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노동자와 임금, 노동가치설과 경제...

까칠부 2015. 12. 12. 01:00

간단한 비유다. 300만원짜리 TV를 샀다. 그런데 자기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TV를 보는 시간이 채 절반도 되지 않는다. 대리점에서 따진다.


"다른 사람들보다 TV를 절반밖에 보지 않는데 가격도 그만큼 더 깎아주어야 하지 않는가."


혹은 마트에서 술을 사면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혼자 사느라 소주 한 병을 다 먹지 못해서... 혹이 이거 반만 덜어 팔면 안될까요?"


소주를 병에 담아 파는 것은 그것이 판매를 위한 기본단위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수박을 조각내어 파는 곳이 있다고 해도 통으로 내어놓고 파는 곳에서 반으로 잘라달라 하는 것은 무리한 것이다. 다른 수박들은 모두 통으로 파는데 그 수박 하나만 반으로 조각내어 조각낸 것을 사줄 다른 손님을 기다려야 한다.


흔히 말한다. 어차피 하는 일도 없으니까. 하는 일이 그다지 힘들거나 어렵지 않으니까. 그 시간에 매상도 얼마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한 사람의 시간을 사는데 그 가격을 낮출 수 있겠는가. 최저임금이란 그런 의미다. 노동자 개인이 가지는 한 시간의 가치다. 일을 해서 얼마의 매출을 올리고 얼마의 이익을 얻을 것인가는 사용자 자신이 노력할 문제인 것이다. 수박 한 통을 사서 절반을 먹고 나머지 절반을 어떻게 활용해야 잘 먹었다 말할 수 있겠는가. 수박은 그냥 존재할 뿐이다.


노동가치설이란 무엇인가. 모든 생산된 제품의 가치는 투입된 노동량의 가치와 같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노동량이란 무엇인가. 노동자의 시간이다. 남들보다 10배 20배 TV를 더 많이 본다고 TV를 더 비싸게 주고 사야 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노동자의 시간은 노동자 자신의 가치다. 정확히 노동자 자신이 가지는 기회의 가치다. 그리고 그것은 곧 인간의 가치와 같은 뜻으로 쓰일 수 있을 것이다.


노동을 통해 기대하는 최소한의 수입이 있다. 바로 그것을 얻기 위해 노동자는 노동을 한다. 그런데 그 수입이 기대한 것에 터무니없이 미치지 못한다. 노동을 거부한다. 생산 뿐만 아니다. 유동과정에서도 더 이상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 때 그와 관련한 노동마저 거부하게 된다. 상품은 생산될 수 없다. 그를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다. 


바로 벌써 오래전부터 사회문제로 여겨져 온 3D업종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농업 역시 마찬가지다. 해당 업종에서 자신이 생산에 참여하기 위해 투자해야 할 시간들의 기회비용이 그로부터 얻게 될 수입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차라리 노동을 거부한다. 심지어 아예 일이 없어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더라도 노동을 해서 돈을 벌기를 거부한다. 선진국에서 사양산업이라 불리우는 것들도 그런 예들일 것이다. 상품의 가치는 턱없이 낮은데 그에 투입해야 할 인간의 가치는 턱없이 높다. 임금이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계량하지 못하고 있다. 


수치로 계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 그래서 경제학의 영역은 아닐 것이다. 다만 정치사회적 관심과 분석의 대상은 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우리사회에서 적정한 노동가치는 어느 수준인가. 그 비용을 보전할 수 없으면 해당산업은 포기해야 한다. 아니면 그 비용을 보전할 수 있도록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다른 수단을 궁리해서 내놓거나. 그리고 바로 그 인간의 가치야 말로 그 사회의 수준을 말해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빈곤하고 인간의 가치가 비천한 사회에서는 아주 적은 임금에 열악한 환경에서도 기꺼이 일을 해서 그만한 대가라도 벌려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가치가 그보다 더 존귀하고 더 가치있다면 그보다 더 비싼 비용을 치르고서야 노동력을 고용하여 생산에 투입할 수 있다. 당연히 생산된 제품 역시 그럼에도 이익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이루어진다. 바로 역시 흔히 이야기하는 부가가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 많은 이들이 더 많은 이익을 나눌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끊임없이 궁리하여 대안으로 제시한다. 단순히 잘살아서가 아니라 세계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위치라 선진국이다.


그래서 다시 묻게 된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란 과연 어느 정도로 계량되는가. 자신의 가치란 과연 어느 정도로 계산될 수 있을 것인가. 모두가 이어진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우리들 자신이 받아야 할 적정한 임금수준이란 어느 정도인가. 그리고 그만한 임금을 감당할만한 상품과 산업은 무엇이 있는가. 그를 위해 기술적으로 제도적으로 혁신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바로 미래를 위한 전략으로도 이어진다. 당장 한때 한국경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었던 조선업이 무너지고 있다.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안된다.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경영하고, 그렇게 경영하도록 방치하고 돕기만 해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순간에 강을 파고 교과서만 고치려 한다.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산업 전반에 대한. 한국사회 전반에 대한. 70년대와는 다르다. 90년대와도 다르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의 체질과 체급에 걸맞는 새로운 처방이 필요하다. 과거로만 돌아가려 한다. 오래전 그때 그 수준에 머물려고만 한다. 한국은 도태된다. 미래가 사라져간다.


인간의 가치가 무시된다. 노동의 가치가 무시된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한국 사회이고 경제다. 그저 노동자만 쥐어짜려 한다.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 답답한 이유다. 미래는 바로 내일이다. 마음만 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