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정치혐오와 초인론 - 어느 독선과 독단에 대해...

까칠부 2015. 12. 14. 19:55

전제주의는 신과 같은 전지전능한 절대의 군주를 전제한다. 대개는 군주 자신이 신이고, 혹은 신의 대리인이며, 혹은 그와 유사한 존재였다. 그러므로 오로지 위대한 군주에 의해서만 지상의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하기는 정치의 시작은 종교였었다. 종교적 지도자로부터 세속의 지도자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대부분의 군주들은 신은 커녕 보통 인간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시한 인간들이었다. 신은 하늘 위에 있고 땅 위에는 인간만이 산다. 대안을 찾아 고민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르게 된 것이 시시한 인간들이 만드는 시시한 정치였다. 바로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느리다. 번거롭다. 어렵다. 복잡하다. 시끄럽다. 때로 오류도 저지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 다른 대안을 찾으려 고민하기도 한다. 더 빠르고, 더 편하고, 더 쉽고, 더 단순하고, 더 조용한... 바로 전제주의다. 현대의 전제주의는 다른 말로 전체주의라 부르기도 한다. 정치에 무지할수록, 정치에 관심이 없을수록, 정치를 싫어할수록 그같은 경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더 빠르고 더 편하고 더 쉽고 더 단순하고 더 조용할 테니까. 세상에 주권자란 오직 한 사람만 존재하는데 그리 피곤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이 옳다. 내가 하는 것만이 정의다. 다 받아들이라. 받아들이지 않으면 끝이다. 그런 어거지를 끝까지 지지한다. 왜냐면 절대적으로 옳기 때문이다. 틀릴 수 없기 때문이다. 무오류를 믿는다. 포퓰리스트라는 말이 옳을지 모르겠다. 포퓰리스트는 전체주의 국가에서 나타난다. 히틀러가 그랬고, 무솔리니가 그랬다. 그대로 한 사람만 믿고 따른다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어차피 다 같은 시시한 인간들이다. 정치인 역시 마찬가지다. 시시한 가운데 그나마 쓸만한 의견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머리를 맞댄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합의점을 찾아낸다. 오류도 있다. 적당히 타협하며 물러선 부분도 있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간다. 그런 과정들을 무시한다. 나는 시시한 인간이 아니다. 그는 시시한 인간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파괴된다. 정치가 파괴된다.


그러고보면 전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정부도 마찬가지였었다. 참여정부 당시 지지자들이 보인 모습도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 사람의 초인이 와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 그 초인을 반대하는 자들은 모두 자신의 적이다. 어쩌면 이리 닮아 있는지. 정치를 부정하면서 정치를 강요한다.


뭣같은 놈들도 있다. 도저히 사람같지 않은 것들도 있다. 하지만 인정한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만들어가는 정치다. 그것을 부정하는 순간 정치는 붕괴된다. 지금처럼. 국회가 마치 청와대의 하부기관처럼 그 지시를 들어야만 한다. 한 개인을 위해 당이 들썩거려야 한다. 멀지 않았다. 우울한 이유다. 정치의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