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유시민이 실패한 이유...
차라리 아예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라면 인간적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화낼 때 화내고 웃을 때 웃고 울 때 되어 운다. 공감하게 된다. 머리로는 영 아니지만 가슴이 따라가게 된다. 대단한 자산이다.
아예 이성에 충실하다면 실리는 챙긴다. 바로 어제까지 한나라당의 대선후보였다가 오늘은 민주통합당의 대선경쟁에 뛰어든다. 자신을 위해 무엇이 유리하고 무엇이 이익이 되는가를 냉정하게 판단한다. 아무리 야당의 고정지지층으로부터 비난을 들어도 문재인과 대립함으로써 안철수 역시 비주류라는 지지세력을 얻게 되었다. 과연 그들이 끝까지 안철수의 편에 설 것인가는 차치하더라도 대표에서 물러난 지금도 문재인과 대등한 존재감으로 당에 대한 주도권을 놓치 않고 있다.
오로지 정의롭기만 하더라도 명분이라는 자산은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손학규의 정치적 자산은 그가 걸어온 민생행보이고 그가 주장했던 '저녁이 있는 삶'이 가지는 당위였다. 이념적인 선명함이다. 그러므로 그 명징함에 사람들은 이끌린다. 최소한의 핵심지지자들이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는 요새가 되어 줄 것이다. 하기는 그나마 가장 잘하는 것이다. 오히려 정치에서 은퇴한 이후 그의 주장은 더 선명해지고 더 명쾌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정치인으로 있는 동안 그의 정치적 스탠스는 그토록 모호하고 혼란스럽기만 했는가.
정치인으로서 유시민이 가진 가장 치명적인 한계였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는 싸가지없을 정도로 냉정하고 이성적이다. 거침없고 가차없다. 필요한 말이고 당연한 말이지만 대놓고 후비듯 던지는 재주가 있다. 그래서 과연 정치인으로서도 냉정하고 이성적이었는가. 그랬다면 국민참여당을 이끌고 통합진보당으로 들어가서는 안되었다. 당장 손학규가 주도하던 민주진보통합정당에서 유시민의 국민참여당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이미 다수의 친노계열 정치인들이 민주당에 합류한 상태이기도 했었다. 거대 제 1야당의 정치인과 한 줌도 안되는 진보정당 소속의 정치인, 과연 어느쪽이 더 유리하고 더 기회가 많겠는가.
통합진보당을 주도한 민주노동당의 당권파는 이미 80년대 치열하게 노선투쟁을 벌였던 NL출신들이었다. 노선투쟁과정에서 벌어진 수많은 불편한 사건들은 이후로도 NL과 PD가 서로 화합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고 있었다. 민주노동당이 분열하여 진보신당이 창당되는 과정에서도 당권파가 저지른 일들을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민주진보통합정당 - 민주통합당이 아닌 통합진보당을 선택했다. 어째서? 민주통합당의 다수이자 주류가 노무편을 탄핵했고, 임기말의 노무현을 부정하고 등돌린 배신자들이었다. 아마 감정적인 판단이 아니었다면 통합진보당과도 합쳤는데 민주통합당과 합치지 못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너무 입바른 말들로 주위와 불편한 관계를 자초했으면서. 정작 중요한 순간에 냉정하게 실리를 챙기지 못했다. 그야말로 이도저도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같은 감정적 판단의 중심이 자신이 모셨던 전대통령 노무현이 있었다. 유시민 자신이 이끌고 있던 국민참여당 역시 노무현을 지지했던 핵심지지자들로 이루어진 정당이었다. 이를체면 정치인 노무현이 남겨준 유산을 이어받은 상속자의 위치였을 것이다. 물론 정치에 상속자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산을 받았다면 자기 자신의 정치적 목표나 야망을 위해 활용해야 한다. 그런데 그 유산들에 오히려 휘둘리고 떠밀리며 정치적인 오판을 반복한다.
어쩌면 마지막 순간까지 유시민은 노무현의 지지자였을 것이다. 처음부터 정치인으로서 그는 실격이었는지 모르겠다. 권력의지가 없었다. 자신이 권력을 가지겠다는 강한 욕구와 의지가 결여되어 있었다. 자신을 위해 정치를 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지지했던 - 자신이 존경하는 정치인 노무현을 위해 그의 뒤를 이었을 뿐이었다. 그같은 괴리가 그로 하여금 정치인으로서 절대 해서는 안되는 어처구니없는 실책들을 반복하게 했을 것이다. 차라리 정치인을 그만둔 지금 더 원래 자기 옷을 입은 듯 편하고 자연스럽다.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다. 정치를 그만두고 나니 마음이 편하고 자유스러워 좋다. 정치에 은퇴는 없다. 노병이 죽지 않듯 정치인 역시 은퇴가 아닌 그저 사라져갈 뿐이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관심에서 밀려나 잊혀지고 마는 것이다. 아쉬움도 미련도 없다. 하다못해 태우고 남은 욕망의 찌꺼기조차 하나 없다. 자신을 중심으로 욕망과 바람을 투사하던 지지자들도 있다. 그런데 훌훌 벗어던지고 더 홀가분해한다. 정치인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다.
안희정을 보면 된다. 문재인을 보면 된다. 문재인도 처음에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마도 단순한 지지자라기보다는 한때 같은 사무실을 썼던 동료이자 동지의 입장이 더 강했을 것이다. 노무현이라는 이름만 나와도 중심을 잃던 문재인이 이제는 어느덧 정치의 중심에서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적과도 손을 잡고, 등돌린 이들마저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안다. 유시민처럼 시원시원하지는 않지만 현명하고 영리하다.
저술가지나 평론가로 돌아온 지금의 모습이 더 어울리고 행복해 보인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것 같다. 틀에서 벗어난 말과 글 역시 더 여유로워지고 더 날카로워졌다. 구속이고 족쇄였을 것이다. 어쩌면 제갈량의 유지를 잇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강유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정치인으로서의 역량은 노무현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문재인이나 안희정과도 차이가 컸다. 이론가이지 행동가는 아니다.
베일 것 같은 말의 날카로움과는 달리 사람이 너무 좋기만 하다. 지식인다운 섬세함과 무름이 있다. 그래서 더 사납게 가시를 세워보지만, 초식동물이 뿔을 내밀어봐야 육식동물의 먹이가 될 뿐이다. 있을 자리를 잘못 찾았다. 아마 자신도 그것을 깨닫고 있을 것이다. 정치는 자신의 일이 아니다.
행정가로는 충분했을 것이다. 정치적 야심은 없는 대신 이론과 지식에서 남다르다. 아쉬운 일이다. 훌륭한 행정가의 재목을 정치로 소진해 버렸다. 기회는 있을 테지만. 문득 기억을 떠올려본다. 아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