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 피의 도화전, 처절한 무협액션에 압도되다

까칠부 2015. 12. 29. 07:26

역시 이런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한국의 액션이다. 중국은 화려하다. 일본은 아름답다. 미국은 투박하다. 그리고 한국은 더럽다. 중국과 같은 온갖 기묘한 아크로바틱의 향연같은 건 없다. 일본처럼 정교하게 계사된 탐미적 영상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같은 리얼리티라도 미국의 그것과 한국의 그것은 분명 다르다. 더 더럽고 더 추하고 더 치사하며 더 처절하다.


싸움이란 미학도 무엇도 아니다. 단지 참혹한 현실이다. 이기면 산다. 지면 죽는다. 죽여야 산다. 살아야 죽인다. 어떻게 이기는가는 나중 문제다. 어떻게 사는가 역시 나중에 싸움이 끝나고 나서 따질 문제다. 당장은 눈앞에 난무하는 칼그림자 앞에 오로지 살고 죽는 한 가지만을 생각해야 한다. 내가 살고 생대가 죽는다면 그것이 선이고, 내가 죽고 상대가 산다면 그것이 바로 악이다. 발버둥이다. 몸부림이다. 발악이다. 그래서 누구도 싸우는 동안 정의를 말하지 않는다. 수단의 정당함을 따지지 않는다. 살기 위해 칼을 휘두르고 죽이기 위해 단지 칼을 휘두를 뿐이다. 이 싸움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자가 말할 자격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오로지 싸우고 죽이는 그 자체에만 충실하려 한다. 오로지 죽이고 죽는 그것만을 보여주려 한다.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살아남아 죽이고, 살아있는 자들 역시 피투성이가 되어 차가운 바닥에 눕는다. 나중에는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구분마저 모호하다. 바닥에 누워 있으니 이미 죽은 것이고, 아직 서서 숨을 쉬고 있으니 살아있는 것이다. TV화면 너머까지 진한 피비린내와 독한 땀냄새가 코를 감싸쥐게 만든다. 마치 죽음과 삶을 가르는 듯 빛과 어둠속에 갈라선 이성계(천호진 분)와 조민수의 승패가 결정되었을 때 한 편으로 지독한 허탈함마저 느끼고 있었다. 자신마저 저 안에서 함께 싸운듯 지쳐버린 탓이다.


아쉽다면 신궁 이성계의 활솜씨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연출 정도일까. 무휼(윤균상 분)이 포위를 뚫고 이성계를 구하러 왔을 때 무휼을 앞세우고 뒤에서 활로써 저격했다면 상당한 적을 쓰러뜨릴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특히 좁은 통로를 지나갈 때 무휼이 통로를 막아서고 이방원(유아인 분)이 화살을 건네어 도왔다면 충분히 쫓아오는 적의 사기를 꺾고 추격의지마저 늦출 수 있었다. 한 번에 세 발의 화살을 쏘아 적을 모두 쓰러뜨리는 것 역시 대단한 신기라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역시 여러 발의 화살을 제대로 겨누지도 않고 빠르게 쏴서 여러 명의 적을 한꺼번에 쓰러뜨리는 것 역시 신궁에 어울리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바로 그 한 장면을 제외하고 고려제일의 신궁이라 할만한 모습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이성계의 손에 활이 쥐어진 순간 기대했던 것이 무색해진 순간이었다.


복수란 그다지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연희(정유미 분)마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연희의 비녀에 목이 꿰뚫렸음에도 그날 그 끔찍한 짓을 저질렀던 조민수의 가노 대근(허준석 분)은 여전히 살고자 그녀의 목을 조르며 발악하고 있었다. 마침내 대근마저 베어버린 이방지(변요한 분)는 역시 피투성이가 되어 주저앉은 그녀를 끌어안는다. 쓰러진 대근을 끝내 칼로 내리치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이방지 자신의 선량함이며 나약함이었다.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손에 칼이 쥐어지고, 그것을 휘둘러야 하는 절박함만이 주어졌을 뿐. 밝은 달빛 아래 싸움으로 인한 상처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비틀거리며 대근의 뒤를 쫓는 장면은 그래서 안타깝도록 처절하고 아름답도록 슬프다. 


대근을 죽인다고 이미 일어난 일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대군이 죽는다고 연희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밖에 이방지는 다른 무엇도 생각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연희에게 돌이키기도 끔찍한 상처를 안긴 그를 자신의 손으로 반드시 죽이고야 말겠다.  그것은 순수한 분노다. 인간의 선악도, 도덕도, 윤리도, 이성도, 양심도 모두 넘어선 인간이기에 가지는 가장 순수한 분노였다. 그 분노가 연희마저 일깨운다. 두려움에 다시 주저앉으려던 연희가 그날 자신을 구하기 위해 뒤쫓아 달려오던 이방지를 떠올린다. 인간은 혼자가 아닐 때, 그리고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만 스스로 용감해질 수 있다. 혼자라면 그저 외면하고 도망치면 그만이지만 지금 저기서 이방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 이방지가 연희를 위해 대근을 죽이려 했듯 연희 역시 이방지를 위해 대근을 죽인다. 아름답지 않지만 피투성이가 되어 서로 끌어안은 남녀가 너무 아름다웠던 마지막 장면이었다.


하륜(조희봉 분)의 오만이 빚어낸 허점을 정도전(김명민 분)이 꿰뚫어본다. 말 그대로다. 다수의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집단은 구성원 개개인의 상호작용으로 말미암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방향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개인에게는 누구도 통제하거나 견제할 수 있는 대상이 없다. 하물며 누구도 두려워하거나 꺼려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있다면 더 그렇다. 하륜이 조민수를 장기말로 보았듯 조민수 역시 하륜을 이용하기 좋은 대상으로만 여겼다. 이성계를 읽지 못했다. 고려의 현실과 그 문제들을 바로잡을 방법을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고 있었지만 그러나 고려사회를 이루는 개개인에 대해서까지 모두 꿰뚫고 있지는 못했다. 큰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작은 변화에 맞춰간다. 하륜에게는 조민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큰 그림이 없었다. 그래서 조민수의 마음을 얻지 못했고 그의 생각을 읽지 못했다. 책사는 자신의 책략을 써줄 상대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리고 하륜의 실패는 정도전에게 기회로 돌아온다. 조민수의 계략을 읽는다.


결국 지난회에서 연희가 대근을 보고 놀라고, 이방지가 조민수의 도화전에서 대근의 정체를 알아본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대근을 알아봤음에도 남은의 당부가 있었기에 인내해야 했던 이방지와 그런 이방지의 처지를 이해한 무휼로 인해 보다 일찍 사단이 벌어지고 말았다. 당사자에게는 떠올리기도 끔찍한 상처지만 정작 가해자에게는 단지 여흥을 위한 음담패설의 소재일 뿐이다. 많은 성폭행 사건에서 오히려 가해자들은 그것을 무용담으로 여기고 피해자를 비하하기를 일삼는다. 더이상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던 이방지를 위해 무휼이 먼저 나선다. 그리고 무휼로 인해 대근이 갑옷을 입고 있는 것과 탁자 아래 무기가 숨겨져 있는 것이 드러난다. 아직 무휼도, 이방지도, 조영규(민성욱 분)도, 조민수와 함께 있던 이성계 등도 약을 탄 술을 마시기 전이었다. 악업은 악업으로 다시 당사자에게 돌아간다. 현실도 그랬으면. 치밀하게 짜여진 구조가 액션의 발력 만큼이나 흥미롭다. 자연스럽게 상황으로 이끈다.


전작인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이 말했을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지옥이기에 세상은 평온한 것이라고. 세상에는 미운 것들도 많다. 옳지 못하고 바르지 못한 것들도 많다. 더 옳고 더 바르고 더 좋은 것들도 있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사는 것이 곧 고통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더 옳고 더 바르고 더 좋은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더 밉고 더 싫고 더 나쁘고 더 바르지 못한 것들이 아직 현실에 남아있기에. 그마저 끌어안아야 한다. 악과 공존하고 불의와 타협하며 부도덕을 용납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세상을 나아가게 만든다. 그것이 정치다. 그것이 왕도라는 것이다. 답답하더라도 그것이 더 크게 더 멀리 옳고 바르게 가는 것이다.


당장 편하자고 속임수를 쓰고, 당장 쉽자고 무력을 동원하고, 하지만 그런 편법은 결국 부작용을 낳기 마련이다. 늦더라도, 돌아가더라도, 그러나 오로지 정도를 찾아 걷는다. 그 마음이 그저 평온할 수만은 없다. 정도전이 선택한 것이다. 더 쉽고 더 빠르고 그래서 자기 마음에도 좋은 그런 방법보다 더 불편하고 더 돌아가고 더 느린, 하지만 더 확실한 길을 찾아서 가고자 한다. 하필 정도전이 폭두라 단정지은 이방원과 이후 대립하게 될 세종의 입에서 이같은 말이 나왔다는 점이 묘하게 두 작품을 이어주는 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싸움은 끝났다. 하륜을 통해 정도전이 조민수의 계략을 눈치챈 탓에, 아니 그 전에 이방지가 대근의 정체를 알아보았던 것이 계기가 되어 조민수는 패자가 되고 이성계는 승자가 되었다. 더 직접적이고 더 원초적인 방법으로 그렇게 조민수는 실각하고 이성계의 독주가 시작된다. 비밀조직 무명이 등장한다. 새로운 싸움의 시작이다. 가쁘게 흘러간다. 여전히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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