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와 노무현, 그 불편한 닮은 꼴에 대해...
사실 흑역사다. 아니 흑역사랄 것도 없다. 어차피 정치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지 얼마 안되었을 때였으니까. 몰랐다. 무지했다. 그래서 판단할 수 없었다. 과연 당시 민주당을 깬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는가.
안철수를 보면 불편한 이유일 것이다. 당장 지난 대선 당시 안철수를 중심으로 불었던 바람의 정체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에도 그랬었다. 막연한 기대와 희망이 새로운 인물을 향해 무작정 밀려들고 있었다. 과연 그가 어떤 인물이고, 장차 정치인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 전혀 알지도 못한 채.
원래 노무현은 당시 새천년민주당에 대해 전혀 아무런 부채도 책임도 없는 위치였다. 오히려 1995년 한때 당시 민주당의 대선후보였다가 정계은퇴를 선언했던 김대중이 돌아오면서 다수의 의원이 빠져나가며 당이 와해되었던 아픈 기억마저 가지고 있었다. 더 이상 특정 거물정치인을 중심으로 이합집산하는 낡은 3김식 정치로는 안된다. 끝끝내 김대중의 방식에 동의하지 못하던 이들 가운데 일부는 심지어 1997년 당시 조순 총재에 의해 신한국당과의 합당이 결정되었을 때도 새정치국민회의가 아닌 한나라당을 선택하고 있었다.
노무현이 경선을 통해 대통령후보로 선출되었을 당시 새천년민주당 내에서 상당한 반발과 비토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배경이었다. 말하자면 노무현은 새천년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에 반대했던 정적이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사정에 떠밀려 새정치국민회의에 몸담기는 했지만 그가 자신들을 거부한 적 있었다는 사실까지 완전히 잊혀지기는 무리였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신한국당과 합당할 수 없기에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오기는 했지만 노무현에게도 새정치국민회의를 반대했던 이유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 충돌이었다. 기존의 새천년민주당의 주류가 노무현을 부정하고 비토했던 이유 그대로 노무현 역시 기존의 새천년민주당에 대한 불만과 반감을 드러냈다. 하필 대통령이었다. 권력의 정점이었다. 노무현을 중심으로 기존의 새천년민주당에 불만과 반감을 가지고 있던 정치인들이 모여 새로운 주류가 되었다. 점령군이었다. 새천년민주당 안에서 동질성을 확인하며 단계를 거쳐 성장한 경우가 아니었기에, 서로의 다른 입장차이는 결국 원초적인 힘겨루기로 이어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김근태의 결단이 있고 나서야 열린우리당이 창당될 수 있었다는 것은 그 전통의 뿌리와 힘이 얼마나 강했는가를 말해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도 지금의 제 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자들이 하나로 합치지 못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인 것이다. 노무현을 따라 새천년민주당으로 향했던 일단의 지지자들은 김대중이나 그의 정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 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더라도 일단 함께 하기로 한 이상 새천년민주당이라고 하는 둥지 안에서 공동의 목표를 추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굴러온 돌 노무현은 새천년민주당을 분열시켰고, 거의 와해시키다시피 하고 있었다. 친노로 분류되는 지지자들이 가지는 감정에 비해 구민주당의 전통지지자들이 보다 강한 적개감을 드러내는 것은 바로 여기에 이유가 있다. 때린 놈은 잊어도 맞은 놈은 결코 잊지 못한다. 호남에서 문재인을 불신하고 비토하려는 여론이 적지 않은 것도 바로 그 부정의 유산인 것이다. 문재인은 어떻게 해도 노무현의 이름을 등에 업고 정치에 데뷔한 경우였다.
아마 이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어째서 내가 안철수와 그의 최근 행보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가. 단지 대통령과 일개 초선국회의원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야당의 유력한 차기대선후보이면서, 국민적인 인지도가 높아 여론의 주목을 받는 거물정치인이며, 무엇보다 새정치민주연합을 공동창당한 창업자이며 한때 공동대표였다. 같은 초선의원이라도, 아니 어지간한 다선의원들조차 말 한 마디가 가지는 무게의 단위가 다르다. 그것을 적극 이용한다. 언론의 주목을 받는 만큼 언론을 이용해 자신의 의도를 국민들에 알리기도 유리하다. 언론에 보도되고 유권자 사이에 회자되기 시작하면 그 자체로 정당은 무시할 수 없는 압력에 노출되고 만다. 그러므로 당대표인 문재인이 아닌 내가 당을 혁신하고 개혁하겠다.
하지만 역시 더 중요한 차이라면 새천년민주당에서 철저히 비주류였던 노무현에 비해 안철수는 불과 얼마전까지 새정치민주연합의 공동대표였다는 사실이다. 당으로부터 특별히 받거나 누린 것이 없는 만큼 빚도 없었던 노무현에 비해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상당부분 책임이 당시 공동대표였던 안철수 자신에게 돌아가고 만다. 안철수가 더욱 문재인과 자신을 구분하고 분리하려 시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같은 당에서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동지가 아닌, 단지 서로 경쟁하는 적에 불과하다. 문재인은 점령군이고, 자신은 그런 점령군에 맞서싸우는 저항군이다. 마치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과 자신은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만나는 사람에서도 차이는 더욱 벌어진다. 노무현을 중심으로 뭉쳤던 새천년민주당의 점령군은 다름아닌 보다 젊고 참신했던 소장파들이었다. 아직 재야나 운동권에 대한 인식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지금이야 기득권의 또다른 이름이지만 그때는 막 정치에 진출하여 정치를 바꾸려 했던 개혁세력으로 여겨졌다. 말 그대로 점령군이기 때문이다. 점령군이란 새로운 세력이다. 그에 비해 저항군은 보다 오래 그곳에 뿌리내리고 있던 토착세력이기 쉽다. 김한길과 박지원, 주승용, 심지어 박주선과 같은 낡은 이름들이 주로 눈에 띈다.
물론 가장 큰 것은 안철수 자신이 대통령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명성에 비해 손에 쥔 힘은 그렇게 크지 않다. 이름값이 거의 전부다. 그래서 더욱 당내에서 상당한 인지도와 영향력을 가진 중진들과 손을 잡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대표는 어디까지나 문재인이고, 그를 중심으로 당을 장악하고 있는 주류가 더 다수이며, 정치인으로서 지지율도 문재인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 그런데 굳이 문재인과 적대하며 그를 분리하고 축출하려 시도한다. 문재인은 그저 버티기만 해도 된다. 최소한 총선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당대표인 그를 강제로 끌어내릴 수 있는 방법이란 어디에도 없다.
아무튼 그래서 문제인 것이다. 과거 노무현과 천신정으로 대표되는 신주류가 새천년민주당에서 점령군으로 행세하면서 야당의 두 중요한 핵심지지자들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감정의 골이 패이고 말았다. 새천년민주당의 구주류는 낡았다. 도태되어야 할 시대의 유물에 불과하다. 기존의 새천년민주당 자체에 대해서도 부정하는 듯한 말과 행동을 보인다. 어렵게 정권을 재창출한 만큼 그 상처는 깊다. 그런데 이제 다시 친노를 모든 악의 원흉인 양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비난하는 정치인이 있다. 그래도 노무현은 자신의 입으로 직접 새천년민주당의 구주류나 새천년민주당 자체를 공격한 적이 없었다. 벌써부터 야당의 지지자들 사이에 차라리 다른 당의 후보를 찍겠다는 날선 비방과 증오가 오가고 있다.
절대 안철수의 의도대로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인 것이다. 안철수의 의도대로 문재인이 당대표에서 물러나거나 혹은 무력화되는 순간 새정치민주연합은 그대로 와해되고 만다. 최소한 열린우리당 꼴이 나고 만다. 다름아닌 민주당소속 국회의원들에 의해 노무현에 대한 탄핵안이 발의되었고 당시 한나라당의 도움까지 얻어 실제 통과되고 있었다. 어떤 특별한 대안이 있어도 분열된 상태로는 선거에서 이기지 못한다. 승리를 위해 필요한 것은 혁신이 아닌 통합이다. 명분은 문재인에게 있다. 단 한 번도 안철수는 물론 자신에 적대적인 비주류에 대해서조차 분리하려는 시도를 보이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자신은 온전히 통합된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대표다. 약하면서 강한 이유다. 문재인이어야 하는 이유다.
2003년 이후 전통 구민주당의 지지자들과 열린우리당 지지자들 사이에 오가던 첨예한 신경전을 기억한다. 딱 그때의 재현이다. 호남민심을 언급한다. 어째서 민주당의 구정치인과 지지자들을 '난닝구'라 비하해 부르게 되었는가. 그 시절의 재현이다. 결말을 예상하는 이유다. 만일 내가 조금만 더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현실을 알았다면 그때 열린우리당의 창당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에 대해 조금만 더 알았더라면 민주당의 구주류를 적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후회만 남는다. 그랬다면 어쩌면 2007년의 참패와 실패는 겪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후회다. 반성이다. 그러므로 다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 노무현에 대한 실망이고 분노였을 것이다. 이후 결국 눈으로 보았고 확인했던 현실에 대한 환멸이고 자각이었다. 노선투쟁도 결국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동질성과 공동의 정치적 목표를 전제한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정당과 지지자가 없다면 자신들에게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지지자 역시 마찬가지다.
분열의 정치는 그만이다. 명분마저 약하다. 차라리 기회를 기다린다. 순리를 기다린다. 보다 젊고 새로운 정치를 꿈꾸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자기 편으로 삼는다. 멀리 보아야 한다. 너무 빨리 억으려 하다가는 결국 탈이 나고 만다. 노무현은 탄핵까지 당했다. 결국 모두로부터 버림받고 말았다. 죽고 나서 노무현이다. 김대중은 70이 넘어서야 겨우 대통령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안철수라는 개인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좋아한다. 내 또래에서 인간 안철수를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다만 정치인으로서는 별개라는 것이다. 영리하지 못하다. 너무 눈앞에 보이는 것이 급급해서 더 큰 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 비주류는 원래부터 그런 것이 목표였다. 비판하는 이유다.
이기기 위해서다. 앞으로도 계속 이기기 위해서다. 그래서 조금의 허점도 약점도 용납해서는 안된다. 불안요인을 남겨서는 안된다. 무엇이 필요한가. 무엇을 가장 우선해야 하는가. 답은 분명하다.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