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과 시위, 시민의 불편에 대해...
공화국이란 단지 자유로운 개인의 집합이 아니다. 사회에 대한 책임과 권리를 공유하는 시민의 공동체다.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공공의 목적과 이익을 위해 일정부분 희생할 수 있다. 그 희생이 모여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이어간다. 공동체에 대해 자신의 요구를 전달할 수 있는 권리는 그 가운데 매우 중요한 것이다.
사회의 주인이다. 국가의 주체다. 당연히 정책을 책임진 정부에 대해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때 보다 강력하게 자신들의 요구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공동체다. 그래서 시민이다. 그것이 공화국에서 공공의 목적과 이익이 된다. 그런데 그것이 불편하다. 그것이 성가시고 자신에게 손해가 된다. 그러니 하지 말라. 과연 무슨 의미일까?
독재는 오히려 무한히 자유로운 개인을 전제할 것이다. 포퓰리즘과 가장 가까운 것은 민주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전체주의일 것이다. 국민의 자발적인 복종을 이끌어내기 위해 인간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활용한다. 단지 자신들의 말만 잘 들으면. 자신들이 시키는대로 거역하지 않고 잘 따른다면. 어차피 어떤 사회에서든 체제에 순응하는 다수는 별문제없이 살아간다. 일제강점기가 모든 식민지의 조선인들에게 지옥이기만 했을까? 그저 소수의 적응하지 못한 일부만이 불평불만을 가지고 저항하려 할 뿐이었다.
개인을 파편화한다. 사회의 정의와 윤리마저 개인의 도덕 안에 가두어 버린다. 오로지 국가에만 의지한다. 국가만을 기대어 사고하고 판단한다. 가족이 해체된다. 지역사회마저 해체되어간다. 남는 것은 오로지 권력을 중심으로 한 피라미드 구조 뿐이다. 오로지 자신만을 믿는다. 권력의 하부구조로서의 직접적인 관계에만 의지하려 한다. 개인은 약해진다. 정확히 개인은 결코 강해질 수 없다. 파편이 된 개인은 결코 권력에 저항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을 오히려 더 불편하고 성가시게만 여긴다.
노조가 없는 기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노조가 있다면 회사가 정리해고를 하려 할 때 어떻게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 노력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아예 정리해고 자체를 철회시키거나, 그럴 수 없다면 최소한의 인원만 보다 나은 조건으로 해고할 수 있도록. 하지만 노조가 없는 기업들은 자기만 어떻게든 대상에서 벗어나보고자 발버둥치게 된다. 다른 이를 의심하고 질투하고 견제하며 오히려 자신과 같은 노동자를 원망한다. 그런 기업에서 노동자는 결코 사용자와 맞서 자신의 이익을 지킬 수 없다. 오로지 사용자로부터 뻗어내린 권력의 일부만을 부여잡고 일방적인 온정에만 기대려 할 뿐이다.
굳이 현정부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어른들은 입버릇처럼 말하게 되었다. 앞에 나서지 말라. 너 자신만 생각하라. 너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라. 국민을 쪼개고 나눈다. 저들로 인해 당신이 불편하다. 저들로 인해 당신들이 불이익을 받는다.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저들이 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세월호의 비극 앞에서 특례입학이 이슈가 되고 보상금이 중요하게 이야기된다. 배아프고 화가 난다.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인정마저 잊는다. 정부의 책임은 사라진다.
그동안 정부가 전혀 거리낌없이 불법까지 동원해가며 시위를 통제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노동운동을 탄압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국민이 지지한다. 국민이 무관심하다. 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일이 되었을 때 누가 그의 편을 들어줄까.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투표하라. 투표라도 해서 권력을 바꾸지 않는다면 시민의 목소리는 결코 권력에 닿을 수 없을 것이다. 반복되어 온 학습의 결과다.
시위가 시민에게 불편을 준다. 시위대로 인해 시민에게 불이익이 돌아간다. 하지만 그러라고 있는 시위다. 시민들을 불편하지 않게 해 줄 책임은 오로지 정부에 있다. 시민들이 부당하게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살펴야 할 책임 역시 오로지 공적인 책임을 위임한 권력에 있을 것이다. 시민의 불편을 담보삼아 정부에 압력을 가한다. 그런데 시민 자신이 그것을 거부한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 가만히 있으라. 다시 말해 자신의 이기를 위해 시위에 참가하려는 이들에게 그들의 공적인 권리를 포기할 것을 강요한다. 무슨 의미인가.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시위의 이기는 공적인 이기다. 사회의 주체로서 공적으로 부여된 권리다. 그것을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포기할 것을 강요한다. 권력의 편에서. 지금껏 길게 설명한 바로 그 내용인 것이다. 그리고 권력은 시민을 무시한 채 멋대로 입맛에 맞는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다. 그동안의 결과가 전혀 소통하지 않으면서 높은 지지를 누리며 무리한 정책들을 남발하는 현정부인 것이다. 그들을 지지하는가.
나만 잘되면 돼. 나만 불편없으면 돼. 나만 상관없으면 어찌되든 아랑곳않는다. 그것이 대한민국이다. 개인이라는 이름의 이기주의. 그리고 그를 위해 권력의 편에서 그들이 떨어뜨려줄 단물을 기대는 나약함이. 오로지 권력이 잘해서 자기에게 뭐라도 이익이 돌아오기만을 바란다.
하여튼 시위만 있으면 논란이 불거진다. 내가 불편하다. 나에게 불이익이 있다. 누군가 그러더라. 그런 게 민주주의라 하니 민주주의는 개에게나 주라. 일베인가는 모른다. 대학생이었다. 갑자기 정치란 것에 대한 회의를 느끼던 순간이었다. 도대체 선배들은 뭣하느라 그리 목숨을 걸어가며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것인가.
공화국이다. 모두의 나라다. 모두의 사회다. 모두에게 주어진 책임과 권리다. 자신들이 곧 사회의 주인이다. 국가의 주인이다. 권력은 바로 자기로부터 나온다. 역시 아래 쓴 글의 내용으로 돌아간다. 공동체로서의 국가를 아직 인식하지 못한다. 이기와 단지 권력만을 인지한다. 씁쓸한 현실이다. 너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