.


"물건 사고 파고 그건 점방 차인들도 다 하는 거야! 추천서같은 것 써주는 건 차인행수만 돼도 다 하는 거야! 객주인이 하는 일이 뭔 줄 알아? 돈 끌어오는 일이야! 돈 끌어오는 일!"


아무 중간과정 없이 어느새 쇠살쭈까지 되었다. 송파마방에 들어가고 바로 8년이 훌쩍 지나더니 이제는 쇠살쭈까지 되어 마방을 책임지는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래서다. 정작 행방을 알 수 없는 조성준(김명수 분)의 뒤를 이어 쇠살쭈가 되고서도 전혀 자각을 하지 못하는 것은.


길소개(유오성 분)조차 어려서는 육의전 대행수 신석주(이덕화 분)의 신가객주에서 온갖 궂은 일을 하며 잔뼈가 굵었고, 신가객주에서 내쫓기고서는 개똥이(김민정 분)와 함께 전국을 누비며 젓갈을 팔았었다. 선돌 역시 등짐 하나 짊어지고 전국을 누비며 물건을 떼어 팔아 돈을 버는 전형적인 보부상이었다. 그런데 천봉삼은 장사를 시작하자마자 쇠살쭈다.


하는 게 없다. 한 게 없다. 물론 송파마방을 지금의 규모로 키워낸 것은 전적으로 천봉삼의 공이다. 천봉삼이 고안한 새로운 운영방식이 성과를 가져왔기에 어느새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마방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과연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그같은 일들을 이루어냈는지 전혀 보여진 바가 없다. 천봉삼에게 어떤 재능과 실력이 있고, 그것이 어떻게 실적으로 이어졌는지 그 과정을 시청자는 전혀 알지 못한다. 하기는 아직 보여준 것이 없는데 느닷없이 쇠살쭈라며 능력을 보이기 시작해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8년 넘게 몸담은 마방인데 쇠살쭈가 되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전혀 감조차 잡지 못한다.


장사를 해야 했다. 거래를 성공시켰어야 했다. 크지 않더라도 하나씩 거래를 성공시키며 실력과 실적을 쌓아가야 했다. 천가객주의 객주인 천오수(김승수 분)의 아들이 아닌, 송파마방의 전쇠살쭈 조성준과 어릴적 인연이 있었던 사이가 아닌, 단지 상인으로서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증명해 보였어야 했다. 이제서야 시작한다. 선돌의 꾸짖음에 깨닫고, 신석주에게 수모를 겪으며 배운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벌써 13회다. 천봉삼과 천소례(박은혜 분) 남매를 버리고 떠났던 길소개마저 이제서야 겨우 두 사람을 위협할 수 있는 위치에 이를 출발선에 섰다. 지금까지 기다린 결과다.


사랑을 한다. 원한을 맺고 푼다. 은혜를 입고 갚는다. 그런 건 굳이 쇠살쭈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아니 아예 장사도 할 필요 없이 길가는 행인 1만 되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아무것도 없이 그저 길가던 나그네가 우연히 인연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또 얼마나 많던가. 단지 배경이 객주고 마방이다. 인물들의 직업이 장사꾼이다. 그러다가 이제서야 쇠살쭈가 되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 한다. 무려 20만냥이라는 돈을 빌리러 가면서도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저 입만으로 그 큰 돈을 받아내려 한다. 지금까지 보았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것저것 빼고 지우고 나니 남는 건 한 줌도 안되는 이야기 뿐이다.


장사를 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었다. 신석주의 밑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실력 또한 인정받았기에 남들보다 높은 위치에 이를 수 있었다. 하다못해 맹구범(김일우 분) 등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치기 위해 비열하고 야비한 수단들을 사용했어도 그 또한 노력이고 능력이라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김보현(김규철 분)을 찾아간다. 한 쪽에서는 천봉삼이 신석주를 찾아가고 있었다. 장사의 신이 되고, 그에 어울리는 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마치 그 글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현실에서도 금수저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신석주를 만나기까지 천봉삼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다. 김보현을 찾아가기까지 길소개 역시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었다. 개인의 실력과 노력이 아닌 인연과 인맥이 성공을 결정짓는다.


재미가 없다. 그나마 남은 흥미마저 사라졌다. 천봉삼은 물론 다른 주요인물들도 언제쯤에나 장사라는 것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될까. 거래에 성공하고 그 잘났다는 상재라는 걸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차근차근 실력과 경험을 쌓고 성장하며 마침내 성공하기까지의 과정들을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장사꾼이 장사를 하지 않는다. 정치와 연애만 한다. 단조로운 구성과 연출에 최돌이(이달형 분)의 감초연기마저 지루해지고 지겨워진다. 이제는 아예 개똥이마저 천봉삼에게 원한을 품고 무당이 되어 그 앞을 막아서려 하고 있었다. 장사는 시작도 하기 전에 먼저 장사의 신부터 되어 버릴 모양새다.


신의를 저버린다. 약속했다. 목숨을 구해준 대가로 어떤 요구든 다 들어주겠노라고. 그런데 혼인해달라는 개똥이의 요구에 천봉삼은 자신의 사정부터 앞세운다. 자기에게는 이미 마음에 품은 여인이 있었다. 돈을 달라 요구하는데 지금 자기에게 있는 돈은 다른데 써야 할 돈이다. 결혼을 약속한 것도 아니고, 더구나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여인이었다.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 할지라도 한 번 쯤은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목숨을 살려준 사람에게 다시 자신의 목숨을 가져가라 말한다. 이기도 이쯤 되면 악이다. 자기 사정만 중요하고, 자기 입장만 중요하다. 자기 감정을 위해 자신을 구해준 사람마저 징치라는 이름으로 납치해서 물에 빠뜨려 죽이고 말았다. 술에 취해 아버지의 환영을 보고서야 그는 비로소 송파마방을 위해 신석주를 찾아갈 결심을 한다. 장사의 신이다. 이런 인물이 장차 장사의 신까지 된다.


주제를 모르겠다. 목적을 모르겠다. 그냥 따라간다. 이유도 의미도 없이 지켜본다. 생명없이 흐느적거린다. 이야기를 꼬아놓기만 한다고 좋은 드라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눈에 힘주고 목소리를 키운다고 좋은 연기가 아는 것과 같다. 장사하는 이야기다. 장사꾼이 주인공인 드라마다. 무엇으로 어떻게 승리도 하고 성공도 이루게 될 것인가. 시청자는 그를 통해 무엇을 얻고 무엇을 느낄 것인가. 과정이 있고 단계가 있다. 내용이 있다. 장면들이 따로 놀기 시작한다. 아마 방향을 잃고 있을 것이다. 무엇을 보고 있는가도 잊는다.


민겸호(임호 분)의 개입으로 김보현과 신석주의 사이에 틈이 생기고, 그 틈으로 길소개가 비집고 들어간다. 신석주의 신가객주에서 그의 아내가 된 조서린(한채아 분)과 천봉삼이 만난다. 매월이 된 개똥이는 자신의 운명으로 돌아간다. 얽혀간다.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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