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안철수의 인물론과 새정치...

까칠부 2015. 12. 29. 05:11

아마 2007년 대선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2008년 총선이었다. 어느 방소에서 인터뷰를 했다. 투표를 거부하고 놀러갔다 온 한 젊은이와의 인터뷰였다. 젊이는 대답했다.


"어차피 내가 투표하든 말든 달라지는 건 없지 않은가. 보라. 결국 이런 사람이 당선되었다."


정치혐오, 혹은 정치무관심층에게서 흔히 보이는 유형이다. 정치란 가만 있어도 그냥 되어지는 그런 것으로 여긴다. 가만히 있어도 그냥 잘되거나, 가만히 있더고 그냥 안된다. 정치란 정치인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지 자기와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정치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정치인에게만 있다.


그래서 또 정치혐오, 혹은 무관심층이 흔히 빠지게 되는 것이 바로 인물론이다. 이만큼 바르고 훌륭한 인물이 있다면. 이만큼 대단하고 뛰어난 인물이 정치권에 있다면. 그렇다면 당연히 그 바르고 훌륭하며 대단하고 뛰어난 인물에 의해 가만히 있어도 정치는 저절로 잘 이루어질 것이다. 물론 기존의 정치를 혐오하고 불신하다 보니 그 인물은 정치권 밖에 있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누군가일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도 선거때마다 새롭고 참신한 인재들이 적잖이 정치권에 수혈되고 있었다. 항상 물갈이는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새로운 인물들이 공천을 받고 선거에 당선되어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도 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그 새로운 인물들은. 그래서 아예 자기만의 정당을 만들어 새로운 정치를 해보겠다고 시작한 경우도 있었지만 역시 끝은 좋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였겠는가.


정당이란 개인이 아니다. 당대표나 혹은 당의 유력한 정치인 한둘이 당의 모든 것을 좌우하거나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당이란 집합이다. 목적의 집합이며 지향의 집합이며 이익의 집합이고 감정의 집합이다. 특별히 대중에 알려진 몇몇 사람이 아닌 당을 이루는 전부가 당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것이다. 바로 거기에서 실패했다. 대중이 기대하는 자신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자신의 당을 만드는데 실패했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이미 흘러간 인물들이다. 암울했던 그 시절에야 김영삼과 김대중 같은 특정 인물들에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개인의 수완과 의지가 야당을 이끌어가는 거의 유일한 힘이었다. 오로지 특정 개인만을 바라보며 정치를 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마저도 민주화 이후 그 영향력이 전과 같지 않았었다. 김대중당이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은 동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항상 좌절시키고 말았던 크나큰 족쇄였다. 당에 대한 지지가 인물 개인에 대한 호불호로 결정된다. 인물중심 정당의 한계다.


그래서 선진국의 경우에도 당이 특정한 인물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경우란 거의 없다. 그래서 '공당'이다. 공당이란 다수 당원의 공의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정당을 뜻한다. 대통령후보를 선출하며 당원은 물론 국민들에게 의견을 물어 경선을 치르는 이유인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과연 누구를 후보로 공천할 것인가를 두고 당원과 지역유권자들에게 물어 적합한 인물을 골라낸다. 바로 시스템이다. 지금 문재인이 당의 내홍을 온몸으로 견디면서 추진하려 하는 바로 그것이다. 당의 대표나 특정 계파의 수장들이 아닌 당원과 국민들에게 새정연 - 아니 더불어민주당의 공천을 돌려주려 한다.


마냥 공천만 하는 것의 문제는 역설적이게도 지난 4월의 재보선을 통해 드러났다. 경쟁력 없는 후보가 단지 당내 조직만을 앞세워 경선에 통과하여 결과적으로 선거에서 패하고 말았다. 상당수 비주류 인사들이 지지하는 완전 오픈프라이머리가 가지는 한계였을 것이다. 조직을 가진 기성 정치인에게 어쩔 수 없이 더 유리할 수밖에 없다. 기성 정치인들이 저토록 당대표까지 흔들어가며 반대하며 나서는 이유인 것이다. 지역당에서의 경선만 제대로 자리잡힌다면 새로운 인물들이 지역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아 얼마든지 새롭게 정치권에 진입할 수 있다. 하위 20%커트라인은 그를 위한 동기부여다.


결국은 유권자가 선택하게 될 것이다. 뇌물을 받았든, 어디 가서 갑질을 했든, 부적절한 언행을 보였든. 당윤리기구보다 더 강력하다. 제대로 경선만 이루어지고 유권자의 의지만 반영된다면 그대로 자질이 부족하다 여겨지는 정치인은 영영 정치에서 은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같은 변화는 당연하게 정치인들로 하여금 더욱 유권자를 무서워하게 만들어 유권자의 의지가 정치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촉매가 될 것이다. 그를 게을리하면 하위 20%에 걸려 아예 경선의 기회조차 보장받지 모살 수 있다. 남다른 뛰어나고 훌륭한 인물이 정치를 이끄는 것이 아닌 시스템 안에서 유권자의 의지를 대신하는 누군가가 정치를 하게 된다. 정치에 관심을 가질수록 더 나은 정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더불어 어째서 한국에서는 기존의 두 거대정당을 제외한 제 3의 정당이 자리잡기 힘든가. 안철수가 당대표로 있었을 때 해결했어야 하는 문제였다. 아직 새정연에 몸담고 있었을 때도 역시 힘을 실어주었어야 하는 문제였다. 지금은 더욱 적대관계이더라도 새정연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어야 하는 문제다. 지금 선거구확정을 두고 새누리당과 새정연이 싸우고 있는 이유다. 오히려 새정연 자신은 손해를 보는데도 정작 정의당을 비롯한 소수정당들을 위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부분적으로나마 도입하자 수많은 양보를 거듭하며 주장하고 있는 중이다. 일정한 지지만 확보하면 지역구에서 의석을 얻지 못하더라도 비례로써 일정한 의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자신들만의 새로운 정책과 이념으로 소수정당들이 국회에 들어와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높여준다. 역시 새롭고 선진적인 미래지향적 정치다.


안철수의 기자회견문을 읽고 고개를 갸웃한 이유다. 정책은 정치가 아니다. 정치란 방법이다. 과정이다. 단지 그 끝에 정책이라는 목표가 있을 뿐이다. 문재인은 그 과정을 만들어가고 있다. 공천제도를 바꾸어 당대표의 공천권마저 대부분 내어놓고 계파의 수장들 역시 공천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못하도록 시스템을 만들려 하고 있다. 그러면서 소수정당들을 위해서도 연동비례제의 도입을 위해 싸우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정작 새정치를 하겠다면서 시스템이 아닌 기존의 정당들이 하던 레토릭만을 반복하고 있다. 공약만 놓고 본다면 새누리당도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너무 좋아서 문제다.


그럼에도 안철수와 안철수의 신당이 높은 지지를 얻고 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이미 말했지 않은가. 정치혐오, 무관심층에게는 인물론이 전부라고. 안철수가 정권을 잡으면 달라질 것이다. 안철수가 당을 만들면 역시 정치도 달라지게 될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왜? 아직 정당의 구성원도 다 선보이지 않았는데 안철수 이름 하나에 기대어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다. 그것이 바로 정치혐오, 혹은 무관심, 혹은 중도층의 실상인 것이다. 아마 그것을 알기에 안철수도 저리 행동하는 것일 테고 말이다.


문재인이 지지율을 높이는 방법? 간단하다. 과감하게 정당내 비주류 상당수를 공천에서 탈락시키고 물갈이시켜 버린다. 그 자리에 대중적으로 인지도만 높은 정치신인들을 새인물이라는 명분으로 그냥 낙하산시켜 버린다. 오히려 좋아한다. 문재인의 지지율이 정체된 이유다. 과감하지 않다. 단호하지 않다. 그러므로 리더십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문재인이 추구하는 정치다. 때로 짜증나면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정치는 시스템이 한다. 만일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한 번 쯤 당원이 되어 당비라는 것을 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내 지역의 후보를 내 손으로 경선을 통해 뽑는다. 내 지역의 후보에게 내 요구를 전달하고 그를 위해 함께 선거운동에도 뛰어들어 본다.


정치란 특정한 개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내가 투표를 하지 않으면 내가 바라지 않는 인물이 당선될 수밖에 없는 구조고 시스템이다. 내가 먼저 투표해야 한다. 내가 먼저 정치적인 의사를 정치인들에 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를 위한 통로가 없었다. 안철수가 당대표로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온라인 입당이 가능하게 해놨더니 친노패권주의라 욕하는 것이 또 그 지지자들의 수준이다. 진중권이 과거 친노 - 정확히 노빠들을 홍위병이라 비하하면서도 그들의 적극적인 정치참여의지만큼은 인정한 바 있었다. 어째서 진보정당의 지지자들은 저들만큼 적극적이고 열성적이지 못한가.


내가 한 바탕 실컷 화를 내고 나서도 여전히 문재인과 새정연을 지켜보는 이유일 것이다. 솔직히 새로운 정당이름은 민주소나무당이 더 나았을 뻔했다. 새롭고 신선하다. 새로운 정치를 기대한다. 진일보한 새로운 정치구조와 시스템을 기대한다. 단 한 가지 바람이다. 정치를 다수 유권자에게 돌려준다. 특정한 몇몇 유력정치인이 아닌 당원 전부에게 당권의 전권을 돌려준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의미있다. 가능하다면 그것이 바로 새로운 정치다. 놀라운 변혁이다. 정말 가능하기만 하다면. 문재인에게 지워진 시대의 역할이다.


한심한 것이다. 기껏 하는 일이란 호남에 가서 지역감정이나 자극하고. 새정연에서 기존의 국회의원들이나 빼오려 하고. 남 비난이나 하고, 뜻모를 구호만을 남발하고. 정작 당면한 과제가 있지 않은가. 자신들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실제를 무시한다. 정치혐오는 어쩔 수 없다.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