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어느 시골에서 일어난 살인에 대해...

까칠부 2015. 12. 12. 00:18

하기는 원래 가족을 향한 범죄가 더 잔인하고 더 흉폭하다. 피해자에게 어지간히 원한이 있지 않고서는 그렇게까지 할 수 없을 것 같은 행위들을 더 침착하고 더 냉정하게 더 계획적으로 저지르기도 한다. 어째서?


어차피 남이란 등돌려 떠나면 다시 보지 않을 사이일 것이다. 어지간히 서로 감정이 상했어도 외면하고 안 보면 그만이지 그 이상 무언가를 한다는 자체가 오히려 성가시고 부담된다. 서로 모르는 남이기에 설사 무언가를 해보려 해도 상상단계에서 막히고 만다. 계획범죄는 그래서 대상에 대해 상당부분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상상하며 계획을 구체화시킨다.


그런데 가족은 아니다. 헤어져도 가족이다. 몇 년을 떨어져 있어도 가족이다. 수십년을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헤어져 지내다 다시 만났어도 그들은 가족이다. 그것이 더 큰 절망으로 다가온다. 도대체 앞으로 언제까지 지금같은 상황을 계속해서 감당해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아주 작은 틈이 비어져 나온다면 거기서부터 상상은 시작된다. 과연 어떻게 하면 이 지긋지긋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억눌렸던 감정이 계기를 찾아 그래도 뚫고 현실로 튀어나오게 된다.


이른마 묻지마 살인과 같은 범죄도 비슷한 이유다. 다만 이 경우는 특정한 대상과의 직접적인 관계보다 사회에 대한 일반적이고 지속적인 부대낌의 결과일 것이다. 차라리 나와 상관없다 여긴다면 그렇게까지 절망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묻지마 살인을 저지르기 전 범죄자는 더 강렬하게 대상을 사회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그것은 또한 견딜 수 없는 고통이고 절망이다.


어느 시골에서 벌어진 끔찍한 범죄에 대해서. 어째서 순박한 시골마을에서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노인에 의해 그와 같은 참혹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었겠는가. 이유는 어쩌면 아주 사소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가까운 서로의 관계가 그마저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고 지나치도록 강요했다. 분노는 축적되는데 비져나올 틈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웃이라는 관계가 단기간에 해소될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아예 외면하고 살 수도 없다. 너무 가까워서 서로의 거리를 잃어버린 탓이다.


너무 친한 사이면 한 번의 틀어짐만으로 그대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너무 친한 사이라서 그 자체로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간관계란 그래서 어렵다. 그래서 항상 비져나갈 수 있는 틈을 만들어야 한다. 적당히 다투고 적당히 등지고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적당히 서로와 자신을 객관화한다.


인간에게 인간이란 가장 큰 두려움이고 공포일 것이다. 가족이라도 그것은 다르지 않다. 지나치게 다가가는 것은 그래서 현명하지 못하다. 어느 정도의 거리면 적당하겠는가. 그것이 지혜일 것이다.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