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나쁜 대통령 노무현, 그가 남긴 부정의 유산들...

까칠부 2015. 11. 9. 01:00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바람이 불었던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2012년 안철수 바람이 불었던 것도 결국 같은 이유에서였다. 정치가 바뀌면 자신의 고단하고 불편한 현실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보다 나은 삶과 보다 나아진 현실을 바라고 간절히 기대했었다. 그러나 어떠했는가?


물론 인정한다. 노무현은 보수주의자였다. 경제와 노동문제에 있어서는 사실상 당시 한나라당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이다. 어차피 기존에 해오던 것들이었다. 김대중 정부 이전까지 민자당과 신한국당까지 당시의 여당이 해오던 정책들의 연장이었다. 보다 더 노골적으로 성장을 말한다. 보다 더 강력하게 성장지상의 경제를 주장한다. 그렇다면 과연 유권자의 입장에서 누구에게 더 표를 주어야 하겠는가.


복지도 하기는 했다. 많은 복지정책들이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구체화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실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갈수록 고용환경은 나빠지고 있었다. IMF극복을 명분으로 족쇄가 풀린 대기업들은 서민경제의 영역까지 침투하려 하고 있었다. 부동산 광풍은 주거환경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정작 당시 야당과 차별화되던 여당의 복지는 그저 시늉에만 그치고 있었다. 삶은 갈수록 더 어려워져만 가는데, 정작 기대할 수 있는 도움의 손길이란 영 현실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이럴 것이면 더 성장에 집중해서 떨어지는 콩고물이라도 늘려야겠다.


이명박 바람의 이유였다. 바로 참여정부에 대한 반동이었다. 성장이야 어차피 한나라당이 더 잘할 것이다. 굴지의 대기업에서 전문경영인으로 회장까지 지냈었던 이명박이라면 성장만큼은 참여정부보다 더 나을 것이다. 복지에 대한 기대를 접는다. 어차피 복지라고 해봐야 참여정부에서도 고만한 수준이었다. 그나마 지금까지 가장 진보적이고 가장 친서민적이던 참여정부에서도 복지가 이런 수준이라면 복지라는 것은 더 이상 기대할만한 것이 못되었다. 심지어 야당의 공약에서까지 복지담론은 갈수록 후퇴하게 된다. 더 이상 한국사회에서 복지공약은 유효한 수단이 되지 못한다.


보다 왼쪽에 있던 진보성향의 잠재적 야권지지자들은 아예 투표를 포기한다. 진보정당은 아직 그 세력이 미미하다. 유의미한 수준에 이르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그나마 힘이 있는 제 1야당에 기대하기에는 참여정부에서 겪은 일들이 있다. 참여정부는 노동자를 버렸다. 서민을 버렸다. 농민을 버렸다. 최악과 차악의 싸움이라지만 청산가리를 먹든 농약을 먹든 죽는 건 매한가지다. 독성이 약하기에 오히려 더 고통스럽기만 하다. 2012년 당시에도 많은 진보성향의 유권자들이 문재인에게 투표하기를 거부했다. 그보다 더 오른쪽에 있는 안철수는 말할 것도 없다. 나아지는 것이 없다. 희망이 없다.


지금 야당이 지리멸렬한 많은 이유를 바로 참여정부 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당장 민주당을 둘로 쪼갰다. 당시 당이 쪼개지며 생긴 감정의 앙금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내분의 원인이 되고 있다. 정부여당과 차별화를 시도하려 해도 더 이상 유권자들이 야당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왼쪽의 정책은 어차피 실현되지 않을 것을 안다. 오른쪽의 정책들은 원래 정부여당의 것이었다. 정부여당과 보수적인 유권자만을 가지고 경쟁한다. 더욱 버려지고 만 노동자와 서민들은 어차피 그놈이나 그놈이나 더 나은 놈을 지지한다고 야당을 외면하기 시작한다. 못배우고 가난한 사람들이 정부여당의 편에 선 것을 단지 그들의 무지와 어리석음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얼마나 무모한 오만인가.


누가 되든 상관없다. 누가 되든 달라지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성장이라도 하자. 그렇다면 파이라도 더 키우자. 참여정부에서도 하던 말이다. 복지를 하기 전에 파이부터 키우자. 그렇다면 누가 더 파이를 잘 키울까? 원래 야당의 포지션은 그게 아니었다. 다 빼앗겼다. 심지어 성장을 외치던 여당에서 아예 경제민주화와 복지까지 다 가져가 버린다. 그런데도 더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더 다수다.


드라마 '송곳'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저때가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있던 참여정부때다. 뭐가 더 달라졌는가. 더 지독해지기는 했지만 말했듯 청산가리나 농약이나 먹고 죽는 건 매한가지다. 주제를 모른다. 노동자들이 너무 설쳤다. 지지자들이 하는 말이다. 그래서 참여정부는 실패했고 야당은 아직도 여당에게 주도권을 내어준 채 그 뒤만 졸졸 따라가는 모양새다. 야당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으로 여당과 차별화할 것인가. 무엇으로 정부를 비판하고 대안을 내놓을 것인가. 그나마 안철수는 그보다 더 오른쪽이다. 그나마 비주류는 그보다 더 오른쪽이다.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가. 문재인을 기대해야 할까. 사실 별로 그런 것은 없다. 단지 지쳤을 뿐.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에 대해서. 아직도 야당이 여당의 대안이 되기에는 아무것도 보여준 것이 없다. 무엇을 위해, 어떤 비전과 희망을 가지고 야당에 자신의 한 표를 주어야 하는가. 값싸게 거저 얻으려 해서는 안된다.


희망을 주어야 한다. 현실로써 와닿을 수 있게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런 정책들을 보여주어야 한다. 정치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마저 돌려세울 수 있는. 야당을 지지해야만 하는 이유를 들려준다. 당장은 선거에서 패하더라도 전선을 넓힌다. 신뢰와 희망을 얻는다. 하지만 그럴 수 있을까? 나는 그들을 믿지 않는다.


중도라고 이념이나 정책에서 한가운데를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야당도 여당도 아니니 중도다. 그러면 야당의 왼쪽은 모두 야당을 지지하는가. 착각도 심하다. 중도를 이해해야 한다. 새누리당은 그것을 할 줄 안다. 아직도 내가 전적으로 야당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답하다. 답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