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 '뿌리깊은 나무'에서 정기준이 우려했던 것...

까칠부 2015. 12. 12. 07:47

나라의 부름을 받아 나라의 적을 무찌르기 위해 불려가는 중이었다. 아마 지금이었다면 감히 나라의 영토를 빼앗으려 든다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원해서 입대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최소한 아무리 두렵고 겁이 나도 모두가 듣는 앞에서 싸우지 말고 도망쳐서 살아남으라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죽음이 두렵지만 차마 나라를 위해 병사가 필요하다는데 그 앞을 가로막을 용기도 나지 않는다.


전작 '뿌리깊은 나무'에서 밀본의 본원 정기준이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를 우려하며 했던 말의 일부였을 것이다. 백성은 오히려 배움으로 인해서 더 쉽게 속게 될 것이다.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라에 충성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나라를 위해 기꺼이 자기 한 목숨을 바치는 것이야 말로 정의이고 윤리이며 도덕이라는 사실을 배워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백성들은 정부에 맞서 자신을 지키려 나설 수 있을 것인가.


정부가 나서서 노동자를 더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내몰려 시도하는 중이다. 해고도 더 쉽게, 일정 연령이 되면 급여마저 깎이게 된다. 정부가 백성들에게 정해진 이상의 세금을 걷으려 하면 필연적으로 반란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오히려 정부의 입장을 이해한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선의에 동의한다. 나라를 위해 자신들이 한 발 양보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정부의 지지율은 오히려 높아진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을까? 오히려 자발적으로 전장에 나가 기꺼이 죽으려 하는 지금의 국민과 자신과 상관없는 전쟁을 끝까지 거부하려 했던 당시의 민초들을 비교하며. 형편없는 대우에 열악한 조건에도 오히려 군대 가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현대의 국민들과 그것이 두렵고 싫어서 차라리 도망치려는 당시의 백성들을 보여주면서. 과연 역사속에서 백성들을 더 현명해지고 더 강해졌는가.


하기는 그것이 바로 국민교육의 목적이기도 하다. 국민교육이란 국민을 길러내는 교육이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할 수 있는, 오로지 국가를 위해서만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우수하고 훌륭한 국민을 길러내기 위한 수단이다. 국민교육을 부활하려 한다. 오히려 더 야만적으로 퇴행된 국민교육이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훈민정음이 그런 수단으로 쓰인다. 정기준은 옳았다 말해도 좋을까? 현실이 더 비극이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