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송곳 - 버려지는 과장과 부장, 어떤 사람들의 통렬한 착각

까칠부 2015. 11. 22. 02:18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설마 내가..."


그래서 설마가 사람잡는다는 속담도 생겨난 것일 게다.


어째서 한국사회에서 노동운동은 보편적인 지지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가. 자기 일이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일 것이라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노동자가 아니다. 그런 비천하고 비루한 신분과는 전혀 다르다.


하기는 그래서 문소진(김가은 분)도 과거 그렇게 말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내 일이 아니다. 진짜 내 일을 찾기까지 단지 지나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도 노동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스스로 노동자임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더 크고 더 가치있는 무언가가 자신의 삶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잘 것 없는 노동자의 투쟁에 관심을 기울이고 심지어 지지까지 해주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허경식(조재룡 분) 과장 역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무려 과장이다. 중간관리자다. 회사의 지시에 따라 직원들을 내쫓아야 하는 위치에 있지, 자신이 회사로부터 내쫓기는 위치에 있지는 않다. 그저 회사가 시키는대로 충실히 따르기만 한다면 자기에게는 전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직원들도 해고할 수 있다면 회사는 과장인 자신 역시 얼마든지 해고할 수 있을 것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어 자신을 궁지로 내몰 수 있다. 회사의 일방적인 인사조치를 받아들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평소 형이라 부르던 정민철(김희원 분)은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다. 회사의 지시가 있으면 따른다. 회사의 일방적인 횡포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것은 심지어 자신에게까지 불손하여 원망하던 노조 뿐이었다. 노조만이 회사와 맞서 자신을 지키고 도울 수 있다.


버림받는다. 그토록 회사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모든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았건만, 알아서 먼저 희생하고 헌신해 왔었건만, 그러나 몇 번의 실수와 사소한 변덕에 의해 부장 정민철은 인사상무(정원중 분)로부터 버려지고 말았다. 다시는 직접 만나지 않겠다. 인사상무의 지시를 듣기 위해서는 법무팀의 변호사를 통해야 한다. 그런 수준이다. 아니 정민철이 그토록 다른 동료나 부하직원들을 무시한 채 오로지 인사상무만을 바라보며 달려온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자신의 운명은 회사가 쥐고 있으니까. 오로지 회사의 의지에 의해 자신의 처지나 입장이 전혀 달라지게 될 테니까. 위가 있으면 당연히 아래도 있다. 그 더 밑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회사의 눈치를 봐야만 한다.


"박사는 뭐 안 잘린대?"


바로 그런 뜻인 것이다. 박사도 노동자다. 중간관리자도 노동자다. 과장이든 부장이든 결국 노동자에 지나지 않는다. 일을 해주고 월급을 받는다. 월급이라는 생존을 위한 가장 중요한 물질적 수단을 담보잡힌 채 고용주를 위해 일해야 한다. 사용자의 사소한 변덕으로도 불이익을 당하고, 심지어 일자리까지 잃을 수 있다. 누군가는 회사를 믿고, 누군가는 다른 자신의 동료를 믿는다. 누군가는 회사의 선의에 기대고, 누군가는 설사 회사가 다르더라도 서로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는 동질성에 기댄다. 전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일개 마트의 파견직 여직원을 위해 사람들이 함께 싸우고자 모인다.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자신들밖에 없다.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결국 '우리'일 것이다. 과연 누가 진정 자신을 함께 지켜줄 '우리'인가.


그래서 더 서운하기도 했을 것이다. 같은 노동자이기에. 바로 어제까지 언니동생하며 살갑게 지내던 사이였었기에. 함께 같은 목표를 위해 싸울 수 있을 것이라 그렇게 여겼을 것이었다. 그러나 누군가는 떠났고 누군가는 남았다. 떠난 사람은 떠난 사람대로 남은 사람은 남은 사람대로 상처가 되어 남는다. 틈이 벌어진다. 하지만 그들 역시 자신과 같은 처지의 노동자라는 사실을 인식하기가 아직 너무 어렵다. 오로지 이수인(지현우 분)과 구고신(안내상 분)만이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버리고 배척할 대상이 아니다. 결국 언젠가는 함께해야 할 동지이고 동류일 것이다. 그 고단한 과정을 그린다.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허과장을 노조원으로 받아들이는 황준철(예성 분)의 모습은 그래서 의미가 남달랐을 것이다.


부장조차 알지 못하는 사이 인사상무에 의해 새로운 인사조치가 내려진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노동자를 단지 수단으로 취급한다. 굳이 필요치 않는 일이라도 일부러 만들어 시켜야 하는, 시키면 그대로 따라야 하는 도구로써 여기고 대하려 한다. 그는 허경식 과장과는 다르다. 동료가 아니다. 그동안 함께 얼굴을 마주하고 일해온 가족이 아니다. 타인이다. 인정이란 전혀 개입할 여지가 없는 철저히 타인과의 싸움을 눈앞에 둔다. 냉혹한 계산과 철저한 힘의 논리만이 이후의 싸움을 정의한다. 가장 가혹한 싸움이 될 것이다.


노조를 혐오하여 심지어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인 임금마저 노조를 억압하고 와해시키려는 수단으로 삼고 있었다. 지방노동위원회의 결정은 단지 그동안 부당하게 지급하지 않은 임금만을 제대로 지급하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2003년이다. 이나마라도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대단한 승리였다. 지방노동위원회의 통보가 있기까지 구고신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승리를 확신하지 못하고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고작 받지 못한 임금 그대로다. 그나마도 다시 중앙노동위원회까지 최종결론이 나려면 몇 달이라는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노동자의 사소한 불법에는 엄격하면서 사용자의 불법에는 너무나 관대하다.


차라리 죄인이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을 뒤에서 부추긴다.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인데 뒤에서 싸우라 힘을 불어넣는다. 이길 수 없다. 설사 승리하더라도 그것은 승리가 아닐 것이다. 보고 있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희망이 없다. 꿈도 없다. 하지만 싸워야 한다는 당위만이 있다. 붙들고 지탱하기에는 현실은 너무 달콤하고 한 편으로 가혹하다. 


누구를 위한 노조인가? 무엇을 위한 노조인가? 무엇을 위한 싸움인가? 그럼에도 노동자 스스로 노조를 외면하고 만다. 노동자와 노동자의 사이에 벽이 세워지고 깊은 골이 패이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싸울 것인가? 지치고 겁먹었음에도 싸움을 피하거나 멈추는 법을 모른다. 이길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싸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강한 이유다.


위기가 다가온다. 부장과 과장마저 버려졌다. 마트의 직원들만이 남겨졌다. 파견직 여직원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시작되려 한다. 타인의 불리함을 지나치지 않는다. 차라리 작은 승리가 그래서 더 안타깝고 불안하다. 현실을 안다. 어떻게해도 드라마는 판타지다.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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