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와 정치부정...
하기는 내가 2002년 노무현을 지지했던 것도 결국은 정치에 대한 혐오가 원인이었다. 싹 뒤집고 싶다. 다 갈아엎고 싶다. 그래서 개혁신당을 지지했고, 열린우리당에도 기대를 가졌었다. 그리고 얻은 것이란 정동영이 끌어들인 이른바 탄돌이들. 오죽하면 열성지지자조차 정작 총선에서 민노당에 표를 주겠단 말을 했었을까.
2007년 이명박이 당선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의도정치와 거리를 둔다는 사실이었다. 입법부를 무시한다. 아니 무시할 것도 없다. 이미 의회내에서 당시 한나라당은 압도적인 다수당이었으니. 야당따위 무시하고 하고 싶은 대로 전혀 가리거나 거리끼는 것 없이 시원시원하게 다 한다. 그것을 또 추진력 있다 좋아한다.
박근혜 역시 마찬가지다. 시행령정치라 말한다. 입법부인 의회에 맡겨 필요한 법령을 제정하는 것이 아닌, 심지어 청와대에서 두 거대정당간에 이루어진 합의를 일방적으로 부정하여 좌절시키기까지 한다. 정부가 하라고 그러면 의장은 직권상정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의외로 여론의 지지가 높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대통령이 시키는대로 하루빨리 법안을 직권상정시키라.
정치란 거래다. 그래서 독재의 반댓말은 정확히 민주주의가 아닌 정치다. 일방적으로 자신의 우위를 이용하여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전부 아니면 전무를 강요하며 선택케 하는 것이 아니다. 내어줄 것은 내어주고 가져갈 것을 가져간다. 자신이 얻고자 하는 최소한과 얻을 수 있는 최대한 사이에서 저울질하며 조율한다. 서로를 인정하며 존중하고 공존할 줄 안다. 다만 그보다 내가 더 우위에 있다. 그 사실만 필요하다.
그래서 더욱 정치에 필요한 것이 서로 공존하기 위한 원칙이고 절차이고 규준이며 도의일 것이다. 최소한 자신들이 싸우면서도 결코 넘어서는 안되는 선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때로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 정치가 자신을 실망시켰을 때. 정치가 바른 결과를 내지 못했을 때. 그래서 의심하고 부정하게 된다. 더 나은 더 확실하고 더 효과적인, 그리고 더 빠른 다른 대안을 찾게 된다. 민주주의가 전체주의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무능한 국회보다 유능한 전제적 황제가 더 편리하고 유용하다. 시끄럽기만 한 다른 것들을 다 배제한 채 가장 옳고 바르다 여겨지는 한 가지만을 남긴다. 세계는 조용하고 안정되고 일관되다.
2012년 대선 당시 단일화 과정에서 보여준 안철수의 행보에 실망보다는 그저 확신을 가지게 되었던 것은 과연 안철수라는 인물이 정치란 것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전 안철수의 탈당과 관련해서도 문재인과의 갈등을 보며 오히려 안철수에 대한 혐오감만 키우게 된 것도 과연 안철수에게 정치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그같은 의문은 이내 사실로 드러나고 말았다.
당의 전공동대표로서 현공동대표의 정당성을 부정하며 공격하는 행위는 과연 정치적으로 정당하다 할 수 있을 것인가. 혁신위원장을 고사했으면서 혁신위의 활동을 실패했다 단정지으며 자신의 혁신안을 받아들이라 강요하는 것은 어떤가. 당에 정해진 원칙과 절차가 있는데 일방적으로 혁신전대를 제안하고 받아들이라 압박을 한다. 단지 안철수의 탈당으로 인한 당의 분열을 두려워하는 당대표 문재인을 비롯한 야당의 정치인과 지지자들의 불안을 이용한 벼랑끝 전술이었다. 끝내 자신의 혁신안을 받아주었는데도 이제는 때가 늦었다. 한 마디로 내가 하고 싶은대로 그냥 다 따라달라. 그런데 하필 그 명분이 너무 정의롭다는 것이 확신을 사실로 바꾸어 놓는다. 그는 정치를 해서는 안되는 사람이다.
문제는 어쩌면 바로 그것이야 말로 안철수가 탈당 이후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일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물론 첫째는 이름값이다. 여전히 안철수라는 이름은 대부분의 중도 무당파들에 유효하다. 그가 그동안 걸어온 길이 있다. 그동안 이루어 놓은 업적이 있다. 정치인 안철수와는 별개로 자연인으로서 그동안 그가 보여준 것들이 상당하다. 그런데 더구나 어찌되었거나 절차든 원칙이든 상관없이 당대표를 혁신을 명분으로 들이받고 바로 탈당해버린 과단성을 높이 산다. 시원시원하다. 그동안 여당과 야당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유권자들에게 자극이 된다. 둘 다 엿먹이고 싶은 비틀린 감정을 제대로 건드려 준다. 그래서 그런 자신의 정치를 통해 그가 만들어가려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그의 새정치가 추구하는 정치의 미래는 무엇인가.
그래서다. 그러면 과연 안철수의 신당은 어떤 모습일 것인가. 글쎄... 일단 당을 만들기도 쉽지 않을 테고, 인재를 끌어들이기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원래 정당 하나 만든다는 것이 그런 의미다. 막대한 자금과 인력, 무엇보다 확고한 고정지지층의 존재가 필요하다. 하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당을 만들고 났을 때 보여지는 모습 그 자체일 것이다. 누구를 데리고 어떤 구조를 가진 무엇을 추구하는 정당을 만들 것인가. 하지만 그 전에 그동안 안철수가 정치인으로서 보여준 모습들을 신당에서도 반복하려 했을 때 당은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신당에 김한길과 같은 거물이 합류한다면 그들은 과연 서로 화합할 수 있을 것인가. 그때는 공동대표였고 김한길에게 주도권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안철수가 만든 신당이고 김한길은 그에 입당하는 형식일 것이다. 그런 상태로 공존하며 함께 당을 성장시키고 발전시켜야 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 것인가.
대통령이 되었을 경우 안철수가 보여줄 행보들을 문득 상상해 본다. 국회의원의 수를 줄여야 한다. 기초의회선거에 공천하지 말아햐 한다. 군의 인사권을 군에 돌려주어야 한다. 당대표의 정통성이야 어찌되었든, 당헌과 당규야 무엇이 되었든, 당원의 입장이 무엇이든, 일단 평당원으로서 내가 해야 하니 혁신안이든 혁신전대든 다 들어주어야 한다. 문재인이 말한 '새누리당'이라는 말을 그때까지 가슴에 품고 있다가 찾아온 중진들에게 밖에서까지 들릴 정도로 분노를 토해냈다 말한다. 마지막은 아닐 것이라 믿고 싶다. 정치인으로서 이건 너무 속좁은 모습이 아닌가. 유시민이 왜 실패했겠는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해서였다.
결국은 이제부터 보여줄 모습들이 안철수와 신당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불안한 것은 어쩌면 안철수가 정치를 부정하고 거부하려 할수록 지지율이 더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타협을 거부하고, 연대를 거부하며, 오로지 자신의 일방적인 입장만을 새정치와 혁신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강요하면 강단있다 추진력있다 더 지지하게 되지는 않을까. 다만 김한길이라는 거물이 합류하게 된다면 그를 통해 적절한 견제가 이루어지며 안철수가 정치인으로서 훨씬 성숙해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도 있다. 호불호를 배제했을 때 김한길은 아주 유능한 정치인이다. 정치인으로서 지금보다 성장한다면 그때는 또 평가도 달라질 수 있다.
CEO였을 것이다. 이공계이고 의사였을 것이다. 좋은 집안에 오로지 자신의 실력과 노력만으로 성공한 자수성가형일 것이다. 참 이렇게 좋은 것만 가지기도 쉽지 않은데, 그래서 어쩌면 그것이 정치인으로서 그가 가지는 어떤 족쇄같은 것은 되지 않을까. 전부터 의심해 오던 것이다. 정치의 무능과 비효율을 밖에서 오랫동안 지켜봐 왔었다. 정치의 부패와 비능률에 아마 다른 많은 유권자처럼 분노하고 비판해 왔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정치인이 되어 정치란 것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인가. 정치를 혐오만 해서는 정치를 할 수 없다. 악과도 때로 타협할 수 있어야 정치란 것을 할 수 있다. 진흙탕에 몸을 담그지 않고는 연꽃을 딸 수 없다.
2007년 당시 내가 박근혜를 이명박보다 더 무서워했던 것은 바로 그것이었었다. 박근혜는 정치를 모른다. 정치를 아예 알려고 하지 않는다. 박근혜가 아는 것은 오로지 권력이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거의 모든 선거에서 승리하고 있었다. 파시즘이란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에 대한 부정이다. 정치에 대한 피로다. 정치가 사라진 권력이란 어떤 모습일까. 안철수를 경계했던 이유. 그는 과연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아직까지도 나는 그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지금까지 보인 모습으로는. 앞으로는 역시 모르겠다. 그것은 전적으로 안철수 자신에게 달린 일이다. 아직까지는 안철수 자신이 정치인 안철수의 내일을 결정한다.
정치를 하려면 정치를 해야 한다. 정치인이 되었다면 정치를 할 줄 알아야 한다. 권력과 정치는 다르다. 정치가 사라진 권력은 단지 독재일 뿐이다. 아무리 청렴하고 정의롭더라도 그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정치를 혐오한다. 정치인을 혐오한다. 그저 기존과 다른 새로운 이름과 가능성에 환호한다. 이윤석의 발언이 그 힌트가 되고 있을 것이다. 정치에 대한 부정이 정치를 부정하는 새로운 가능성에 열광케 한다. 아니기를 바라지만. 그럴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게 다시금 자신을 비관적으로 만든다. 아직 정치란 혐오이고 증오다.
여러가지로 불편한 시절이다. 정치인 자신의 책임도 크다. 문재인은 고작 그러고서 정동영이나 끌어들이겠다고 찾아갔다가 퇴짜맞고 있었다. 그런 모습들이 얼마나 사람들로 하여금 정치에 실망케 하고 절망케 하는가. 그렇더라도 정치는 정치다. 문재인이 정동영을 찾아간 자체도 부정적이지만 하나의 정치다. 어렵다.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