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사회...
아주 오래전 생산기술이 형편없을 때는 잉여를 확보하기 위해서 생산에 참여한 개인의 몫을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냥 줄이면 반발할 테니 아예 인신을 구속하고 예속시켜 제한된 몫만을 강제한다. 그것이 노예다. 최소한의 대가만을 받으며 일방적으로 생산에 종사해야 했던 존재. 다시 말해 그 시절 국부를 늘린다는 것은 정당한 자신의 몫을 제한받는 노예의 수를 늘리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
조선후기까지 한반도에서 노비가 사라지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평지도 적고, 강수량도 불규칙하다. 여름이면 제법 기온이 높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쌀농사를 주로 짓는 지역치고 평균기온도 낮은 편이다. 괜히 조선조정에서 이앙법을 금지했던 것이 아니었다. 한창 모내기를 해야 할 4,5월에 아주 상습적으로 가뭄이 든다. 모내기때를 놓치면 한 해 농사를 그냥 망쳐야 한다. 온난한 기후로 이모작 삼모작까지 가능한 다른 나라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그래서 백성들을 생각한답시고 세금을 낮추는 대신 조선조정은 공노비를 운용했다. 공노비의 노동력을 약탈함으로써 조선은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보다 생산기술이 발달하고 생산성도 높아지면 그때는 노동력보다 생산수단인 땅이 더 중요해진다. 봉건시대다. 인간을 땅에 종속시키게 땅에 의지하여 살아가게 한다. 그보다 더 발달한 것이 바로 자본주의 시대다. 말 그대로 돈이 돈을 번다. 인간을 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도록 방치함으로써 고도화된 생산기술이 더 큰 욕망과 소비로 이어지도록 유도한다. 자유가 곧 생산수단이며 부의 수단이다. 자유가 없는 자본주의란 그런 점에서 얼마나 허망한가. 그것이 바로 공산주의다. 국가에 의해 억압당하고 통제받으며 오로지 생산과 소비의 수단으로서만 인간은 존재한다. 쇠퇴한 것으로 그 한계와 모순을 증명한다.
더 자유롭게 생산하고 더 자유롭게 소비하며 자연적인 시장의 작용을 통해 전체의 부가 성장한다. 그것이 자유시장주의 아니던가. 인간은 더 자유로워야 하고, 그럼으로써 더 적극적으로 시장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봉건사회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얘기였다. 그러다가는 토지에서 생산된 알량한 생산물이 모두 바닥나게 된다. 노예제 사회에서는 더욱 결국 모두가 함께 죽자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경제를 살리겠다. 그를 위해 노동자의 해고를 쉽게 하겠다.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임금을 줄이겠다. 노동자가 누리는 혜택들을 없애겠다. 좋아한다.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경제를 살리는 길은 노동자가 자신의 몫을 희생하는 것 뿐이다. 당장 지지율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바로 대한민국 경제의 현주소다. 더 이상 기술의 혁신과 시장의 개척으로 다른나라의 기업들과 경쟁할 여력을 잃어가고 있다. 남은 것은 오로지 노동자를 쥐어짜고 갈취하는 것 뿐. 본능적으로 안다. 한국기업들은 이미 도태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올리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미국발 뉴스들이 차라리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드라마 '송곳'조차 사실 이제는 판타지에 가깝다. 대체 어느 마트에 노조씩이나 만들 수 있는 정규직 직원들이 매대를 채우고 있는가. 더 줄이고, 더 쪼고, 그리고 더 억누르고, 그리고 그것이 민생이다.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모두가 잘 사는 길이다. 어느 시대를 사는 것인지.
벌써 몇 년 째 민생이다. 경제살리기다. 그리고 내놓은 대안이라는 것이 이것이다. 지지해달라. 야당이 도와야 한다. 야당이 발목을 잡는다. 이것을 위해 다른 모든 것들을 희생해야 한다. 정부와 여당이라면 경제는 잘 살릴 것이다. 그 막연한 기대를 이제서야 확인한다. 그들이 바라는 경제란 무엇인가 하는 것도. 경제전문가라는 것들이 하는 소리들이다. 우습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